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약자들의 험지, '1역사 1동선 미확보' 서울 지하철역 가보니… [데일리안이 간다 5]
입력 2024.01.13 05:06
수정 2024.01.13 13:24
서울 13곳 지하철역, '1역사 1동선' 확보 안 돼…고속터미널역, 엘리베이터 지상·대합실 연결 못 시켜
장애인 가파른 경사 휠체어 리프트에만 의존해야, 동선 단절…3호선 교대역도 동선 끊겨
7호선 남구로역, 엘리베이터 단 한 대도 설치돼 있지 않아…지하1층까지 96개의 계단
7호선 광명사거리역, 한쪽 방면 승강장에만 엘리베이터 설치…28개 계단 올라가야 대합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오는 22일 오전 8시 출근길에 지하철 탑승시위를 재개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장애인 특별 교통예산'을 편성해 장애인 전용택시 등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주장하는 방법과 방식이 위법의 영역이고 시민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는 빈축을 사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 자체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12일 데일리안이 '1역사 1동선'이 확보돼 있지 않은 서울 지하철역들을 직접 점검해 본 결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타인의 도움 없이 지상 출구부터 승강장까지 이동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서울교통공사는 2015년 서울시의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계기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율을 꾸준히 높여 지하철 1~8호선 275개 역 중 262개 역(95.2%)에 '1역사 1동선'을 확보했지만 13곳의 지하철역에는 여전히 장벽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대표적 '교통험지' 고속터미널역…동선 끊긴 3호선 교대역
지하철 3·7·9호선이 겹쳐 있고 고속버스 경부선, 영동선, 호남선까지 있는 고속터미널역이 교통약자들에게는 대표적인 '교통 험지'이다. 7호선 고속터미널역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지하3층과 지하2층을 연결할 뿐 지상과 대합실이 연결되지 않아 밖에서 역사로 바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9호선 출구 쪽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에서 역사 내로 진입해도 긴 역사 통로를 지나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7호선 환승통로에 오더라도 무려 53개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장애인의 경우 가파른 경사를 휠체어 리프트에만 의존해 내려가야 한다. 휠체어리프트를 통한 이동은 사고가 난 사례가 있는 만큼 '1역사 1동선'에서 제외되는데, 교통약자들에게 7호선 고속터미널역은 전형적으로 동선이 단절된 역인 것이다. 휠체어리프트가 고장나면 장애인들은 7호선 고속터미널에서 올라가거나 내려갈 방법이 없다. 계단이나 휠체어리프트를 통해 도달한 지하2층 대합실부터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3층 승강장에 갈 수 있다.
3호선 교대역 역시 대표적으로 동선이 끊긴 역이다. 3호선 교대역은 승강장에서 내리면 한번에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3호선 교대역 엘리베이터마다 "2호선으로 환승하시는 휠체어 이용 고객께서는 반드시 지하 1층으로 올라오셔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지하 1층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 계단을 올라가 2호선 방면 환승통로를 걸어가야 '대합실과 승강장'을 연결해주는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 엘리베이터 한 대 없는 7호선 남구로역
특히 7호선 남구로역은 아예 엘리베이터가 단 한대도 역사에 설치 돼 있지 않았다. 지하2층 승강장에서 지하 1층까지 96개의 계단과 휠체어리프트가 나왔다. 지하1층에서 29개 계단을 또 오르면 대합실이 나오는데, 대합실에서 지상까지 또 40개 계단을 올라야만 해 교통약자들이 밖으로 나가기가 여간 어려워 보이는게 아니었다. 남구로역 인근에 사는 박모(82)씨는 "장애인들은 남구로역 지하철 이용이 어려워 보인다"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한쪽 방면 승강장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7호선 광명사거리역에는 28개 계단을 올라가거나 휠체어리프트를 타야 대합실이 나왔다.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오르던 김모(86)씨는 "반대편 승강장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바로 카드 찍고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로 갈 수 있어 문제가 없는데 반대편 승강장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많이 불편하다"고 전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난 2004년까지 지하철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장연의 주장대로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그 약속은 계속 미뤄져 왔다.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은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를 2022년까지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끝내 지키지 못했고, 현 오세훈 시장은 그 시기를 올해까지로 다시 연기했다. 약속이 번복되고 시한이 지연되는 만큼 전장연은 더욱 분개할 것이고 시민들은 더욱 불편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