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에 맞은 배구①] 끊이지 않는 스포츠 학폭, 실상은 더욱 참담
입력 2021.02.24 09:01
수정 2021.02.24 09:02
프로배구 이다영으로부터 촉발된 스포츠 학폭 논란
인권위 실태조사 "응답자 중 15% 정도가 폭력에 노출"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소속의 세터 이다영은 지난해 말, 자신의 SNS를 통해 “다 터트릴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이다영의 글은 팀 선배를 저격하는 내용이었으나, 의도와는 다르게 정말로 다 터지고 있다. 바로 배구계를 넘어 스포츠계 전체로 확산된 이른바 ‘학폭 미투’다.
결과적으로 이다영 역시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함께 학교 폭력(학폭) 사실이 드러나며 무기한 출장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고, 배구판으로 돌아올 길이 막혀버렸다.
"선배들은 주로 숙소에서... 심할 때는 그 충전기 선이랑...뭐 그런 걸로 감아서 팔이나 가슴이나 때리고... 티가 나면 뭐 위에 긴 팔 입으라고..."(중학교, 남자, 양궁)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9년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선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스포츠계 폭력과 성폭력 근절을 위해 전국 5274개교 초중고 선수 6만 3211명을 대상으로 인권실태 전수조사에 나섰다. 응답자가 5만 7557명(91.1%)에 이를 정도로 호응이 대단했고 결과 또한 충격적이었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훈련 또는 합숙소에서 선배 및 동료들로부터 신체적 피해를 당한 중학생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스포츠 선수들의 학폭 사례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권위의 실태조사가 고작 2년 전인 2019년에 이뤄진 점을 감안할 때, 학폭 가해 및 피해 선수들의 학창 시절에는 보다 심각한 인권유린이 벌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인권위는 언어폭력, 신체폭력, 성폭력 등 크게 3가지로 구분해 조사에 나섰는데 언어폭력의 경우 응답자 중 15.7%, 신체폭력은 14.7%, 성폭력은 3.8%에 달할 정도로 매우 심각했다.
학교급별로 살펴보면 초등학교의 경우 언어폭력, 신체폭력, 성폭력 순이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신체폭력, 언어폭력, 성폭력 순으로 유린이 이뤄지고 있었다.
물론 당시 조사에서 가해자의 대부분은 코치들(언어폭력 37.6%, 신체폭력 44.7%)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배 및 또래 선수들로부터 고통을 당했던 수치 역시 주목해야 한다. 학교 폭력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언어폭력의 경우 선배 선수의 비율은 24.5%, 또래 선수는 14.6%였고, 신체폭력은 선배 선수가 28.7%, 또래 선수는 2.7%였다. 즉, 학생 간 이뤄지는 폭력의 비율이 지도자로부터 받는 그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선배들의 신체폭력은 초등학교 15.5%, 중학교 29.3%, 고등학교 39.6% 등 진학할수록 비율이 높아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폭력의 강도 역시 높아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폭력을 인식하는 부분에서도 심각함이 드러났다.
한 중학교 남자 야구 선수의 경우 지난 실태 조사에서 “빨래, 심부름, 청소 등은 당연히 후배가 해야죠. 코치님들 일 담당하는 애들도 한 명 지정하기도 하고... 선배들이 화장실, 복도 청소하라고 하죠”라고 말했다. 최근 공개된 학폭 피해 호소글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부분이다.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의 인식도 큰 문제였다.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하는 피해의 자기내면화(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함)가 707명(21.4%)에 이르렀다.
이는 피해자의 소극적 대처(78.6%)로 이어졌고 결국 폭력의 악순환을 지속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반면, 피해 시 도움요청 결과 행정 및 사법체계 도움을 받았다는 비율은 전체 14명(7.1%)에 불과했다.
폭력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1회 폭행한 사건은 전체의 약 5%에 불과했다. 이는 특정인에 대한 폭행이 장기적이고 상습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은 트라이애슬론 고(故) 최숙현 선수는 물론, 최근 학폭 피해 호소인들의 진술에서도 잘 드러난다.
학폭 근절을 위한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조만간 학폭과 관련된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학폭 가해 선수에 대한 엄중한 처벌 규정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학폭의 시발점이 된 프로배구연맹(KOVO)은 향후 가해 선수에 대해 아예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했고, 이를 은폐한 뒤 프로에 입단하더라도 향후 적발 시 영구제명의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신고 기능도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조재범 코치의 성폭행 사건에 이어 최숙현 선수의 사망으로 인해 출범한 스포츠 윤리센터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데일리안이 문의한 결과 스포츠 윤리센터 측은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스포츠인권 강사 40명을 선정하여 스포츠 인권교육 전문가 역량향상과정을 진행했고, 스포츠 인권교육을 시범 운영 중에 있다”라며 “교육은 선정된 전문 강사들이 각 교육 대상자에 맞춰 교육 자료를 활용해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주제·대상별(선수, 지도자 등)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여 맞춤형 교안을 제작할 예정이다. 또한, 실시간 스트리밍의 비대면 교육 및 찾아가는 교육을 실시하여 강사와 교육생 간 소통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의 실효성을 높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에 따라 체육계 인권침해 및 스포츠비리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 스포츠윤리센터 또는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임직원, 선수 및 지도자 등이 윤리센터에 즉시 신고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