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깔아준 최강희호…어디서부터 꼬였나

김윤일 기자
입력 2013.06.19 00:00
수정 2013.06.19 00:44

후반 15분, 수비 진영에서 볼 뺏긴 뒤 실점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기용, 단조로운 공격


굴욕이나 다름없는 패배였다.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의 기쁨을 누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8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최종전에서 후반 15분 레자 구찬네자드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 패했다.

이로써 승점을 추가하지 못한 한국(승점 14)은 이란(승점 16)에 조 선두를 자리를 내준데 이어 카타르를 5-1로 완파한 우즈베키스탄과 승점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1골 앞서며 간신히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비기기만 해도 브라질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지만, 반드시 승리를 따내겠다는 대표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 전, 이란의 케이로스 감독은 노골적인 언론플레이로 최강희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을 자극했기 때문.

그런 이란을 찍어 누르겠다는 최강희 감독의 속내는 공격수들을 대거 기용한 선발 라인업에서부터 드러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파격적인 선수 기용은 패착이 되고 말았다.

이날 비로 인해 잔디 상태가 미끄러운 것을 감안, 장신 공격수 이동국과 김신욱을 투톱으로 배치해 제공권을 싸움을 벌이겠다는 의도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이들에게 양질의 크로스를 제공해야할 윙어의 부재였다.

최강희 감독은 좌우 윙어에 손흥민과 지동원을 선발로 기용했다. 특히 이동국, 김신욱과 마찬가지로 타겟맨인 지동원의 측면 배치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지동원은 경기 내내 2선으로 내려와 전진 패스를 제공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다 보니 패스 성공률은 물론 움직임까지 둔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손흥민의 활용도 아쉬운 대목이다. 발재간이 좋고 개인기가 뛰어난 손흥민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탁월한 선수다. 이날 경기서도 윙어보다는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윙포워드 역할을 부여받아 이란의 수비진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인기에 의존한 모습을 고집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 협력 수비에 고립되는 모습을 노출했다. 물론 왼쪽 수비수 김치우가 수시로 올라와 크로스를 올려주는 등 사실상 윙어 역할을 맡아 활발한 공격 작업이 이뤄지도록 도와줬다.

이 점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었다. 김치우의 크로스는 이동국, 김신욱, 지동원의 머리에 정확히 배달됐지만,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다 보니 제 위치를 비우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 후반 15분 왼쪽 수비라인이 무너지며 실점하고 말았다.

지나치게 단조로운 플레이로 일관한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대목이다. 특히 전방으로 부챗살 패스를 공급해 줘야할 중앙 미드필더가 없었다. 두 번째 A매치를 치른 이명주는 활동량을 무기 삼아 움직임으로 교란시키는 임무가 잘 어울렸고, 짝을 이룬 장현수는 수비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한 선수였다.

결국 패스플레이에 능한 구자철과 기성용의 공백이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부상을 이유로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이들의 부재는 레바논 원정 1-1 무승부, 우즈베크전 자책골 1-0승, 이란전 0-1패라는 졸전을 야기했다.

이란은 선취골을 넣은 뒤 보란 듯이 침대축구를 선보였다. 경기장에서는 야유가 쏟아졌지만, 이들의 비매너를 탓하기 보다는 침대를 깔아준 최강희호의 졸전이 더 큰 문제였다. 경기 후 이란 선수들이 국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펼칠 때 그라운드에는 물병 등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분노보다는 초라한 출정식을 가져야할 대표팀을 향한 자조 섞인 비난으로 비쳐졌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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