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서 '기술·품질'로…LG전자, '류재철 체제' 내실 경영 본격화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5.12.12 07:00
수정 2025.12.12 11:22

전임 조주완은 확장, 신임 류재철은 내실…전략축 3년 만에 전환

가전·TV 수익성 하락, 품질 강화, 전장·B2B 재정렬…3대 과제로

엔지니어 출신 '류재철 리더십', 품질로 확실한 차별화 만들지 주목

류재철 LG전자 신임 CEO가 지난 9월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IFA 2025 현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LG전자

LG전자가 4년 만에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며 경영의 중심축을 '브랜드와 경험'에서 '기술과 품질'로 이동시키고 있다. 생활가전 개발과 생산을 30년 가까이 맡아온 엔지니어 출신 류재철 사장을 최근 새 수장으로 선임한 것은, 시장 침체 속에서 제품 본질 경쟁력을 복원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전임 조주완 전 CEO가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과 브랜드 혁신을 주도했다면, 신임 류 CEO는 내실·효율·기술 중심의 체질 개선에 무게를 둘 것으로 관측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달 27일 2026년도 조직개편 및 정기 임원인사를 의결하고 류재철 HS사업본부장을 신임CEO로 선임했다. 류 사장은 1989년 금성사 가전연구소에 입사해 세탁기·냉장고·에어컨 등 핵심 생활가전 개발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연구개발과 사업을 두루 경험하며 생활 가전 전반을 직접 챙겨왔다. 최근 HS사업본부장으로 글로벌 생산 효율화와 운영 최적화를 이끈 점도 높은 평가를 받은 요소다.


실적 압박, 환율·원가 부담 속 '내실형 리더십' 등장


이번 리더십 교체의 배경에는 시장 환경 변화가 자리한다. 회사는 현재 가전·TV 시장 부진, 고환율, 원가 부담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미국 관세 영향과 중국 세트업체 기술 상향화로 인해 수익성 방어가 어려운 상황이다. 3분기 매출은 21조8737억원, 영업익 688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모두 감소했다. 프리미엄 가전 수익성도 약화된데다 글로벌 경쟁 심화와 미국 관세 변수까지 더해지며 제품 원가와 수익성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전장과 냉난방공조를 맡고 있는 VS사업본부와 ES사업본부는 성장세를 그리곤 있지만 아직 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약 20% 안팎으로 단기간에 실적을 방어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TV를 맡는 MS사업본부는 3분기 3026억원 적자를 냈다. 이러한 환경에서 류재철 CEO에게 주어진 첫 과제는 원가·품질·공정 기반의 수익성 복원이다. 제품 가격 인상 여력이 줄어든 만큼 개발·양산·부품·공정 전체에서 구조적인 효율 개선이 요구된다.


LG전자 인도법인이 지난 10월 14일(현지시간) 인도 뭄바이 국립증권거래소(NSE)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상장식에는 당시 LG전자 조주완 CEO와 NSE 아쉬쉬 차우한 CEO를 포함한 경영진 및 주요 인사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LG전자는 인도 시장에서의 미래 비전과 국민가전 라인업을 공개했다. ⓒLG전자
'브랜드·미래' 강조했던 조주완, '기술·품질' 무게 실을 류재철

조주완 전 CEO는 인도법인 상장 추진 등 성장 잠재력이 큰 '글로벌 사우스'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왔다. 동시에 콘텐츠·광고 등 소프트웨어 기반 사업을 강화해 가전 제조사에서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그가 키운 스마트TV 플랫폼 '웹OS'는 전 세계 2억6000만 대 이상에 적용되며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조 전 CEO는 이달 초 임직원들에게 보낸 퇴임사에서 "훌륭한 인재와 강한 브랜드를 남기고, 미래지향적 사업 포트폴리오의 기반을 만드는 것, 그리고 건강한 조직문화 위에 고성과 조직을 만드는 것 등 이 세 가지가 CEO로서 이뤄낼 사명이었다"고 회고하며 "REINVENT 전략이 조직문화를 넘어 경영혁신의 플랫폼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류 사장을 "사업 성공 요인을 깊이 이해한 리더이자, LG전자를 더 크게 도약시킬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업계에서는 조 전 CEO가 브랜드·경험 중심의 외연 확장을 맡았다면, 류 사장은 이를 기술·품질 경쟁력과 수익성 회복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가 기술통 CEO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최근 시장 전환기에 맞춰 '본원적 경쟁력'을 재정비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올해 3분기 기준, 전년도와 매출은 큰 차이가 없으나 영업익이 약 8% 이상 하락했다.



LG전자가 CES 2026서 차량용 고성능 컴퓨팅 장치를 위한 AI 솔루션 'AI 캐빈 플랫폼'을 공개한다. AI 캐빈 플랫폼이 전방의 차량을 인지하고 맞춤형 가이드를 제공하는 이미지.ⓒLG전자
VS 성장 속 안정적 관리 관건... ES 신사업은 '선택과 집중'

LG전자의 고성장 사업인 전장 VS본부도 류 CEO 체제의 핵심 숙제다. 완성차 업계의 투자 리듬 조절, 차량용 HPC·인포테인먼트 경쟁 심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기술·원가·사업 구조 관리를 동시에 안정화해야 한다. 회사가 최근 퀄컴과 협업해 내년 CES 2026에서 생성형 AI 기반 ‘AI 캐빈 플랫폼’을 공개하는 것도 VS사업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공조·B2B 신사업의 속도 조절과 재정렬이다. 전임 조주완 CEO 체제는 로봇·스마트빌딩·상업용 솔루션 등 경험 중심의 미래 사업을 전면에 배치했지만, 단기간에 실적 기여도를 높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도 존재했다. 류 사장 체제에서는 신사업의 사업성·원가 구조·개발 역량 등을 재검토해 '선택과 집중'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회사는 이번 인사에서 VS, ES 사업부 수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조직개편안을 함께 내놨다. 여전히 B2B와 플랫폼 비중은 성장축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을 공고히 한 것이다. 나아가 HS사업본부 산하에 로보틱스연구소를 신설한 것도, 신사업을 '효율 기반의 기술 사업'으로 재정렬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최근 이어진 품질 이슈, '류재철 리더십' 시험대

LG전자는 최근 몇 년간 일부 가전에서 품질 논란이 제기되며 내부적으로 개발 일정 압박이 품질 안정성을 흔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여기에 외부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기술·가격 경쟁력이 거세게 추격해 오는 형국이다. 류재철 사장이 품질 체계와 개발 프로세스를 재정비해 내부 리스크를 줄이고, 동시에 품질에서 확실한 격차를 벌려 외부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느냐가 향후 성과의 핵심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류재철 CEO는 내년 1월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6 무대에서 글로벌 업계를 선도할 미래 AI 가전과 다양한 솔루션을 공개할 예정이다. LG전자의 사령탑으로 선임 후 첫 글로벌 무대 데뷔전이다. 한편 LG전자의 4분기 전망은 다소 어두울 전망이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11일 보고서에서 "LG전자 4분기 연결 기준 영업익은 205억원으로 컨센서스(영업적자 200억원) 대비 양호하다. 4분기가 비수기이고, 희망퇴직 등 인력 효율화가 진행된 데다 최고경영자(CEO) 교체로 추가적인 비용이 예상된 영향"이라고 전했다.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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