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민간에 맡겨라
입력 2021.02.11 08:00
수정 2021.02.11 18:49
국민연금, ESG 명분으로 삼성물산·포스코 등 7개사 사외이사 파견 추진
승계·M&A·사외이사까지 경영 전방위 개입...사외이사 직접 선임 드물어
섣부른 경영참여 결정은 기업가치 악영향 우려→기금 수익성 저하 초래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펀드)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선량한 청지기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자신의 회사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기업에만 투자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블랙록뿐만 아니라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릿 글로벌 어드바이저 등 글로벌 메이저 자산운용사들은 최근 수년간 ESG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관련 투자 상품을 적극 개발·출시해 왔다.
한국에서도 최근 ESG 펀드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ESG 펀드 이전에 몇몇 대기업을 시작으로 수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ESG를 강조하는 기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삼성물산은 석탄 관련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고, SK그룹 계열사들은 친환경에 앞장서고 있으며, 포스코 역시 ESG 중심 경영을 선포했다. 이처럼 자본시장과 민간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ESG 운동이 추진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말처럼 “ESG는 이제 시장의 새로운 규칙”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국민연금의 과도한 ESG 관련 업무 추진이다. 국민연금은 2019년부터 ESG 평가를 투자 결정에 반영했고, 2022년까지 ESG 가치 반영 자산을 전체 자산의 5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반영 방법이 매우 과격하다. 기업의 사외이사 추천까지 시도할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발단은 지난 1월 29일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위원 7명이 갑작스레 포스코와 CJ대한통운, KB금융, 우리금융지주,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삼성물산 등 7개 회사에 대해 주주제안으로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안건을 발의한 것이다. 이들 기업을 중대재해 발생, 사모펀드 소비자 피해, 지배구조 문제 등과 관련된 ESG 문제기업이라고 지목하면서,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이 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포스코의 경우는 대기오염물질 과다 배출 문제가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포스코는 세계 표준에 따른 대기오염방지시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오염물질도 환경부 배출허용기준 미만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물산은 지배구조가 문제라고들 하나, 이미 독립적 준법감시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해 운영 중이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고배당 정책을 수립해 운영 중이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의 과로사로 인한 사망이 문제가 됐으나, 택배기사 사망사고 후 인원 충원 등 대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금융회사들은 사모펀드 부실 판매가 문제가 되었는데, 결재 라인에서 배제돼 펀드 판매에 관여할 수 없었던 지주사 회장 및 은행장들이 속죄양이 되어 직무정지·문책경고 등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사모펀드 부실 판매는 오히려 감독기관의 감독 부실이 여론의 질책을 받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지배구조원 2021. 1분기 ESG 평가에서’ 포스코, CJ대한통운, 삼성물산, 하나금융지주는 모두 A, KB금융과 신한지주는 모두 A+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 기업이 ESG 대응이 부실해서 기업가치가 폭락하고 주가가 폭락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이들 기업에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를 파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헤지펀드도 아닌 연기금이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를 직접 선임하겠다고 나서는 국가는 드물다. 일부 그런 나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연기금이 개별 기업에 5% 이상 투자를 할 수 없도록 정해두고 있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는 2020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의결권 기준)을 보유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280여 개, 10%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80여 개 사에 달한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위원 20명 중에 사용자(기업)를 대표하는 위원은 3명뿐이다. 이미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연금이 기업의 이사까지 선임하겠다고 나선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지금까지 국민연금이 민간 기관에 각 기업에 대한 ESG 평가를 의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평가 기준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무슨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느냐에 관해 의구심과 반발이 많았다. 궁금한 것은 중대재해에 해당할 만큼 인명사고를 낸 기업도 많은데, 국민연금은 무슨 기준으로 위 7개 기업만 타깃으로 했는가 하는 점이다. 앞으로 280여 상장기업에 ESG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렇게 사외이사를 추천하겠다고 나설 것인가. 또 한 가지, 어떤 사람을 사외이사로 천거하려고 하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기금의 섣부른 경영 참여 결정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업가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는 곧 기금의 수익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의 돈으로 투자해 수익을 올려야 하는 기관이 사기업에 경영 인력까지 파견해 경영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특히 한국에서 거대 공룡이 된 국민연금이 아닌가.
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