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다’, 이 가증스러운 슬로건
입력 2022.10.17 07:07
수정 2022.10.17 11:41
그 3시간 동안 대통령은 없었다
김정은과 그렇게 친한 척하더니
민주당 의원들 체통을 생각해야
“사람이 먼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으로 16대 대선에서 ‘재미’를 봤다고 했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사람’을 가지고 19대 대선에서 ‘재미’를 봤다. 북한 헌법의 ‘사람중심’에 오버랩 되는 이 구호로 그는 인간애 넘치는, 평등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세상 어떤 가치보다 인간이 앞선다고 했던 그가 우리 공무원의 서해 피격 사건에 대해서는 매몰차게 외면했다. 그는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가 서해상에서 실종됐다는 보고를 받은 시점부터 이 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이 불에 태워질 때까지의 3시간 동안 어디에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이라는 것을 그처럼 집요하게 추궁했던 사람이!)
그 3시간 동안 대통령은 없었다
어디엔가 라도 있었다면 당연히 목소리가 전해졌어야 했다. 우선 해경과 해군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수색‧구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것이다. 김정은과의 밀착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하던 그간의 정황으로 미루어 당연히 북에 대해서도 수색 및 구조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할 일이었다. 그러는 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다.
정권측은 이 씨의 월북설을 퍼뜨리면서 북측의 사살 및 시신소각 범죄에 대해서까지 엉뚱한 말로, 이른바 ‘쉴드’를 쳤다. 월북의 징후가 부인되는 정황 및 증거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문 정권의 높은 사람들은 상황을 그쪽으로 몰아가며 사건을 얼버무려 넘기려는 작태를 드러냈다. 고인의 형 이래진 씨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당 황희 의원은 “같은 편(호남)이니 월북을 인정하라”고 압박했다. 그렇게 하면 “보상을 해 주겠다”는 회유도 곁들였다.
감사원이 14일 이 사건을, 사실상 문재인정권의 조작·은폐로 결론짓고 전 정권 관련자 20명을 수사 요청했다. 이에 앞서 감사원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해 서면조사 요구를 했으나 비서실이 질문서 수령자체를 거부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문 전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고 ‘직접’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생사의 기로에 처한 우리 국민의 구조를 위한 어떤 노력도 외면한 데 대해 사과를 하기는커녕 경위를 알아보고자 하는 감사원에 되레 호통을 친 것이다. 그게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로 대선에서 재미를 본 문 전 대통령의 반응이었다는 게 황당하다. 그 슬로건은 가증스럽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고 그걸 내건 사람은 후안무치라는 지적을 면할 수가 없다.
김정은과 그렇게 친한 척하더니
감사원의 수사요청과 관련, 사건 당시 감사원장이었던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한 이후 안보실장이 관계장관회의에서 자진 월북 근거를 제시했지만 그 내용이 허위였다. 무례한 짓이라고 했던 문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최 의원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감사원 발표에 의하면 (피격 공무원) 이대준 씨가 북한해역에서 발견된 사실을 인지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면보고한 이후 이대준 씨가 피살돼 시신이 소각될 때까지 3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허위의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으로 몰고 간 정황이 비교적 자세히 나왔다.”
그는 이렇게 지적하기도 했다. 아무리 자존자대가 심한 문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라도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통째로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일부만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권한을 가진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이 내린 결론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표해 보이는 게 도리다. 이치가 그렇고 인간세상의 상식이 그런데도 ‘무례’라니? 지난 6월엔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당시)이 기자들을 만나 “그분(이씨)의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냐”라면서 “민생이 급한 지금 ‘왜’ 그거(그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느냐”고 반박했다. ‘왜’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되풀이 했다고 전해졌었다. 이것이 ‘사람’을 최우선의 가치라고 내세운 문 정권 유력자들의 민낯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을 부정하면서 검찰조사를 거부했네요. 대통령으로서 검찰의 진실규명에 협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피의자로서 방어권을 챙기겠다는 거죠. 그렇다면 검찰도 대통령이라고 예우할 것이 아니라 그냥 피의자로 다루면 됩니다. 즉각적인 강제수사를 촉구합니다.”
민주당 의원들 체통을 생각해야
문 전 대통령이 2016년 11월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그 때의 박 대통령이 수사를 시도하는 검찰에 대해 ‘무례’라는 용어를 썼다는 기억은 없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전직’이면서 어떻게 그처럼 당당하게 감사원더러 ‘무례’하다고 호통을 칠 수 있다는 것인가?
‘전직 대통령’이란 성역은 이미 소급입법성 특별법에 의한 전두환·노태우 사법처리를 기점으로 무너졌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으로 재임 중의 행위나 결정에 대한 면책을 기대한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 되고 만 것이다. 거기에 더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보호장치 까지도 박근혜 탄핵으로 벗겨져 버렸다. 잔여임기 1년도 채 안 되는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킨 반대급부, 최대의 수혜자는 문 전 대통령이었다. 그가 지금에 와서 감사원의 서면조사조차 거부한다는 건 ‘무례’일뿐 아니라 ‘무치(無恥)’이기도 하다.
문 전 대통령이 답해야 할, 경우에 따라서는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법을 빌리자면) 차고 넘친다고 여겨진다. 안보·국방·탈원전·신재생 에너지 정책 등에다 부인의 ‘버킷리스트 외유’ 논란까지 더해져, 온갖 뒷소문이 난무하고 의혹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 대통령의 소관이 아니었다고 발뺌할 일은 못된다. 정부의 중요 정책은 모두 대통령의 책임 하에 추진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권 시절 감사원장이었던 최 의원까지도 문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마당에 ‘무례’라는 말로 빠져나갈 생각은 말아야 한다. 명색이 국민의 대표라는 169명의 민주당 의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과 국민에 대한 책무를 새롭게 인식할 때다 우 전 비대위원장 말처럼 ‘민생’이 심각한 위기에 놓인 이 때 전직 대통령과 현직 당 대표의 방패막이 역할에 언제까지 올인할 것인가? 멀쩡하게 생긴 분들이 떼쓰는 아이, 노는 형님 말투로 국정감사장을 싸움판으로 만들면서….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