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87년 6월 항쟁 때도 차량시위를 탄압한 적은 없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1.09.09 06:46
수정 2021.09.09 06:46

'못살겠다' 자영업자 차량시위 연 날

여의도 일대, 계엄령 상황 방불케 해

원희룡 "경찰, 민노총 8천명은 비호

자영업자 평화시위는 왜 탄압하나"

"87년 6월 항쟁 때도 차량시위를 탄압한 적은 없었다. 민노총이 8000명 모였을 때는 경찰이 도로를 터주고 비호를 했으면서, 자영업자들이 심야시간 교통방해가 가장 적은 시간에 최소한의 평화적인 의사표현을 하겠다는데 이것을 왜 탄압하는가."


현 정권의 방역정책 파탄에 항의하는 전국 자영업자들의 차량시위가 예고된 8일 심야, 여의도 일대는 계엄령 상황을 방불케 했다. 21개 부대 동원을 예고한 경찰은 여의2교와 마포대교 남단 등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차량 하나하나의 창문을 내리게 하면서 목적지를 묻는 등 검문을 진행했다. "지금 집회가 있다. 어디 가는 길이냐"는 물음은 언론사 취재차량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 권역 자영업자 차량시위의 출발 집결지인 양화대교 북단에 비상등을 켠 차량 10여 대가 모이는 듯 하자 곧 경찰차가 나타나 "차량들 다 이동하라. 단속하겠다"는 경고방송을 했다.


앞서 자영업자 차량시위에 동참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러 자신의 아이오닉 5 차량을 끌고나온 국민의힘 대권주자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이런 시대를 역주행한 듯한 풍경에 격앙된 목소리가 역력했다. 원 전 지사는 서울법대에 82학번으로 입학해 신군부 독재 반대 투쟁을 하다가 유기정학 등 징계를 당했다. 절차적 민주화를 쟁취한 87년 6월 항쟁을 온몸으로 겪었다.


이날 경찰 병력이 대거 투입돼 자영업자들의 차량을 호루라기를 불며 해산시키는 모습에 원희룡 전 지사는 "87년 6월 항쟁 때 (신군부도) 차량시위를 탄압한 적은 없었다"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가운데 차량시위의 도착 집결지인 여의도환승센터로 이동하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현 정권의 비과학적 방역수칙의 수정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며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박대출 의원, 김선동 캠프 총괄본부장과 함께 나와 여의도환승센터 3번 승강장에서 '원칙없는 문재인식 방역, 자영업자 다 죽인다'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동작대교까지 자신의 차량을 몰고가 차량시위를 함께 했던 원희룡 전 지사도 돌아와 '소상공인 자영업자 여러분, 미안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합류했다.


이준석과 원희룡·최재형, 심야 현장行
자영업자 생존투쟁에 힘실으며 '원팀'
李 "원희룡 와서 큰 힘이 되고 있다"
元 "'준스톤' 중심으로 똘똘 뭉치겠다"


김웅 의원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오전·오후 기자회견으로 당은 하루 종일 어수선했지만, 자영업자 차량시위에 힘을 싣기 위해 심야에 나온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대권주자 원희룡 전 지사, 최재형 전 원장은 이곳 현장에서만큼은 한마음으로 자연스레 '원팀'이 됐다. 얼마전 '녹취록 파동'으로 갈등을 겪었던 이 대표와 원 전 지사는 격하게 껴안으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이 대표는 "라이브 방송에 원 전 지사가 와서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우리 당은 전국 각지에서 시위하는 자영업자들과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원 전 지사는 "합정동에서부터 동작대교까지 차량시위를 같이 하고 왔다"며 "우리 자영업자들의 영업제한을 풀어내고 그 힘으로 정권교체까지 갈 수 있도록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준스톤' 이준석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치겠다"고 화답했다.


"국민들이 코로나로 인해 겪고 있는 고통 앞에서 우리는 하나다, 원팀이다"라고 원 전 지사가 강조하자, 이 대표는 "원팀이 혹시 '원희룡팀' 아니냐. 특정 대권주자를 지원한다는 오해를 받으면 안되는데…"라고 농담을 건넸다. 자영업자들의 생존투쟁에 함께 하면서 구원(舊怨)은 사라진 모습이었다.


소상공인연합회장 출신인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이 경찰의 극심한 검문과 통제로 차량시위대가 도착 집결지인 여의도로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전달하자, 원희룡 전 지사는 "차들을 하나하나 창문을 열어서 검문을 하고 있더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이준석 대표는 "방역에 협조하며 시위를 하기 위해 차량시위라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항의에 나선 사람들을 경찰에서 조사하는 등 믿기 힘든 대처를 하고 있다"며 "차량시위는 경찰에서 통제하려 하지 말고 유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우리 당은 자영업자들께 지지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에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황교안 전 대표도 현장에 도착했다. 황 전 대표는 1인 시위 중인 최재형 전 원장에게로 향했다. 최 전 원장과 황 전 대표는 각각 경기고 71회와 72회이며,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은 사시 23회·연수원 13기로 동기다.


황 전 대표가 "(자영업자들의 차량시위대가) 통제를 받고 있는 모양"이라며 "자영업자들이 뜻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세상이 돼버렸다"고 개탄하자, 최 전 원장도 "검문을 하는 모양"이라며 "민노총은 몇천 명이 모여도 전혀 통제를 못하던 이 정권이 힘없는 자영업자들의 평화로운 차량시위까지 통제하는 세상이 됐으니 참 걱정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영업자 차량시위 함께 한 국민의힘
경찰 과잉통제, 국회서 문제제기 약속
元 "당 차원에서 이슈화를 해달라"
李 "과도한 통제, 행안위에서 질의"


새벽 1시가 다 돼가는, 예정보다 훨씬 늦어진 시각이 돼서야 비상등을 켠 차량들이 하나둘씩 경적을 울리며 여의도환승센터로 진입했다. 이준석 대표와 원희룡 전 지사, 최재형 전 원장, 황교안 전 대표는 피켓을 치켜들며 이들을 환영하고 격려했다. 여의도로 온 자영업자들을 만난 이 대표와 대권주자들은 이날 경찰의 과잉 검문과 통제를 국회에서 문제삼겠다고 약속했다.


원희룡 전 지사가 "당 차원에서 이슈를 시켜야할 것 같다"며 주의를 환기하자, 이준석 대표는 "이렇게 경찰이 많이 투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이렇게 과도한 통제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는 국회 행안위 차원에서 질의를 해야 한다"고 공감했다.


여의도환승센터에 머물던 국민의힘 이 대표와 대권주자들은 서울교에서 극심한 차량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상황을 전달받자 도보로 서울교로 즉각 이동했다. 이들은 서울교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검문을 하고 있는 대규모 경찰 병력 앞에서 항의의 뜻을 전달한 뒤, 현장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원희룡 전 지사는 "백신 확보에 실패한 정부가 실패 책임을 회피하고 그동안 가장 정부에 협조해왔던 자영업자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며 "코로나는 못 잡고 자영업자를 잡는 실패한 방역, 이제는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차량시위 탄압 그만 하고 자영업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분노가 정권을 심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재형 전 원장은 "사람을 살리려는 방역대책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며 "오늘 우리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절규는 저항이 아니라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강조했다.


황교안 전 대표는 "풀 것을 막고 막을 것을 풀면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며 "문 닫으라면 문 닫고 밤에 두 명만 모이라고 하면 두 명만 모이고 그렇게 돕고 협조했던 결과가 차도 막고 말도 막고 입도 막는, 이게 도대체 이 정부가 할 일이냐"고 질타했다.


나아가 "내가 집회시위법에 관해서 책도 쓴 사람인데 이런 법은 없다"며 "정당한 집회시위를 막아서고 있는 정부는 민주정부가 아니다"고 성토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