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주의자들의 선동정치 이제 끝내자
입력 2022.03.14 08:00
수정 2022.03.14 12:28
촛불혁명의 아들 자처한 문 대통령
선동선전술로 정치적 반대자 제압
“노무현 원수 갚는다는 미명 아래…”
“여러분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민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2월 19일 여의도 공원에서 열린 당선 1주년 기념행사 ‘리멤버 1219’에서 한 말이다. 그는 역설했다.
“존경하는 노사모 여러분, 그리고 시민 여러분. 다시 한 번 나서 주십시오. 여러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니고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노란 목도리를 두른 그는 단상에서 노사모 등 주최 측과 참석 시민들을 향해 여전히 넘쳐나는 승리감을 드러내며 ‘시민혁명’을 외쳤다.
“인류가 발명한 역사 중에서 가장 훌륭했던 게 저는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혁명요. 왜냐하면 그 많은 것 중에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복종하고 수탈하는 관계가 가장 큰 문제거든요.”
노 전 대통령은 04년 12월 5일(현지시각) 파리에서 프랑스교민과의 간담회에서도 그처럼 ‘혁명’을 역설했다.
그가 말한 시민혁명은 ‘계급혁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도로 대한민국에서 계급혁명이 일어나 마침내 지배세력 교체에 성공했다는 감격에서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촛불혁명의 아들 자처한 문 대통령
그는 이해 1월 29일 대전에서 열린 ‘지방화시대 선포식’에서 “천도(遷都)는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민주화, 남북평화 등은 전직 대통령이 다 해버려 그 정도론 역사책에 빛이 안 날 것 같아 지방화만큼은 내가 간판을 붙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사회와 국가가 ‘혁명’에 의해 구조적으로 바뀌었다고 그는 말하고 싶어 했다. 그 혁명을 확인하고 기리기 위해 새로운 도읍을 정해야 하겠다는 게 그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대선 기간 중에는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화해소 방안으로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선 후 그는 그 공약으로 “재미를 좀 봤다”고 술회했다. ‘신행정수도 건설’이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고 여기게 되자 그는 더 과감히 ‘천도’ 구상을 밝혔다.
옛날 왕조시대의 천도는 ‘역성혁명’의 결과였다.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했지만 심리적으로는 왕조시대적 권위의식과 이어져 있었다. 국가적·사회적 지배세력이 교체됐고, 그 중심엔 자신이 있다는 생각에 들떴던 듯하다. 천도의 동인(動因)을 ‘시민혁명’이라고 했지만 그건 절대왕정 체제를 무너뜨린 ‘부르조아 혁명’이 아니라 ‘계급혁명’이었다. 이로써 우리사회는 이념적·계급적 적대세력의 난투장이 되어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17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 광주가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다”고 말했다. 그해 9월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세계시민상을 수상한 그는 “나는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취임하기 무섭게 촛불집회를 ‘혁명’으로 명명하고, 스스로 ‘혁명의 아들’로 자처한 것이다. 그 사흘 후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그는 ‘촛불혁명’을 예찬했다.
‘혁명’에 관한 한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충실한 제자 겸 승계자다(사실 누가 누구에게 혁명론을 주입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 대통령 역시 파리에서 가진 동포 간담회(현지시각 18년 10월 13일)에서 혁명 예찬론을 펼쳤다.
선동선전술로 정치적 반대자 제압
“한국과 프랑스는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빛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인류의 마음에 자유·평등·박애를 새겨 넣었고 촛불혁명은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켰습니다.”
이들의 ‘혁명’은 구지배세력을 대중의 힘으로 축출하고 그 자리를 신지배세력이 차지하는 과정이다. 16년 12월 16일 보도된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혁명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
“만약 헌재가 탄핵 기각을 결정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김용옥이 물었다. 문재인이 대답했다.
“국민들의 헌법의식이 곧 헌법이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런 판결을 내린다면 다음은 혁명(革命)밖에는 없다.”
명색이 변호사이면서 아주 무서운 말을 예사로 했다. 대중의 의식이 헌법 위에 있다는 것이다. 헌재가 광화문 촛불 군중이 원하는 대로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혁명’의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당당히 말했다. 군중의 힘으로 축출하겠다는 압박이었다.
이 같은 혁명주의자들은 ‘목적을 위해 동원되고 구사되는 수단은 언제나, 무엇이든 옳다’는 인식으로 무장돼 있다. 이들은 선동과 흑색선전으로 대중의 심리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동화 속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대중들을 이끌고 다니는 것이다. 그걸 이들은 ‘집단지성’운운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선동으로 인한 심리적 마취효과로 보는 게 옳다.
문재인 정권 5년은 가치·제도·인식의 대 혼란기였다. 혁명세력은 선전선동술로 반대자들을 제압했다. 이들에게 ‘반혁명 분자’의 옷을 입혀 광장의 군중들에게 던져 넣어 버린 것이다. 신체에 가하는 폭력이상으로 심리에 가하는 폭력이 무서울 수 있다. 그 점을 혁명주의자들은 십분 활용했다.
“노무현 원수 갚는다는 미명 아래…”
그 선동 가운데 하나가 노 전 대통령의 자살과 관련한 정치적 타살설이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이 09년 4월 인터넷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는데도 지지자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증오심을 거두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감정이 누그러지기는커녕 이제는 ‘타살설’이 정설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 분위기다.
“문재인 시대에 들어 노무현의 원수를 갚는다는 미명 아래 ‘증오의 대오’를 ‘정의의 대오’로 착각하는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다.”
정치적 반대자들의 말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발탁해 정치적 스타로 만들었던 김두관 민주당 의원의 반성이다. 그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이제 노무현의 유훈시대는 끝났다”는 민주당 지지자의 글을 인용했다.
물론 김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그의 담대함을 상기시키려는 뜻으로 그 글을 썼다고 여겨진다. 그 점에 대해 말하자는 게 아니다. 김 의원의 말처럼 민주당이 ‘2010년 지방선거 완승부터 2020년 총선 대완승까지’의 10년간 ‘유훈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 저변에는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증오와 저주가 깔려 있었다.
문 정권의 선동과 흑색선전의 정치는 국민에 의해 저지당했다. “단지 0.73%의 차이일 뿐이지 않느냐”고 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 가운데 혁명주의자들은 극히 일부일 것이라고 믿는다. 대다수의 온건한 상식인들을 ‘혁명’으로 충동질하는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언제까지나 국민들이 좌우로 나뉘어 (주로 언어적이긴 하지만) 폭력성 짙은 ‘권력투쟁’을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