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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포특권 폐지한다 했더니 진짠줄 알더라' [기자수첩-정치]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입력 2023.02.22 07:00
수정 2023.02.22 07:00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 대표 체포동의안 대응 관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외부 여론 동향 분석을 살펴보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임박했지만, 실제로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21일 민주당 의원총회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박홍근 원내대표는 "체포동의안 제출이 매우 부당하다는 점을 총의로 확인했다"며 "당론 채택 여부는 논의조차 할 필요 없는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이 대표가 직접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는데, 노골적인 부결 압박과 다름 없다. 이는 이 대표의 '캐릭터'를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은 잔인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그다. 그 말대로 제 1야당 대표의 지위를, 국회의원의 특권을 누구보다 잔인하고 효과적으로 사용 중이다.


불과 몇 달 전 자신이 했던 말도 필요하다면 뒤집는 데 인색하지 않다. 지난해 지방선거 지원 유세에 나섰던 이 대표는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며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다"고 했었다. 그에 앞서 대선 공약에는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폐지를 당당하게 넣었다.


물론 민주당에서는 "불체포특권은 헌법이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것으로, 당사자가 포기하고 말고를 결정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심지어 "편파 수사이기 때문에 특권을 행사하는 게 정의롭다"는 말도 하는 의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일례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경우, 문재인 정권 시절인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으로 검찰이 체포동의안을 제출하자, 국회 회기 중단을 요청하고 스스로 영장심사에 임했던 전례가 있다. 보수진영 입장에서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구속되는 엄혹한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이 대표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항변도 통하지 않을 터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치 스페셜리스트다. 평균 2년에 한 번 꼴로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와 같은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른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을 보면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 나아가 다음 행보까지 읽어낸다. 아무리 "정의로운 특권 행사" 같은 레토릭을 동원한다 해도 이 대표의 언행불일치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는 얘기다.


민주당 인사들도 문제점을 모르지 않는다. 의원은 물론이고 실무진들까지 "정말 이렇게 가도 되는 걸까"라고 반문하는 이가 늘고 있다. 그럼에도 공개적인 반발이 그리 크지 않는 것은 공천 학살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모습이 이 대표가 할 수 있는 묘수"라며 이 대표에게 공천권을 포기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대표도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친명 인사들이 지역구에 내려가 '이재명' 이름을 팔자 강력한 경고를 했고, 조정식 사무총장은 "이 대표도 공천에 대해 '사천(私薦)은 없다'는 분명한 뜻이 있다"고 밝혔다. 공천을 매개로 비명계 인사들을 향해 체포동의안 부결에 동참해 달라는 회유이자, 내년 총선까지 대표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구심점이 없는 비명계로서는 이 대표의 약속을 믿든, 살아남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를 하든 선택지가 별로 없다. 아예 대안 없는 혼돈보다는 이재명 중심의 대여투쟁이 낫다는 판단을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과연 1년 뒤에는 어떨까. '공천권을 내려놓겠다고 하니 진짜인 줄 알더라'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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