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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바다' 노량진 수산시장서 새벽을 여는 사람들 [데일리안이 간다 41]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입력 2024.03.21 05:12
수정 2024.03.21 05:12

새벽1시부터 갖가지 수산물 경매로 하루 시작…신선도 중요 순서에 따라 어패류 가장 먼저 경매

통영에서 올라온 상인 "낮과 밤 바뀐 생활 16년째, 매일 장거리 운전하지만 일 계속해 다행"

인터넷으로 경락시세 공개, 신뢰성 향상…좋은 물건 차지하려는 상인들 간 경쟁은 여전히 치열

전국 수산물 만날 수 있는 서울의 '도심 속 바다'…모든 경매 끝나는 시간, 새벽 4시50분

20일 새벽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수산시장이 있다. '노량진'이라고 말하기만 해도 쉽게 수산시장을 떠올릴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이 곳 상인들의 하루 일과는 일반 사람들과 다른 시간속에서 돌아간다. 모두가 단잠에 빠져있을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의 누군가는 일과를 마무리하고 또 누군가는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데일리안은 20일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매일 새벽마다 이 곳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신선한 수산물들이 경매를 통해 주인을 찾아간다. 경매는 신선도가 중요한 순서대로 이뤄진다. 상온에 두면 빠르게 변질되는 어패류 경매가 가장 빠른 새벽 1시에 이뤄진다. 새벽 2시에는 갈치·오징어 등 냉장 상태로 시장에 도착한 선어류, 새벽 3시에는 아직 싱싱하게 살아있는 활어류, 물 밖에 나와있어도 꽤 오랜시간 숨이 붙어있는 새우·게 등 갑각류의 경매가 가장 마지막 순서인 새벽 4시다.


새벽 1시 34분 생굴 경매가 진행중인 노량진 수산시장 경매장ⓒ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새벽 1시 30분쯤 경매장에서는 통영산 생굴 경매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좋은 굴을 고르기 위해 구매 상인들이 굴이 담긴 상자를 재빠르게 훑어본다. 경매는 모니터와 방송장비를 갖춘 소형 차량이 경매물건이 적재된 구역을 차례로 순회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경매인이 마치 주문을 외는 것처럼 품목과 시작가격을 줄줄이 부르고, 입찰에 참여한 상인들은 수신호로 입찰가격을 전달한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여도 경매장에서 쓰이는 용어와 수신호는 마치 암호와도 같아 일반인들은 이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량진 수산시장 경매현장. 경매인 뒤의 모니터에 상품 출하자의 실명이 표시되며 실시간 경매 가격과 낙찰수량이 표기된다.ⓒ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한 차례의 소나기같은 경매절차가 끝나자마자 낙찰받은 상인들은 자신의 굴이 담긴 상자를 손수레에 실은 뒤 재빠르게 경매장을 떠나고 일부는 다음 상품인 홍합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굴을 판매하러 멀리 서울까지 온 상인은 이제야 비로소 한시름 놓고 하루 일과 마무리를 준비한다. 통영에서 전날 저녁 7시에 출발해 이날 새벽 경매에 물건을 내놓은 A씨(49)는 이렇게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16년째 하고 있다.


A씨는 "지역 어촌계에서 껍질 분리 작업을 마친 굴이 오후 5시쯤 출하장으로 모이면 그때부터 일과가 시작된다"며 "판매할 물건을 선별해 트럭에 싣고 저녁 7시쯤 서울로 출발한다. 노량진에서 경매 물건을 내놓고 다시 통영으로 내려가면 아침 6~7시"라고 전했다. '낮밤이 바뀐 생활이 피곤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A씨는 "이 생활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괜찮다"며 "매일 장거리를 운전하지만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일을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경매에 내놓기 위해 적재된 제주도산 갈치ⓒ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반대로 노량진에서 수산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경매 참여가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경매에서 생굴을 20상자 낙찰받은 노량진 상인 B씨는 "오늘 받은 굴은 씨알도 굵고 신선해서 금방 다 팔릴 것 같다"며 "재료를 까다롭게 고르는 식당들은 아침 일찍부터 직접 사러 오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B씨는 "좋은 물건을 낙찰받으려면 시장에 일찍 나와서 미리 경매에 나올 물건 상태를 살펴보고 점찍어놔야 한다"며 "물건이 좋을수록 빨리 팔리니까 그만큼 영업마감도 빨라지고 일찍 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주 오시는 분들은 경매 낙찰가격도 다 알고 오시기 때문에 별달리 흥정할 것도 없이 바로 거래가 된다"고 덧붙였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제공하는 수산물 경락시세. 당일의 경매 낙찰 수량과 최고가 정보를 그대로 공개한다.ⓒ노량진 수산시장 홈페이지 캡처

실제로 노량진 수산시장은 인터넷을 통해 매일매일의 수산물 경락(경매낙찰)시세를 공개하고 있다. 경매가 끝난 후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시세정보가 올라오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거래의 신뢰도가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같은 시세라도 생선의 크기와 신선도에 조금씩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라 더 좋은 물건을 차지하려는 상인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다.


선어 경매가 진행중인 노량진 수산시장ⓒ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새벽 2시가 되자 선어 경매가 시작된다. 전날 새벽부터 조업해 제주도에서 올라온 갈치, 포항에서 온 삼치, 여수산 가자미 등 각양각색의 생선이 경매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경매에 참여한 상인들이 생선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 생선이 담긴 상자 사이사이를 바쁘게 오간다. 이곳에서 거래된 선어는 곧바로 다시 냉장해야 하기 때문에 낙찰받은 상인들의 발걸음이 더 바빠진다.


갈치와 병어를 낙찰받은 상인 C씨는 "어제는 갈치 물량이 충분했는데 오늘 낙찰 물량은 단골로 거래하는 곳에만 대주기에도 빠듯하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C씨는 그래도 "날씨 문제로 조업이 금지돼 경매 물량이 없는 날에 비하면 괜찮은 것"이라며 "배 타는 사람들 만큼이나 날씨에 민감한 사람들이 수산시장 상인들"이라고 웃어넘겼다.


활어를 싣고 경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대형 수조차량들ⓒ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새벽 3시부터는 활어 경매가 시작된다.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경매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대형 수조차 안에 담긴 채로 경매 순서를 기다린다. 경매가 시작되면 재빠르게 수조차에서 활어를 옮긴 뒤, 낙찰되면 곧바로 해수에 담긴 채로 운반해간다. 이 활어들은 수조에서 헤엄치며 횟감을 고르러 온 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리게 된다.


선어와 활어에 이어 갑각류까지 이날의 모든 경매가 끝난 시간은 새벽 4시 50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새벽을 여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부지런함 덕에 바다와 멀리 떨어진 서울 시민들의 식탁에도 언제나 신선한 수산물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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