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에 맞은 배구②] “어디까지가 학폭인지..” 구단들도 속수무책
입력 2021.02.24 09:03
수정 2021.02.24 09:12
배구계 학폭 논란 이후 자정 움직임, 실질적 해결책 미흡하단 지적
구단 움직임은 사후 처방, 정부 주도의 제도적 장치 등 근원적 대책 필요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는 학교 폭력(학폭)이 배구계를 중심으로 그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나도 당했다’는 학폭 미투가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연일 올라오면서 스포츠계는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협회와 연맹 등 스포츠 단체들이 후속 대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학폭은 대한민국 학원 스포츠의 고질적인 병폐다. 잊을 만 하면 터져 나오면서 모두를 곤혹스럽게 만들지만 마땅한 대안도 딱히 없는 것이 사실이다. 터질 때마다 뿌리를 뽑겠다는 정부의 대응도 현재까지는 큰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학폭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다.
한국배구연맹이 학폭 연루자에 대해 신인선수 드래프트 참여를 원천봉쇄 하는 등의 후속 조치를 마련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학폭 논란 이후 각 구단들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자체 전수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는게 현장의 분위기다.
학폭 논란은 사실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하기 전 벌어진 일들이다. 구단이 선수들의 모든 과거사를 일일이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나름 자체 조사를 벌이고는 있지만 확인 불가능한 부분이 많아 난감한 상황이다.
수도권 남자부 A구단 관계자는 “자칫 인권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선수들을 범죄자로 내모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어디까지가 학폭이라 정의를 내릴 것이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 있는 선수들도 어떻게 보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민감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지방에 연고지를 둔 남자부 B구단 관계자도 “어디까지를 학폭으로 봐야 되는지에 대한 부분이 모호하다”며 “학창시절 일어났던 일들을 프로구단에서 처벌하는 것도 좀 그렇다”라고 의견을 전했다.
수도권 연고지의 여자부 C구단 관계자는 “구단이 나서 선수의 초중고 시절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관련자의 동기 동창들을 다 만나서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서약서 하나 받고 끝나겠다는 건데 선수 입장에서는 과거가 있더라도 프로선수가 되고 싶고 서약서 쓰고 들어올 것이다. 추후에 밝혀지면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학원스포츠에서 학폭은 오랜 병폐다. 과거 이상열 감독의 폭행 사실을 폭로한 박철우도 “어렸을 때만 해도 운동선수라면 맞는 게 당연했다”고 밝혔다.
A구단 관계자는 “선수들 얘기 들어보면 1학년들은 2학년, 2학년들은 3학년들한테 맞는다. 관례처럼 돼 있는 것을 끊어야 된다. 선수들이 거꾸로 물어본다. 이것도 학폭에 포함되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학폭 관련 해당 일이 터질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대책을 세워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구단들이 자체 전수 조사를 거쳐 관련 선수들을 솎아내도 후속 대책에 불과하지 학폭을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번에 환부를 드러내 뿌리를 뽑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현장에서는 입을 모은다.
여자부 수도권 D구단 관계자는 “학폭 관련 부분은 시간을 갖고 해결할 필요가 있다. 이 불만 끌게 아니라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제도적으로 근원에 대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학폭 문제는 당장 내년에도 일어날 수 있다. 그때그때 봉합하고 넘어가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닌거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C구단 관계자는 “학폭은 초중고서 선수 생활 할 때 개인의 인성에 대한 부분이다. 결국 시스템이 바뀌어야 되는데 이 부분부터 해결돼야 구단들도 같이 따라갈 수 있다. 프로구단만 선도해서 될 것은 아닌 거 같다. 학원 스포츠에서 학폭에 관련된 부분이 정화가 먼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실질적인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맹서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학폭 가해자로 밝혀졌을 시, 학교 지원금을 회수하는 방안 등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A구단 관계자는 “현장 중고등학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지원금 부분이다. 다시 환수하겠다하면 지도자들부터 피해가 크다. 지도자들의 지도로 학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 지원금 환수 부분은 잘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근 배구계를 중심으로 불거진 학폭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던 고질적 병폐를 없애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학폭 문제는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병폐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관련 기관과 단체들을 끌고 가야 한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사회적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된 만큼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또 다시 ‘땜질식 처방’에 그친다면 학폭의 병폐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