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냄새 빠진 주유소의 변신…편의점·택배 거점 찍고 '풀소유' 공간으로
입력 2026.05.03 06:00
수정 2026.05.03 06:00
정유사, 주유소를 ‘플랫폼’으로 재정의하며 생존 전략 전환
편의점·세차·물류 결합으로 체류형 수익 구조 구축 확대
전기차 충전 확산 속 수익성 한계…투자 부담과 양극화 과제 부각
운전자에게 주유소는 늘 '잠깐 들르는 곳'이었다. 기름을 넣고 결제한 뒤 바로 빠져나오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주유소에는 편의점과 카페, 세차장, 물류 거점이 들어서며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주유소의 이러한 화려한 변신 뒤에는 절박한 생존 고민이 깔려 있다. 국내 주유소는 2010년 1만3004개로 정점을 찍은 뒤 해마다 수백 개씩 문을 닫으며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알뜰주유소 확산에 따른 출혈 경쟁과 전기차 및 수소차 등 친환경차 보급 가속화는 주유소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여기에 경기 둔화로 인한 물류 수요 약화까지 겹치며 단순히 기름 판매 마진만으로는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정유사들이 주유소라는 오프라인 부지를 활용해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다.
정유사들은 주유소를 단순 연료 판매망이 아니라 소비자 접점이 있는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가장 먼저 자리 잡은 변화는 편의점과 세차장 결합이다. 주유 고객을 편의점 소비로 연결하고 세차·정비 수요까지 흡수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자동세차와 프리미엄 세차, 타이어 교체, 경정비 등 차량 관리 서비스가 주유소의 주요 유외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류 거점화도 현실화된 변화다. GS칼텍스는 스마트MFC(Micro Fulfillment Center)를 구축하고 주유소 기반 물류 서비스를 운영해 왔다. 도심 곳곳에 분산된 주유소를 활용해 물품 보관과 출고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주유소가 라스트마일 물류망의 일부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에쓰오일도 유외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편의점과 커피·패스트푸드, 세차 고급화,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결합하며 주유소를 생활 서비스 공간으로 확장하는 전략이다. HD현대오일뱅크 역시 일부 직영 주유소를 중심으로 유휴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왔다. 다만 이들 사업은 전면 확산 단계라기보다 일부 거점 중심의 선별적 운영에 가깝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충전기만으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충전 시간은 길고 회전율은 낮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이 충전소에 편의점과 카페, 라운지, 세차 서비스를 함께 붙이는 이유다. 충전 대기 시간을 소비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수익성이 확보된다.
주유소를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바꾸는 시도도 이어졌다. 서울 금천구 SK 박미주유소는 연료전지와 태양광 설비를 갖춘 에너지슈퍼스테이션으로 운영된 사례다. 주유소에 분산전원을 설치하고 이를 전기차 충전과 연계하는 모델이다. 다만 높은 투자비와 사업성 문제로 확산 속도는 제한적이다.
다만 현장에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경우 주유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 회전율이 낮다는 점이 수익성 확보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충전 시간 동안 고객이 소비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서비스 결합이 필수적이지만 이는 다시 추가 투자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특히 자산 규모가 큰 도심 직영 주유소는 복합 개발이 용이한 반면 투자 여력이 부족한 지방 소형 주유소는 폐업 시 발생하는 1억5000만원 이상의 토양 정화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해 흉물로 방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유소가 미래형 공간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더불어 영세 사업자를 위한 제도적 지원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