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 전도된 '11월 위기설'…국민의힘, 언제까지 내부 다툼만 할 것인가
입력 2024.11.03 08:00
수정 2024.11.03 11:55
이재명 1심 선고로 야권 위기 예상됐으나
초유의 대통령 육성 폭로에 여권 위기로
全大부터 100일째 내부 싸움에만 골몰 중
"대야 이슈에 전략적·적극적 대응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심 선고에 따라 야권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11월 위기설'이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 씨 간의 통화 녹취가 전격 폭로되면서 거꾸로 여권을 덮쳤다. 친윤계 일각은 민심과 유리된 방어에 급급하고, 친한계는 김건희 여사와 선긋기를 한 것은 잘했지만 그 이상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국민의힘이 현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2일 서울역 일대에서 '김건희 국정농단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민주당은 이날 장외집회에 전국에서 30만 명이 모여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 자리에서 "2016년 겨울을 떠올려보라. 가녀린 촛불로 부정한 권력을 무릎 꿇렸을 때 국정농단은 영원히 사라질 줄 알았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 불의한 반국민적 권력을 심판하자"고 '탄핵의 추억'을 소환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발언까지 공공연히 나왔다. 지난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를 지지한 특정 성향 배우 이원종 씨는 연단에 올라 윤 대통령을 겨냥해 "이제 길은 단 두 가지다.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하야하라"며 "아니면 여기 이 많은 국민들이 한 뜻이 돼 한 주먹으로 멱살을 휘어잡고 끌어내릴 것"이라고 외쳤다.
국민의힘은 11월에 민주당이 거리로 나서면서 정치적 갈등을 극단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걸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가 15일,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가 25일로 정해지면서 정부·여당을 향한 민주당의 공세가 거세지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해 왔던 사안이다.
실제 추경호 원내대표는 열흘도 더 전인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쌓아온 대통령 탄핵 빌드업이 모두 이재명 대표의 뜻에 따라 기획된 것이란 게 드러나고 있다"며 "행정부와 사법부 겁박을 일삼은 민주당은 이제 거리로 나가 대한민국을 대혼란으로 몰아넣겠다고 한다. 국회를 장악한 거대 권력이 거리로 나가 장외투쟁을 하겠다는 꼴은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은 거대 야당이 광장에 입고 나갈 방탄용 롱패딩을 준비할 때가 아니라, 우리 사회 약자를 두텁게 지원할 방한용 민생정책을 국회 안에서 논의할 때"라며 "이 대표 방탄을 위해 쏟아붓는 정치공세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민생을 위해 고민하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터지면서 '위기'의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었다. 명태균 씨와 통화를 나누는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11월 위기설'은 정권의 위기가 됐다. 민주당이 공개한 녹취에는 2022년 5월 9일 당시 윤석열 당선인이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주라 그랬다"고 말하는 음성이 담겼다.
민주당의 의도와 계획을 알고 있었던 여당이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수단을 들고나온 민주당의 공세에 여당은 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 파국의 밑바탕에는 한동훈 대표가 이끌고 있는 당과 윤석열 대통령·김건희 여사 내외가 영수로 있는 대통령실 사이의 상호 불신이 깔려 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한동훈의 여사 문자
'읽씹'은 지극히 사려깊고 현명했던 처사
'배신자론' 등으로 한줌 세력 충동질 말고
온 당이 나서 이재명 11월 선고 대응해야
당정은 이번 국면 이전에도 특별감찰관 임명 등을 두고 기싸움을 해왔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대통령실 내의 '여사 라인' 쇄신과 특별감찰관 임명 등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이후 더 거세게 특별감찰관 임명을 압박하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대통령실이 집권여당 대표에 대해 강경하게 나오자 당내 친윤계도 기다렸다는 듯이 특별감찰관 임명에 미온적으로 나왔다. 한때 특별감찰관 문제를 의원총회에서 공개 표결에 부치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당의 구심력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 사이 민주당을 향하는 메시지에는 힘이 실리지 못하고, 지도부 회의에서 나오자마자 허공으로 흩날려 사라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7·23 전당대회 기간 동안에도 국민의힘은 부질없는 내부 싸움에 집중했다. '명태균 녹취'가 터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동훈 대표가 예민한 총선 공천 기간 중에 김건희 여사의 문자 메시지를 무시하고 이른바 '읽씹'한 것은 지극히 사려깊고 현명한 처신이었으나, 친윤계는 이를 한 대표 공격과 흔들기에만 쓰려는 생각에 매몰됐다.
이 밖에도 '한동훈 대세론'을 흔들기 위한 배신자론, 색깔론, 사천 의혹, 막말 공세 등이 판을 쳐, 이에 자극 받은 극단 성향의 친윤 유튜버에 의한 합동연설회장 폭력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소수 세력에 의한 당사 앞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 사이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 씨 음주 논란, 김정숙 여사 외유 논란 등 민주당을 향하는 각종 의혹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지만, 내부 다툼에 역량을 소진한 국민의힘은 그 어느 것도 지속적이고 제대로 된 공세를 해내지 못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야당과 싸우는 법을 잊은 것 아니냐는 자조적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데일리안에 "솔직히 지난 2년여간 우리끼리 싸우기만 했지 않느냐. 분명히 좋은 기회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싸우느라 이 기회들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11월 선고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 여사 문제로 우리끼리 계속 싸우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은 우리 문제에 있어 TF도 계속 만들고 전 당이 나서서 공세를 한다"며 "우리도 온 당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