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복귀 요원한데…인턴·전임의도 대거 이탈
입력 2024.03.05 03:02
수정 2024.03.05 13:18
서울 시내 주요 수련병원, 1일 자로 들어와야 하는 인턴·레지던트 없는 상황 직면
레지던트 1년 차 임용 예정 인턴 및 인턴 예정이던 의대 졸업생 90% 임용 포기 의사
세브란스병원, 인턴 150여 명 중 1일 자로 수련계약서 작성한 건 3명뿐
수련병원 측 "교수·전임의들이 업무 메우는 상황…언제까지 버틸지 장담 못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 대부분이 정부가 제시한 복귀 시한을 지나서도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1년 차들도 대거 임용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지방병원에서는 전임의마저 대거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일부 응급실에서는 응급진료가 축소되는 등 의료대란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서울시내 주요 수련병원은 매해 3월 들어와야 하는 새로운 인턴과 레지던트가 없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는 전문의 자격을 얻고자 병원에서 인턴으로 1년, 진료과목을 정한 레지던트로 3∼4년 수련하는 의사를 칭한다. 매해 3월 1일에 새로운 수련 연도가 시작된다.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 모두 이달 1일자로 각 병원에 신규 인력으로 수혈돼야 하지만,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후 이들마저 병원으로 오지 않으며 의료 공백이 커지는 상황이다.
앞서 레지던트 1년차로 임용 예정이었던 인턴은 물론, 인턴 예정이었던 의대 졸업생들의 90% 이상이 임용 포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들이 임용 포기 의사를 철회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이른바 '빅5' 병원을 포함한 주요 병원은 이러한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는 입장이다.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인턴 150여명 중 이달 1일자로 수련계약서를 작성한 건 3명뿐이다.
서울시내 수련병원 관계자는 "지금 교수와 전임의들이 전공의들의 업무를 메우고 있다"면서도 "새로운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들어오지 않는 이 상황에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일부 병원은 전공의들에게 예정대로 임용된 상황을 다시 고지하면서 복귀를 독려하기도 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교육부는 서울성모병원 등 산하 수련병원에 임용 예정이던 전공의들에 이날 '선생님께서는 3.1부 임용 발령되었음을 안내드린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부는 병원에 진료유지명령을 내리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수련병원과 계약을 갱신하지 않거나, 수련병원 레지던트 과정에 합격했는데도 계약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진료를 중단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한 전공의가 "지난달 29일자로 인턴 계약이 종료됐다"며 "이후 레지던트 계약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임용이 되느냐"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교육부가 복지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그대로 따라 전달했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이들을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의 방조범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병원은 전공의는 물론 전임의마저 대거 이탈하면서 의료 공백은 더욱 악화하는 모양새이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병원에서 세부 진료과목 등을 연구하면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 흔히 펠로나 임상강사로 불린다.
이들은 교수들과 함께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을 지키면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이들의 이탈마저 현실화한 것이다.
전남대병원은 52명 신규 전임의 임용 대상자 중 21명이 최종 임용을 포기했다.
기존 전임의 대부분이 퇴직하는 대신 신규 전임의가 3월부터 충원돼 근무하기로 했지만,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낸 전공의(레지던트) 4년 차들이 전임의 임용까지 포기하면서 전임의 정원 40%가 한꺼번에 비게 됐다.
조선대병원도 정원 19명 전임의 중 13명이 임용을 포기하면서 6명만 근무하게 됐다.
천안 단국대병원도 전임의 14명 중 군 제대 후 5월 1일자로 근무하는 4명을 제외하고, 3월부터 근무해야 하는 10명 중 5명만 계약했다. 나머지 5명은 임용을 포기했다.
대전성모병원도 전임의 7명의 계약 갱신일이 도래했지만, 일부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대병원 역시 이달 1일부터 출근이 예정돼 있었던 전임의 27명 가운데 22명이 임용을 포기했다. 전임의 80% 이상이 병원을 떠났다는 의미이다.
'빅5' 병원에 속하는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상황도 좋지 않다.
서울성모병원은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려우나 계약하려고 했던 전임의의 절반 정도가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역시 전임이의 절반 상당이 재계약을 꺼리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들의 업무를 메우던 전임의들의 이탈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경우 지난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의료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만 병원별로 상황의 차이는 있다. 서울 주요병원은 지방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병원 전임의들은 이달 1일 자로 대부분 임용됐고, 세브란스병원도 전임의의 큰 이탈 없이 예년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전임의들은 전공의들처럼 많이 포기한 상황은 아니다"며 "다만 아직은 상황을 좀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이나 이화의료원, 고대구로병원 등도 전임의의 일부 유출이 있긴 하지만, 아직 크게 우려하거나 혼란을 야기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전했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는 거의 안 돌아왔지만, 전임의는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며 "아주 우려했던 상황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는 전임의들이 재계약을 맺은 사실을 공개하기 꺼리고 있다고도 증언한다.
또 다른 빅5 병원 관계자는 "후배 의사들인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상황에서 병원에 남아있겠다고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전임의들이 적지 않다"며 "재계약을 하더라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길 바라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상당수 전임의가 남아있더라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이미 한계에 다다른 전임의들이 과중한 업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사직을 선택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주니어 교수'로 불리는 막내 교수들 상황도 비슷하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전임의와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 입원환자 관리와 야간 당직까지 맡다 보니 전임의나 막내 교수 등을 중심으로 사직을 고민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전공의들에 이어 인턴, 전임의들의 이탈까지 현실화하면서 현장의 의료공백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수술 인력 부족으로 암 환자의 수술이 연기되고 있는 것은 물론, 응급실 인력이 부족해 응급실 운영마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대구 영남대병원 응급실의 경우 의료진 부재로 외과 추적 관찰 환자 외에는 수용이 아예 불가능한 실정이다.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실은 정형외과, 성형외과, 피부과 등의 응급진료가 중단됐다.
계명대 동산병원 응급실도 호흡기내과 의료진이 부족해 호흡곤란 및 호흡기계 감염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응급실에서 내과계 중환자실(MICU) 환자를 더는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세브란스병원 역시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 응급환자마저도 부분적으로만 수용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서울성모병원도 얼굴을 포함해 단순히 피부가 찢기거나 벌어진 열상 환자의 경우 아예 24시간 응급실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성형외과 의료진 부재로 응급실에서 안면 외상, 안면 골절, 얼굴 부위 열상 봉합 등 모든 성형외과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 관계자는 "현 상황이 지속하면 수술과 진료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고, 응급실 운영도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