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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이재용 부회장 “최고 수준 투명성·도덕성 갖춘 회사 만들겠다”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입력 2020.12.30 19:09
수정 2020.12.30 20:19

정신자세·회사 문화 바꿔 ‘승어부’ 자세 임하겠다 호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춘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의 가치를 올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며 “우리 국민에게 평생 갚아도 못 갚는다. 꼭 되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 도중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을 언급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이 부회장의 최후진술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두 분 판사님. 오늘 저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삼성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입니다. 반도체와 통신 인터넷 산업의 황금기가 시작될 때였습니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을 때로는 고객사, 때로는 경쟁사로 맞으며 다양한 경험을 맞았습니다. 스티브 잡스, 손정의 회장과 교류하는 행운도 얻고 창업자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은 전문경영인이 혁신 노하우로 회사를 수백 배, 수천 배로 키우는 기회도 봤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가 저 사람들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삼성도 망하겠다는 위기감이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주위 기업들의 부침을 보면서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습니다.


통신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던 유럽·미국 기업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옆에서 봤습니다. 일본 아날로그 기술을 가진 기업들도 그랬습니다. 중국 기업들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걸 보면서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경황이 없던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 자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결단코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일 때문에 회사와 임직원들이 오랫동안 고생했습니다. 많은 국민들께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송구스러운 생각입니다. 참 답답하고 참담한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저의 불찰, 저의 잘못, 제 책임입니다. 제가 못났고 제가 부족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깊이 뉘우칩니다.


재판장님, 두 분 판사님, 이 사건은 제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됐습니다. 1년 가까운 수감생활을 포함해 4년간 조사, 재판 시간은 제게 소중한 성찰의 계기가 됐습니다.


제가 과거에 무엇 잘못했는지 생각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제가 또 앞으로 무엇 해야 할지 고민할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이 재판과정에서 삼성과 저를 외부에서 지켜보는 준법감시위원회가 생겼습니다. 재판부께서는 단순한 재판 진행 그 이상을 해주셨습니다.


삼성이란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 해야 할지, 준법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나아가 저 이재용은 어떤 기업인이 돼야 하는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주셨습니다.


그전에는 선진기업을 벤치마킹하고, 불철주야 연구개발에만 몰두하고 최선을 다해 회사를 키우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준법문화라는 토양 위에서 체크, 또 체크하고 법률적 검토를 거듭해 의사결정을 해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재판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뒤늦게 깨달은 만큼 더욱 확실하게 실천해나가겠습니다.


실제로 저희 회사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지 않은 변화입니다. 저 스스로도 준법경영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최근 회의들을 그 전과 비교해보면 제가 이전에 하지 않았던 질문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컴플라이언스팀은 “뭐라고 하던가요 법무팀 검토 끝났나요, 준법감시위원회까지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며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건 또 묻고 묻습니다.


외부 목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인정받고 자랑할 만한 변화는 아닙니다. 첫걸음을 뗐지만 변화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멀리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과거로 돌아갈 일은 결코, 결코 없을 것입니다. 법에 어긋나는 일은 물론이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반드시 정도를 걸어가겠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에 대한 우려도 들었습니다. 오늘 특검도 언급한 걸 잘 들었습니다. 사업지원TF는 다른 조직보다 더욱 엄격하게 준법감시를 받게 하겠습니다. 더욱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어떤 조직도 삼성에서는 결코 예외로 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날 삼성 최고경영진의 잘못도 저 자신의 관여 여부와 관계없이 뒤돌아보겠습니다. 사건 경위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런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는 데 부족함 없도록 충분한 뒷받침을 하겠습니다. 그간 위원회를 너무 자주 뵈면 우리를 감시하는 위원회의 의미가 퇴색될까봐 주저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위원들을 정기적으로 뵙고 저와 삼성에 대한 소중한 충고와 질책도 듣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모두가 철저하게 준밥감시의 틀 안에 있는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아니, 준법을 넘어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갖춘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추진하겠습니다. 분명하게 약속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두 분 판사님, 저는 지난 5월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저의 평소 갖고 있던 소신을 밝혔습니다. 제 아이들이 경영권 승계문제와 관련해 언급되는 일 자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이 이런 문제로 또다시 논란에 쌓이는 일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도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노조와 경영진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겠습니다. 다른 약속들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아울러 국민들과 삼성이 한 약속을 책임지고 지키겠습니다. 저 좀 지켜봐주십시오.


재판장님 길어지겠지만 옛날이야기 하나만 하겠습니다. 1987년 이병철 회장님 돌아가실 때 저는 대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임종 지켜보며 경황없는 중에도 아버님은 다른 일 모두 제쳐두고 일본 지점장에게 전화 거셨습니다.


도시바, 소니, 히타치, 산요, 마스시타, 당시 일본 주요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과 미팅 약속을 잡으라는 지시였습니다. 삼성의 큰 고객사이자 앞서가던 기업들이었습니다. 다음해 1월 아버님은 일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저를 그 모든 회의에 데려가셨습니다


당시 삼성 회장이지만 삼성 위상이 지금과 달라 회장이나 사장이 아니라 전무, 상무급, 심지어 부장급 엔지니어가 나와도 일일이 만나 머리를 숙이고 최신시설 동향이나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 이후로도 이건희 회장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라면 몇 번이고 찾아가서 모셔왔습니다. 그 치열함이 어쩌면 삼성 DNA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제가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삼성이 일부 분야에서 대한민국 선두기업이 됐으나 사회적 역할, 책임, 국민의 신뢰가 얼마나 막중한지는 간과했습니다.


우리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선단식을 경영 도입하지만, 아직 많은 분들의 기대를 충족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삼성에 쏟아진 많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삼성은 이제 달라질 겁니다. 저부터 달라질 겁니다.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제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회사 가치를 높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만 하겠습니다.


재벌 폐해 개혁하는 일에도 과감히 나서겠습니다. 우리가 잘하는 사업에 집중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국민에게도 평생 갚지 못할 빚이 있습니다. 꼭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더 많은 협력사들이 우리와 성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선두기업으로서 몇 배, 몇 십 배 더 큰 책임감을 갖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두 달 전 이건희 회장님의 영결식이 있었습니다. 회장님 고교 친분께서 추도사를 해주셨습니다. 그 분은 선대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아 지금의 삼성을 키워놓은 이 회장 예를 전 산업사에서 접하지 못했다며 ‘승어부’라는 말을 꺼내셨습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증가한 의미의 효도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선대보다 더 크고, 더 강하게 키우는 게 최고의 효도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이 지금도 제 머릿속에 강렬하게 맴돕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회사 성장은 기본입니다. 신사업 발굴해서 사업 확장도 당연한 책무입니다. 하지만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봅니다.


저의 정신자세와 회사 문화를 바꾸고 여러 제도를 바꾸며 외부 여러 부당한 압력이 들어와도 거부하는 준법감시제도를 만들겠습니다.


학계 벤처업계 중소기업계 등과 유기적으로 협력해서 우리 산업생태계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삼성 임직원들이 우리 회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초일류기업, 지속가능한 기업이 가능한 것이고 기업인 이재용이 추구하는 일관된 꿈입니다.


이것이 이뤄질 때 저 나름대로 승어부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아버님을 여읜 아들로서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너무나도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부탁인지 모르겠으나 한 가지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다 제 책임입니다. 죄를 물으실 일이 있으시다면 저한테 물어주십시오. 제 옆에 같이 계신 선배님들은 평생 회사를 헌신해 온 분들입니다. 저를 꾸짖어주십시오. 이분들은 너무 꾸짖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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