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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도 낳아볼까...”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소아청소년과 개원...다음은 공공산후조리원 [혁신수도 영암③]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입력 2024.10.31 14:01
수정 2024.10.31 14:10

영암 고향사랑 소아청소년과. ⓒ 영암군

아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큰 도시로 떠났다. 70대 어르신이 마을에서 막내 역할을 할 만큼 지방은 심각한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228곳 중 인구가 급속도로 감속하고 있는 지역은 약 90곳에 이른다. 경상북도와 마찬가지로 전라남도는 무려 16곳의 인구감소 지역이 있다. 인구 5만 2000여 명의 영암군 역시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수도권 인구 집중→지역 인구 저출생·고령화 및 감소→지방 세수 감소→지역 활력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는 가운데 지역 자립은 해를 거듭할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절실함을 안고 영암군은 창의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정책 설계로 희망을 쏘아올리고 있다. 타개책 중 하나는 고향사랑기부제. 개인이 고향 혹은 관심이 있는 지자체에 기부하면 연말정산 세액공제와 답례품 제공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 제도다. 개인이 주소지 외 지역에 기부하면 지자체가 이를 모아 지역소멸 대응, 주민 복지 향상 등에 사용한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를 진행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암군의 소아청소년과 개원이다. 저출생 문제로 인해 소아과가 없거나 있어도 의사가 없어 아이들 진료가 원활하지 않은 게 소멸위기 지역의 현실이다. 소아청소년과 부재는 청년들이 영암에 정착하기 어려운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이에 영암군은 전국 최초로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소아청소년과를 개원했다.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해 24년 만에 문을 열게 된 영암군 소아청소년과는 우승희 군수가 내세우는 영암형 고향사랑기금 모델이다.


영암군 관계자는 “군내 마지막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료기관의 진료 기록은 2004년 이후로 없었다. 급속도로 진행된 인구 감소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는데 24년 만에 ‘고향사랑 소아청소년과’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 앞에 고향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개설 비용과 의료진 인건비를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과 개원은 의료 접근성의 향상을 이뤘다. 그동안 소아청소년을 자녀로 둔 영암의 부모들은 전문의료기관 부재로 큰 불편을 겪어왔다. 이로 인해 광주·목포·나주의 전문병원을 찾아 1~2시간씩 차량을 타고 원정 진료를 다니는 부모들의 불편을 덜어줬다.



영암 고향사랑 소아청소년과. ⓒ 영암군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젊은 부부들은 ‘둘째 출산’까지 고려할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고향사랑 소아청소과를 찾아 진료를 받고 나오는 미취학 아동의 어머니 A씨(영암군 거주)는 “우리 지역에 (소아청소년과가)생기니 한결 편해졌다. 여기 소아과가 있으니 정말 좋다. 공공산후조리원도 세울 예정이라고 들었다. 이런 환경으로 바뀌다보니 둘째(아이)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 B씨(영암군 거주)는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군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든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영암이다. 이곳을 떠나기 싫은데. 영암을 떠나야 할 큰 이유 하나를 지워줬다”고 말했다.


영암군은 지난해 고향사랑기부를 통해 총 12억3600만원을 모금했고, 이중 2억4000만원을 지역숙원 사업인 소아청소년과 개원에 썼다. 영암을 아이 키우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우승희 군수는 “고향사랑 소아청소년과 개원은 영암군민에게 절실히 필요한 사업이었다. 전국의 고향사랑기부자들과 함께 이루어낸 성과다. 영암형 고향사랑기금 모델을 전국에 확산시켜 영암군이 혁신을 선도해 고향사랑기부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우 군수 말대로 타 지차에도 귀감이 되는 사례다. 영암군은 행정안전부의 ‘제1회 고향사랑기부제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영암군은 지난해 고향사랑기부금 8,794건 12억3600만원 모금으로 전국 기초단체 중 2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공공산후조리원 의료기기 구입을 위해 실시한 고향사랑기금 지정기부 ‘영암 맘(mom) 안심 프로젝트’는 호평을 이끌어내며 전국 지자체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며 노하우도 나눴다.


영암군은 행정안전부의 ‘제1회 고향사랑기부제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 영암군

아직 끝이 아니다. 영암군은 고향사랑기금으로 2027년 개원을 목표로 공공산후조리원도 준비하고 있다.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지키고, 지역의 미래를 살리는 일에 기부금을 소중하게 사용하겠다는 의지다. 산후조리원 없이 임신, 출산, 육아 등은 어렵다. 민간 산후조리원 이용료는 평균 320만 원에 달한다.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더 많은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영암군 임산부의 70% 이상이 산후조리원이 없어 다른 지역의 시설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80%에 가까운 산모는 영암에 산후조리원이 생기면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영암군은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의료기기는 고향사랑기부로 마련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모금했다. 저출력 심장충격기, 비접촉식 수면 생체신호 모니터링 시스템, 혈압기, 적외선 치료기 등 신생아 안전보장 시스템을 구축했다.


김세훈 영암군 고향사랑팀장은 “모금 후 분석 결과, 영암 맘 안심 프로젝트 기부자 중 57%가 남성이었다. 연령대도 30대가 40%로로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평균 출산연령이 30대인 것을 감안했을 때, 영암군의 지정기부는 예비·초보부모의 폭넓은 공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영암군의 노력은 지정기부제 정착에도 크게 기여했다. 영암군은 지난 한 해 동안 끊임없이 기부자들이 특정 목적과 가치에 투자하는 지정기부제도의 도입 등을 골자로 한 법령 개정을 국회와 행안부 등에 요구했다. 고향사랑기금 지정기부는 영암군이 개척하고, 행안부 등이 법령개정으로 올해부터 전국 모든 지자체가 도입할 수 있는 제도가 됐다. 동시에 앞으로 고향사랑기부자는 지역의 사업을 보고 기부를 결정하는 가치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됐다.


ⓒ 영암군


영암군 군서면 왕인박사유적지 벚꽃길에서 고향사랑기부 홍보하는 우승희 군수. ⓒ 영암군

정부 정책 입장 선회와 함께 영암군의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전망은 더 밝아졌다. 정부 통합 플랫폼인 '고향사랑e음'을 통해서만 기부금을 받아왔던 행정안전부가 민간 플랫폼에도 대폭 고향사랑 기부를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민간 플랫폼을 통한 개방형 기부는 '지역'이 아닌 '프로젝트'에 기부한다.


영암군이 더 큰 기대를 모으는 것은 민간플랫폼을 통한 모금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고향사랑e음을 통한 기부는 기부자가 지역을 선택해 일정 금액을 납입하는 방식이어서 기부금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고향사랑e음은 전국 모든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다소 경직된 운영 방식이지만, 민간 플랫폼은 각 지자체의 특성과 상황에 맞춘 유연하고 창의적인 모금전략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영암군은 민간플랫폼(위기브)을 통한 모금으로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김세훈 영암군청 고향사랑팀장은 “소액 기부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향납세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일본 사례를 보면 생각이 바뀐다. 일본의 2023년 모금액은 1조엔(약 9조원)이 넘는다. 이 기금으로 한 지역은 낡은 동물원을 한 해 200만 명이 찾는 일본 최고 동물원으로 바꿔냈다”며 “고작 10만원으로 불릴지 모르는 작은 기부가 모여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 영암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어떻게 접근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기적 같은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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