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한재림 감독 "'비상선언', 무엇을 기대했는지 따라 호불호 갈릴 수 있어"
입력 2022.08.15 08:27
수정 2022.08.15 08:29
[D:인터뷰] 한재림 감독 "'비상선언', 무엇을 기대했는지 따라 호불호 갈릴 수 있어"
한재림 감독이 '비상선언' 시나리오를 받은 건 10년 전이었다. 그 때만 해도 테러 바이러스의 이야기는 영화적 상상이 가미 된 재난 영화였지만 2022년에는 현실에 발 붙인 이야기가 됐다.
새로운 재난을 통과하고 있는 현 시대, 한재림 감독은 테러의 상황에 집중하기 보단, 재난을 마주한 사람들의 본성을 들여다본다. 두려움에 발현된 이기심 반대편에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 있는 선택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비상선언'은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나아간다.
"'우아한 세계'를 끝내고 '관상'을 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그때 설정은 재미있었는데 과연 후반부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감이 오지 않더라고요. 내가 이 작품을 한다면 관객들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지 고민했죠. 의미 있는 무언갈 줄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가 될 거라고 봤어요. '비상선언'은 영화적 상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정말 기막힌 감정도 들었고 마음도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공감했던 건 내가 그리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재난을 성실하게 이겨내고 있구나란 점에서 안도했습니다."
'비상선언'은 그 동안 다른 재난 영화들과 다른 방식으로 걸어간다. 보통 재난의 원인과 이유를 후반부에 극적으로 극복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재난의 이유인 류진석(임시완 분)을 영화 초반부 제거한다. 재난 앞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자 펼쳐지는 것이 '비상선언'의 진짜 시작이다.
"재난을 이겨낸다기 보단 재난이 왔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임시완 씨가 연기한 류진석이 재난의 상징이죠. 그 재난은 어느 자연재해와 똑같이 아무 이유 없이 오고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재난에 남겨진 사람은 어떤 삶에 살 것이냐에 집중을 했죠. 보통 자연 재해는 왔다 가면 끝인데 비행기 내 재난은 점점 확장되는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는 구조죠. 재난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이 만든 인간성 훼손, 증오심, 이기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재난들에 우리가 흐트러지는 이기심들을 연대할 수 있는 건 인간들만이 가진 연대감이고요. 예를 들면 코로나19 때 인상 깊었던 게 이탈리아에서 사람들이 방에 갇히자 창문을 열고 노래를 합창하더라고요. 이런 서로의 조금의 따뜻함, 연대감이 이 세상의 재난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잔인한 장면 없이 사실적인 사람들의 심리 묘사로 어느 때보다 공포스러운 상황을 만든다. 테러 상황 속 가장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도, 희망을 보게 만드는 것도 모두 인간에게서 발현된 심리다.
"공포란 어디서 기인하는가, 그렇게 바이러스를 보여줄 때 아무것도 아닌 걸 담으려고 했어요. 사람 피가 터져 죽거나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심리적 공포로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공포로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죠. 현실의 재난을 맞이하면서 이 재난 영화는 그들이 꼭 행복했으면 좋겠단 희망을 담았어요."
'비상선언'이 공개된 후 한재림 감독의 예지력(?)이 또 한 번 발휘됐다는 말들이 나왔다. 2017년 '더 킹' 개봉 당시 공교롭게도 한국 사회는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때였다. 한재림 감독은 이 같은 농담 섞인 평가에 억울하다고 강조했다.
"'더 킹' 때 그런 이야기 들었을 때도 사실 저는 원하지 않았거든요. 법이라는 게 절대적으로 보이지만, 그걸 다루는 건 사람이고, 그렇게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게 '더 킹'이었는데 마치 예언처럼 되어버렸죠. 그런데 이번에도 이렇게 됐네요. 이미 영화 캐스팅이 다 됐고 영화 들어가기 일보 직전에 코로나19가 덮쳤어요. 그 때 화도 났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란 우스갯소리를 했어요. 관객에게 새로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다음 작품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한재림 감독에는 늘 깊이 있는 사회적 시선과 함의가 베여있다. 이번 작품 역시 바이러스로 뒤덮인 비행기의 착륙을 거부하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찬, 반 투표를 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의도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두려움을 표현하고 싶어요.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치료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마음도 있죠. 두려움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직접적인 묘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두려움과 무서움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낼 것 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영화는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박해준, 김소진 등 멀티 캐스팅으로 만들어낸 인물별 서사가 너무 많아 지루하다는 평가와 후반부가 이어지는 반전이 의미 없는 장치적으로 다가왔다는 감상평도 존재한다.
"영화라는 게 제 생각과 전혀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어요. 정말 다양한 피드백이 있죠. 다양한 해석을 줄 수 있는 인물 군상이 나오는데, 인물들이 영화에서 이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왜 저렇게 행동하지?'보다 '저럴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으면 했죠."
"어떤 영화를 기대한 것에 대해 평이 갈릴 수 있다고 합니다. 스릴러적인 요소를 기대했는데 재난 영화로 빠져서 실망하신 분이 있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비상선언'은 재난 영화였습니다. 영화 범주 안에서 봐주셨으면 해요. 너무 많은 반전이 있다고 하지만 '극적인 반전을 줘야지'란 의도가 아닌 사실적으로 접근하려고 했어요. 수많은 변화들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이니 당연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상선언'은 한국 최초로 항공 재난 영화로써 한층 진보한 우리나라 영화 제작진의 기술력을 증명했다. 영화 속 비행기 내부는 할리우드 세트 제작 업체와 협력해 실제 대형 비행기를 미국에서 공수해 비행기 본체와 부품을 활용해 제작했다. 실감 나는 비행기 추락 신은 대형 비행기 세트를 회전할 롤링 짐벌(Gimbal)을 투입했다. 한재림 감독은 영화의 사실감에 가장 큰 포인트를 맞췄다.
"SF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관객들이 한 번도 안본 우주선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 감독의 세계관을 믿고 가는 거죠. 그런데 비행기는 모두 타봤잖아요. 그래서 사실적으로 그려야 했는데 제약이 많았어요. 좁은 공간에 의자 놓고 엄청난 위기 상황을 그려내기 위해 짐볼로 세트를 돌려야 했고요. 보통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실제 카메라 감독이 타지 않아요. 기계로 암을 뻗어서 인물들의 연기를 묘사하죠. 저희는 사실감을 주기 위해 촬영 감독님이 비행기에 탔고 직접 핸드헬드를 들고 찍어냈어요. 그게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노력과 수고였습니다."
한 감독은 '우아한 세계', '관상'에 이어 '비상선언'까지 배우 송강호와 세 번 째 호흡을 맞췄다. 시나리오를 각색할 때부터 영화의 균형을 잡는 인호 역은 송강호를 염두 했다고 한다.
"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강호 선배가 안 하면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지상에서의 인호 역할이 단순하게 표현하면 안됐거든요. 많은 레이어가 쌓이는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니까요. 평범한 사람인 인호가 얼마큼의 호소력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했어요. 사실 강호 선배와는 세 번째 작품이라 굉장히 의지가 많이 됐어요. 강호 선배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선배로서 현장에서 항상 기댈 수 있는 역을 해주기도 해요. 이번에도 의지를 많이 했어요."
한재림 감독은 관객들로부터 "'비상선언'으로 힐링했다"라는 평을 가장 듣고 싶다.
"관객들이 '마음이 참 좋아졌다', '힐링 받은 것 같다'란 이야기가 가장 듣고 싶었어요. 조금의 성실함만 모인다면 재난을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