늙어가는 한국경제…금리와 성장의 구조가 흔들린다
입력 2026.04.07 10:05
수정 2026.04.07 10:06
초고령사회 문턱 넘은 한국…경제정책의 기준이 바꿔야
KIEP, 중립금리 하락·재정여력 축소 대응해야
경상수지 2041년 적자 전환…글로벌 변수 반영 땐 2059년
단순 세율 조정을 넘어, 다각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한국의 재정 지속가능성 대응 틀. ⓒ제미나이
한국 사회의 인구 피라미드는 이미 눈에 띄게 모양이 바뀌고 있다. 아이 울음소리는 줄고, 생산현장을 떠받치던 중간 연령층의 비중은 꺾였다. 고령층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한때는 노동력과 소비가 함께 늘어나는 인구 보너스를 바탕으로 성장의 시간을 통과했지만, 이제는 그 반대 방향의 압력이 한국경제 전반을 누르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인구 변화가 더는 복지나 지역 소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금리와 성장률, 재정 부담, 대외수지의 흐름까지 바꿔 놓는 구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평균과 비교해도 가파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50년에는 그 비중이 약 4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시기 세계 평균은 16% 안팎이다. 한국의 중위연령도 현재 48세 수준에서 2050년에는 50대 중반까지 높아질 것으로 제시됐다. 세계가 함께 늙어가고는 있어도, 한국은 그 흐름을 훨씬 앞선 속도로 통과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한국 인구가 이미 정점을 지나 감소 국면에 들어섰다고 봤다.
세계 인구가 증가세 둔화 뒤 정점에 접근하는 흐름과 달리, 한국은 총인구 감소와 생산가능인구 축소, 노년부양 부담 확대가 한꺼번에 맞물리는 구조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노동공급 축소와 잠재성장률 저하, 세수 기반 약화, 사회보장 지출 확대를 함께 불러오며 경제 전반의 균형점을 흔들 수밖에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내놓은 ‘글로벌 인구구조 변화의 거시경제적 영향과 시사점’에서는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국가 가운데 하나로 짚었다.
특히 인구구조 변화가 단순한 인구 현상이 아니라 중립금리와 생산성, 산업·무역, 정부재정, 경상수지 등 거시경제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유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이상 인구를 복지 영역의 이슈로만 다룰 수 없는 사회적 구조가 현실화 된 것이다.
금리도 성장도 재정도 인구를 비켜가지 못했다
보고서는 먼저 중립금리의 구조적 하락을 짚었다. 한국의 장기 중립금리는 생산성 둔화와 2015년 전후 인구구조 전환, 글로벌 안전자산 수급 변화의 영향을 받으며 내려왔다. 코로나19 이후에도 하락 흐름이 이어졌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보고서에서 “중립금리는 중장기적으로 추가 하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동시에 굳어질수록 통화정책의 기준점도 이전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성장 측면에서도 경고는 선명하다. 보고서는 고령화가 무형자산 투자 효율을 떨어뜨리면서 총요소생산성과 산출을 낮출 수 있다고 봤다.
고령화가 금리, 성장, 재정, 경상수지까지 동시에 흔들며 한국의 대외 전략이 수출 중심에서 해외투자 수익과 자산 운용까지 넓어져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챗지피티
분석 결과 투자 효율이 10%p 하락하면 총요소생산성은 2% 줄고, 20%p 하락하면 총요소생산성은 10%, 총생산은 6%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방경제의 낮은 국제금리 환경이 일부 충격을 흡수할 수는 있어도, 충격 자체를 지우는 것은 아니라는 게 보고서의 판단이다.
산업과 무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만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이라면 노동집약 제조업 경쟁력 약화 위험이 커지지만, 글로벌 차원의 동시 고령화를 함께 고려하면 인지·기술 집약 제조업에서 상대적 강점이 부각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청년·대졸 인력 비중과 설비·지식재산 자본 집약도가 높은 부문일수록 수출 비중과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였다는 점도 함께 제시했다. 제조업 내부에서도 무엇을 키우고 무엇을 정리할지 인구구조 변화에 맞춘 선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윤 실장은 “증세만으로는 재정지속가능성 확보가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연령구조 변화만으로도 의무지출이 빠르게 늘고 재정여력이 줄어드는 만큼, 세율 조정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개방경제에서는 자본소득 과세 인상이 자본유출 가능성과 맞물릴 수 있어, 지출 효율화와 구조조정, 재정규율을 함께 묶은 중장기 대응 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경상수지의 데드라인도 당겨진다
대외 부문 분석도 눈길을 끈다. 보고서는 국내 인구구조만 고려할 경우 한국의 경상수지가 2041년 적자로 전환되고 이후 적자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글로벌 인구구조 변화를 함께 반영하면 이 전환 시점은 2059년으로 18년 늦춰진다고 분석했다. 해외 요인이 국내 인구구조 악화를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적자 전환 가능성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이 대목은 한국경제에 두 가지 숙제를 남긴다. 하나는 무역수지다. 인구구조 변화에 민감하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하나는 소득수지다. 보고서는 순대외자산 규모와 수익률 제고를 통해 소득수지를 강화하는 것이 무역수지 약화를 상쇄할 핵심 완충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앞으로 한국의 대외 전략이 단순히 수출 물량 확대에 머물지 않고, 해외투자 수익과 자산 운용의 질까지 함께 따져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인구를 복지나 지방소멸의 문제로만 다루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했다.
금리의 기준점도, 성장의 속도도, 나라 곳간의 버팀목도, 바깥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의 구조도 인구 변화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제로금리 하한 환경에 대비한 비전통적 통화수단의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며 “고령화 충격을 낮추기 위한 무형자산 투자 확대와 효율 제고, 산업 경쟁력 재편,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소득수지 강화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