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현대중공업 노조, 향후 행보는?

박영국 기자
입력 2015.09.13 09:00
수정 2015.09.13 10:21

11월 노조 집행부 임기만료…추석 전 타결 여부 관심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원들이 10일 울산 조선소에서 파업 집회를 벌이고 있다.ⓒ현대중공업노동조합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련)의 공동파업이 유명무실화 되며 조선노련을 주도하던 현대중공업 노조도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했다. 집행부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시간이 촉박해진 현대중공업 노조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다.

13일 현대중공업 노사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진행된 36차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서 양측은 임금협상안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테이블을 접었다.

노조는 △임금 12만7560원(기본급 대비 6.77%, 호봉 승급분 별도) 인상 △직무환경수당 100% 인상 △고정 성과금 250% 이상 보장 등의 기존 요구안을 고수했고, 회사측은 △기본급 동결 △생산성향상 격려금 100%, △안전목표달성 격려금 100만원 △상여금 분할지급 등을 골자로 하는 기존 제시안에서 추가 제시안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회사측은 노조가 제안한 ‘매일 교섭’을 수용하고 본교섭과 실무교섭을 병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2일부터 추석 연휴 전까지 좀 더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사 양측 모두 추석 연휴 전 타결 의지는 강하다. 사측은 매년 가장 큰 과제인 임단협을 빨리 해결하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고, 노조의 경우 집행부 임기가 오는 11월 말이면 종료되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처지다.

노조규약상 임기만료 한 달 전인 10월 말까지는 차기 노조위원장 선출을 마쳐야하고, 이를 위해선 늦어도 10월초엔 선거관리위원회를 꾸려야하는 만큼 노조 입장에서는 추석 이전에 임단협을 마치는 게 절실하다.

그렇다고 임단협 조기 타결을 위해 섣불리 요구 수준을 낮추기도 힘든 입장이다. 노사 합의 내용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응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 잠정합의안을 내놓았다가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될 경우 선거에서 현 집행부가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앞으로 이어질 협상에서 노조가 좀 더 현실적인 양보안을 내놓더라도 최소한 최근 임금협상이 타결된 삼성중공업보다는 좋은 조건을 마지노선으로 잡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일 타결된 삼성중공업의 최종 합의안을 보면 기본급 인상률이 0.5%로 간신히 ‘동결은 아니다’라는 상징성만 갖춘 수준이지만, 타결 격려금 150만원, 위기극복 실천 격려금 50만원, 리드타임 10% 단축 추진 격려금 250만원, 설·추석 귀향비 각 30만원 등 일시금이 480만원에 달한다.

삼성중공업보다 인상률이나 일시금 규모가 작을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동일한 조건이라도 현대중공업 노조로서는 명분이 서질 않는다. 조선노련의 출범 배경 중 하나가 ‘조선업체들이 입을 맞춰 비슷한 수준의 임금 제시안을 가지고 각사 노조를 각개격파하는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상률이나 일시금 규모 못지않게 노사간 대립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상여금 분할지급이다. 회사측은 상여금 800% 중 300%는 25%씩 12개월에 나눠 지급하고, 나머지 500%는 상·하반기에 각 200%, 설과 추석때 각 50%씩 지급하는 방식을 제안한 상태다.

이에 대해 노조는 젊은 직원들의 시급을 올리는 효과를 가져와 법정 최저임금에 걸리지 않도록 하고, 월 지급액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도록 해 임금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조합원 중에서는 사측이 통상임금에 일부 금액을 제외시키기 위해 분할지급안을 내놓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조합원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만큼 노조는 강경 투쟁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교섭에서도 사측은 노조의 ‘매일 교섭’ 제안을 수용하는 대신 ‘예정된 파업 철회’를 요구했으나, 노조는 이를 거부하며 “파업은 일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노조는 교섭이 진행되던 11일에도 지단(사업부)별 오후 4시간 순환파업을 진행했으며, 15일과 16일에도 순환파업이 예정돼 있다. 14일에는 집행부가 서울 현대중공업 계동사옥으로 올라와 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또, 17일에는 조선노련 2차 공동파업(4시간)과 동시에 울산 태화강 둔치에서 현대차 노조와 공동 집회도 실시한다.

다만, 노조 파업 자체가 회사측에 큰 타격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업 참여율이 높지 않아 조업 차질도 크지 않은데다, 업황이 좋지 않은 조선업체 노조의 파업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아 상징성을 확보하기도 힘들다.

더구나 조선노련 소속 다른 조선업체 노조들 중 중소 조선업체들이 대부분 임단협을 마무리지었거나 내부 사정으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고, 대형 조선업체 중에서도 삼성중공업이 임단협 타결로 전열에서 이탈하며 공동파업의 상징성도 희박해졌다.

관건은 노조의 ‘오너 이슈 공략’이 될 전망이다. 노조는 회사측이 오는 21일까지 납득할 만한 임금협상 추가 제시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FIFA(국제축구연맹)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 취리히에 투쟁단 파견을 위한 준비에 착수할 예정이다. 최근 FIFA 회장 출마를 선언한 현대중공업 최대주주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을 겨냥한 것이다.

노조 측은 FIFA 회장 선거(내년 2월)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점을 들어 투쟁단 파견이 정 이사장의 FIFA 회장 낙선운동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국제적 이슈가 될 만한 사안인데 선거 결과와 무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 이사장은 2002년을 전후로 회사의 모든 직함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정치 활동에 몰두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만큼 그와 관련된 이슈는 회사로서는 핸디캡이 될 수밖에 없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14일부터 일주일 간 교섭을 통해 회사측에서 수정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고, 내용은 삼성중공업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노조도 국제 망신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FIFA 파견까지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노조가 위원장 선거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있는 만큼 회사측이 키를 쥐고 있는 셈”이라며 “회사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빨리 타결되면 좋겠지만, 노조로부터 양보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버텨도 손해볼 게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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