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결산-자동차] 반도체 쇼티지 타격…전기차 전환 본격화
입력 2021.12.14 06:00
수정 2021.12.20 10:26
국내외 수요 확대에도 반도체발 생산차질로 대응 못해
현대차그룹 3사 전용 전기차 잇달아 출시…중견 3사는 '제자리'
쌍용차 M&A 지지부진…내년까지 불확실성 이어질 듯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불확실성이 산업 전반을 휘감은 한 해였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펜데믹(대유행)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각 산업과 기업들은 비대면(언택트·Untact) 시대에 맞춘 다양한 사업 전략을 통해 생존을 모색했다. 올 한 해 산업계에서 발생한 이슈들과 현황을 분야별로 결산해본다.[편집자 주]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탄탄한 내수 시장의 뒷받침으로 위기를 넘겼던 완성차 업체들은 올해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라는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했다.
전기차 전환이 본격화된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는 전기차 전용 플랫품 E-GMP 기반의 전기차 모델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대응에 나선 반면, 한국GM,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중견 3사는 자체 생산 전기차 모델의 부재로 우려를 낳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쌍용차의 새 주인 찾기는 올해도 업계의 주요 관심사였으나 연말까지 마무리되지 않은 채 불확실성으로 남았다.
반도체 수급난에 가동 중단 잇달아…시장은 풀렸으나 팔 물건이 없다
올해는 각국의 봉쇄조치가 풀리고 주요국 경기가 되살아나며 세계 자동차 시장 수요가 기지개를 펴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기대감이 커졌었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기업들의 생산차질과 ICT(정보통신기술) 분야로의 수요 집중으로 전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발생하며 자동차 업계에 큰 타격으로 이어졌다. 수요가 늘었어도 막상 팔 물건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반도체발 생산차질은 한국GM부터 시작됐다. 지난 2월 반도체 부족으로 부평 2공장 가동률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던 한국GM은 이후에도 반도체 수급 상황에 따라 가동중단과 생산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신차의 부재로 수요 자체가 많지 않은 쌍용차 역시 반도체 부족으로 물량공급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르노삼성은 르노그룹의 지원으로 그나마 반도체 공급이 원활했으나 생산 차질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지난해 4분기부터 반도체 수급 불균형을 예측하고 재고 확보에 노력을 기울인 덕에 한동안 정상 가동을 유지해 왔으나 하반기부터는 공장이 하나 둘씩 멈추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3분기에만 세 차례 충남 아산공장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으며, 울산 4공장도 한 차례 가동을 멈췄었다. 아산공장은 연말부터 내년 2월까지 설비교체 작업을 겸해 휴업에 돌입한다. 기아 역시 오토랜드 광명(옛 소하리공장)이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빚었다.
해외 공장 역시 반도체 공급난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이 잇달아 셧다운됐다.
잇단 가동차질은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투싼, 싼타페, 스포티지 쏘렌토 등 인기 모델은 계약부터 인도까지 6개월 이상씩 걸린다. 쌍용차 역시 렉스턴 스포츠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이 인기를 얻으며 실적 반등을 견인할 기대주로 떠올랐으나 매달 수천 대씩 출고 대기 물량이 쌓이고 있다.
신차 인도가 늦어지면서 수개월 전 출고된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해외 판매도 마찬가지다. 한국GM은 미국향 트레일블레이저, 르노삼성은 유럽향 XM3 수출물량을 최대한 뽑아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반도체 수급난으로 생산이 원활치 못해 일 년 내내 애를 태웠다.
현대차와 기아는 연초 올해 판매 목표를 각각 416대(이후 400만대로 조정), 292만2000대로 도합 692만2000대로 수립했지만, 11월까지 실적으로 볼 때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지난 2015년부터 7년 연속 목표 달성 좌절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수급난이 올해 9월을 정점으로 점차 완화되고 있지만,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수급난은 완성차 업체들 뿐 아니라 반도체 제조사, 또 다른 수요처인 ICT 업계까지 여러 곳의 상황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향후 동향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면서 “내년 사업계획에도 불확실성 요소로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전환 본격화…현‧기‧제-르‧쌍‧쉐 희비 교차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도 올해 자동차 시장의 특징 중 하나다. 배터리 성능 개선이라는 기술적 뒷받침과 테슬라라는 선도 업체의 시장 개척이 내연기관차에 머물러 있던 완성차 업체들로 하여금 서둘러 전기차 전환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내연기관차 수요가 부진해지며 발생한 일종의 ‘공백기’가 오히려 기존 공장을 구조조정하고 전기차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브랜드들이 본격적인 전기차 전환을 알렸다. 현대차 아이오닉 5, 기아 EV6, 제네시스 GV60 등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의 전기차들이 잇달아 출시됐다.
기존 내연기관차 플랫폼 기반의 파생 전기차와 달리 디자인이나 공간활용, 성능 측면에서 월등한 강점을 갖는 전용 전기차들은 시장의 반응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좋았다.
현대차‧기아는 후속 전기차 시리즈인 아이오닉 6, 아이오닉 8, EV9 등의 출시를 예고하며 전기차 시장에서의 리더십 강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반면 완성차 중견 3사의 전기차 전환 대응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GM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로부터 쉐보레 볼트 EV 신형 모델과 SUV 버전인 볼트 EUV를 수입해 판매한다는 계획만 있을 뿐 자체 생산계획은 전무하다. GM 본사도 한국에서의 전기차 생산은 예정돼 있지 않다고 못을 박은 상태다.
그나마 수입 판매 차종인 볼트 EV와 EUV도 배터리 리콜 이슈로 인해 국내에 들여오지 못하는 형편이다.
르노삼성 역시 지난해 말 SM3 Z.E 단종과 함께 부산공장 생산라인에서 전기차가 사실상 사라졌다. 르노 트위지가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이는 초소형 전기차라는 점에서 일반 전기차와 가격이나 용도 측면에서 차이가 있고, 그나마 르노삼성 자체 생산이 아닌, 협력사 동신모텍에서 위탁생산하는 방식이다.
쌍용차는 지난 6월부터 첫 전기차 모델 코란도 이모션을 생산하고 있지만 아직은 유럽 수출 물량만 대응하고 있다. 내년 초 국내에 출시한다는 계획이지만, 경쟁 모델보다 짧은 주행거리로 인해 판매량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인수합병(M&A) 이슈를 빨리 해결해 경영 안정화를 이루는 게 시급하다. 쌍용차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를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명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인수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차 분야에서의 규모의 경제를 통해 투자 여력이 충분한 현대차그룹 산하 브랜드들과 달리 중견 3사는 당장 일정 규모의 판매량이 보장되는 내연기관차를 생산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도 급급한 상황이라 전기차 시장 대응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외국계 기업인 한국GM과 르노삼성은 대주주인 GM과 르노의 해외시장 전략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따.
1년 넘게 끌어온 쌍용차 M&A…또 다시 해 넘기나
지난해 4월 대주주 마힌드라가 쌍용차에 대한 신규 자본 투자를 거부하며 본격화된 이른바 ‘쌍용차 사태’는 올해가 다 가도록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기업회생을 신청한 쌍용차는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으로 올해 3월까지 시간을 벌었으나, 결국 새 투자자를 찾지 못해 올해 4월 15일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며 2011년 3월 법정관리 졸업 10년 만에 또 다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쌍용차는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통해 조기 법정관리 졸업을 꾀했지만 이 과정 역시 순탄치 못했다. 지난 7월 인수의향서를 접수한 원매자 중 재계 38위 그룹인 SM그룹이 포함되며 쌍용차 경영정상화에 파란불이 켜지는 듯 했으나, 막상 9월 진행된 인수제안서 접수에서는 SM그룹이 불참해 M&A 열기는 한풀 죽었다.
본입찰에 자금조달 능력이 불분명한 미니 기업과 재무적투자자(FI)가 조합된 컨소시엄들만 남은 상태에서 법원이 택한 곳은 비교적 구체적인 미래 청사진을 제시한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이었다.
10월 20일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에디슨모터스는 2030년까지 쌍용차에 전기차 라인업 30종을 구축하는 등 ‘전기차 명가’를 만들겠다고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초 10월 28일로 예정됐던 M&A 양해각서(MOU) 체결은 협의 기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연기돼 지난달 2일에서야 이뤄졌고, 지난달 10일부터 23일까지 진행하려던 정밀 실사 역시 일주일 연기됐다.
이에 따라 M&A 본계약 체결과 회생계획안 제출 일정 역시 줄줄이 미뤄졌다.
에디슨모터스는 실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부실채권이 추가로 발견됐다며 법원에 ‘인수가격 조정 요청’을 한 상태로, 매각자문사인 EY한영회계법인과의 협상 과정에서도 인수 가격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에 쌍용차 인수 이후 운영비용 확보를 위해 쌍용차 자산을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겠다는 계획도 산은의 부정적 입장으로 제동이 걸린 상태라 쌍용차의 운명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에디슨모터스와 쌍용차는 당초 연말까지 본계약을 마무리하고 회생계획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인수가격 협상 난항으로 인해 사실상 연내 결론을 맺는 건 불가능한 형편이다.
이미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은 내년 1월로 미뤄졌고, 본계약도 1월 중순은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에디슨모터스의 자금력이나 인수 이후의 운영능력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이 많지만 대안이 없으니 답답한 상황”이라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자금력이 충분한 SM그룹이 철수한 게 쌍용차로서는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