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1997' 몰락 대기업 나오나…재계 공포 확산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0.03.29 05:00
수정 2020.03.29 07:17

IMF, 리먼 사태 등 위기 때마다 대기업 한두 곳씩 무너져…이번엔 어디?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도 안심 못해…총수들 "코로나19 이후 대비"

“이대로 가다가는 대기업 한두 곳은 무너질 수도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때 못지 않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재계에도 생존 여부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대우그룹, 쌍용그룹 등 재계 10위권에 속했던 굴지의 대기업 그룹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1997년 IMF 사태를 연상케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외에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을 받는 것은 자본 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들이지만, ‘대마불사(大馬不死)’로 여겨졌던 대기업 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 경제에 큰 악재가 닥칠 때마다 우리 경제에서 큰 비중을 담당했던 대기업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대마불사' 대우그룹, 쌍용그룹도 위기 못 버텨


1990년대 후반 발생한 IMF 사태가 대표적이다. 한때 현대그룹, 삼성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3대 재벌그룹으로 군림했던 대우그룹은 당시 40개에 달했던 계열사를 10여개로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생존을 모색했지만 결국 위기를 넘지 못하고 1999년 8월 전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며 해체됐다.


10대 그룹에 포함됐던 쌍용그룹도 같은 운명이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쌍용제지와 쌍용자동차, 쌍용정유, 쌍용중공업 등 주력 계열사들을 줄줄이 매각하며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2008년 미국발 리먼사태 후폭풍으로 어려움을 겪다 결국 무너진 기업들도 있었다. 해운·조선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던 STX그룹과 C&그룹(옛 SM그룹)이 대표적이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과거 IMF나 리먼사태 이상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앞선 경제위기 사례들은 금융 분야에서의 위기가 원인이 되고 실물경제 쪽으로 확산되는 양상이었다면 지금은 금융과 실물경제가 동시에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지역에서 감염자가 급격히 확산되며 코로나19 사태가 세계 경제대공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인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시장이 모두 침체에 빠졌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게 된 것도 기업들에게는 타격이다. 미국과 유럽, 인도 등지의 현지 공장 가동중단은 물론, 주요 국가들이 국경 봉쇄에 나서면서 물류 흐름도 원활치 않게 됐다.


항공산업은 이미 고사상태고, 해운산업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거시경제 악화로 철강, 정유, 화학 등 주요 기반산업은 공급과잉 사태에 직면했고, 유가 하락에 따른 주요 원유생산 프로젝트 지연으로 조선업계도 재도약 동력을 상실했다. 자동차, 전자 등 고가의 소비재도 글로벌 불황에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자금의 흐름 문제뿐이 아니라 세계 경제권 내에서 원료나 부품을 사서 제품을 만들고 시장으로 옮겨 판매하는 기업 활동의 모든 부분에 지장을 받고 있으니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 기업이 하나 둘씩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D 위기설 생존자 두산그룹, 또다시 위기…4대그룹도 허리띠 졸라맬 듯


이미 국내 15위 기업집단인 두산그룹이 위기의 가시권에 들어왔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타격을 입은 주력 계열사 두산중공업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이다.


지난 2013년 이른바 ‘3D 위기설’ 이후 동양그룹이 무너지고 동부그룹이 반토막 난 와중에서 살아남았던 두산그룹은 생존을 위해 사양산업이 된 원전사업을 대체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지만 자금력도, 시장 상황도 녹록치 않다.


그나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수혈 받아 시간을 벌게 됐지만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적자를 내는 등 실적 악화가 장기화되고 있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재계를 대표하는 4대그룹도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실적 악화가 확실시되는 만큼 코로나19 사태 종식 이후 피해 규모를 가늠해 감원이나 감봉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4대그룹 총수들은 일제히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우려하며 임직원들에게 철저한 대비를 당부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5일 수원 삼성종합기술원을 찾아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미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24일 화상회의로 열린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SK가 짜놓은 안전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잘 버텨보자'는 식의 태도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씨줄과 날줄로 안전망을 짜야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지난 3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시적인 사업 차질은 불가피하겠지만 다양한 컨틴전시 계획을 수립해 당면한 위기 극복은 물론 이후에도 조기에 경영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광모 회장도 27일 (주)LG 주주총회에서 서면 인사말을 통해 “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후의 성장을 준비토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