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대출' 5대 금융그룹만 12조…고금리 압박 '현재진행형'
입력 2024.10.02 06:00
수정 2024.10.02 06:00
'악성 채무' 무수익여신 올해만 2조↑
이자 부담에 어려움 계속되는 차주들
코로나 금융지원 리스크도 '도마 위'
누적된 충격 회복 기간 길어질 수도
국내 5대 금융그룹 계열사들이 고객들에게 빌려준 돈에서 더 이상 이자를 거둘 수 없게 된 이른바 깡통 대출이 올해 들어서만 2조원 이상 불어나며 12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치솟은 금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빚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는 차주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 년 째 계속돼 온 금융지원 정책으로 인해 잠재돼 있던 리스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으로부터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점차 숨통이 트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장기간 누적된 고금리 충격을 감안하면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연결 기준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개 금융그룹이 떠안고 있는 무수익여신은 총 12조3313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9.8%(2조358억원) 늘었다.
무수익여신은 금융사 입장에서 돈을 빌려주고도 수입을 기대하기 힘든 상태에 빠진 악성 채무를 일컫는 표현이다. 석 달 이상 연체된 대출과 채권재조정 또는 법정관리·화의 등으로 이자 수익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여신이 무수익여신에 포함된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KB금융의 무수익여신이 4조170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5.7% 증가하며 최대를 기록했다. 신한금융 역시 2조7306억원으로, 하나금융은 2조1266억원으로 각각 25.5%와 26.4%씩 해당 금액이 늘었다. 우리금융의 무수익여신도 1조8431억원으로 41.9% 급증했다. 조사 대상 금융그룹들 중에서는 농협금융의 무수익여신만 1조4602억원으로 4.8% 줄었다.
몸집을 불리는 리스크의 배경에는 고금리 여파가 자리하고 있다. 역대급으로 높은 수준의 금리 기조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면서, 빚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는 차주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가 1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사라진 이후 부실대출이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금융지원이 아니었다면 연체로 이어졌을 대출 중 상당수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억눌려 오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직후인 2020년 4월부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상대로 실시돼 온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는 3년 넘게 지속되다가 지난해 9월 종료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 금융지원에 따른 만기연장·상환유예 지원 금액은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76조2000억원에 달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로소 금리가 꺾이면서 대출 이자 부담이 점차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이번 달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단행했다. 이로써 한은도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예상이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시기상조란 반응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내리막길에 접어들더라도 그 폭은 제한적일 것"며 "코로나19 이후 제로 금리 시절부터 폭증한 대출이 쌓여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자 비용이 기대만큼은 완화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