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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1호기 감사분석②] 조기폐쇄, 文대통령-산업장관-한수원長 '짬짜미 합작품'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입력 2020.10.26 07:00 수정 2020.10.25 08:51

대통령 비서관실 행정관, 산업부에 흘려

백운규, 文 의중 전해듣고 가동중단 지시

한수원, 경제성 검토 없이 원전 폐쇄결정

문재인 대통령과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유준상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유준상 기자

대통령 공약이 곧 헌법이나 법이 아니며 반드시 법률 개정을 통해 실현돼야 한다는 게 정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사안이 국민 생존과 직결된 에너지 정책일 경우 더욱 그렇다. 입법 기관인 국회 표결과 국민 공론화를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추진해야 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은 절차적 정당성을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크다. 국회와 국민이 배제된 채 곧바로 행정 계획에 편입시켜 담당 부처와 담당 기관이 이를 수행하는 방식을 거듭하고 있다.


사필귀정이라 했던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폐쇄 절차 과정이 시험대에 올랐다. 대통령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거쳐 한국수력원자력 말단 직원까지 원전 '즉시 가동중단' 방침을 전달하는 과정이 공문 하나 없이 관련자 간 은밀히 구두로 진행된 것이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졌다.


文 "월성1 영구 가동중단 언제 결정될 계획이냐"
대통령 비서관실 행정관, 산업부 담당자에 흘려
국회 표결, 국민 공론화 등 절차적 과정은 전무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열린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열린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월성1호기의 조기폐쇄 운명은 사실상 문 대통령 집권 초기 가늠됐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빗대며 "현재 수명을 연장하여 가동 중인 월성1호기는 전력 수급 상황을 고려하여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원전 폐쇄 근거가 될 수 있는 상위 법령 개정을 위해 국회 표결에 부치거나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공론화를 추진한다든지 하는 절차적 과정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이번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은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채 문 대통령 입김이 행정 직속기관에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문 대통령이 소관 부처에 은밀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청와대 보좌관은 월성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외벽에 철근이 노출됐다'는 점을 청와대 내부보고망에 게시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월성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이냐"고 질문했다.


주목할 점은 대통령 비서관실 행정관이 이러한 내용을 즉시 산업부 담당과장에게 전달했다는 점이다. 다만 대통령의 지시사항이었는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의중이 전해지면서 월성1호기 담당부처 산업부와 담당기관인 한수원은 정책 궤도를 즉시 가동중단으로 수정 작업에 돌입했다.


감사원은 감사보고서를 통해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을 내리기 전 산업부와 한수원은 한수원이 자체적으로 경제성 평가를 수행한 자료를 기초로 회의를 하면서 즉시 가동중단 시와 운영기간별 가동중단 시나리오의 손익을 검토해왔다"며 "그 결과 이들은 월성1호기를 설계수명 시까지 계속가동하는 방안이 가장 경제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백운규, 文 의중 전해듣고 즉시 가동중단 지시
"이사회 조기폐쇄 결정 동시에 가동중단 하라"
한수원 담당자 세종에 불러 "방침 변경" 전달


국회에서 진행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에서 진행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문 대통령 의중을 전해 들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 조치를 이행해나갔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백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이 월성1호기 영구 가동중단 시기에 대해 질문했다는 보고를 4월 3일 받고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 이후에도 운영변경허가 전까지 가동할 수 있다고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할 수 없다.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중단을 하는 방안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산업부 담당과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까지 월성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게 가능하며 한수원의 외부기관 경제성 평가가 아직 착수되지 않았다'는 기존 보고서 내용을 백 전 장관 지시에 맞춰 수정했다. 당초 산업부와 한수원은 월성1호기 조기폐쇄 시점으로 '2년 6개월간 가동 후'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이후로 산업부는 한수원의 경제성평가에 적극 가담한다. 실제 백 전 장관이 문 대통령 반응을 보고받은 한 주 뒤인 4월 10일, 한수원은 회계법인과 경제성평가 용역을 체결한다. 산업부가 회계법인에 수차례 면담을 하며 회계보고서 작성에 관여한 점<[월성1호기 감사분석①] 참조>을 고려하면 결국 백 전 장관이 대통령 말한마디에 조기폐쇄 결정을 내렸다고 봐야 한다.


산업부 담당과장은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한수원 직원들은 기존의 조기 폐쇄 추진 방안과 달라져서 부담스러워 했으나 장관이 단호하게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결정한 상황을 전달하자, 이를 거부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저도 장관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는데 한수원 직원들도 동일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산업부가 즉시 가동중단 방침을 한수원에 전달할 때도 문 대통령처럼 공문이 아닌 구두로 전달했다. 산업부는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장 등을 세종 산업부 본관으로 불러모아 백 장관이 단호하게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한 상황을 전달했고, 다른 대안을 검토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산업부는 즉시 가동중단 방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수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그 방침 결정의 근거와 과정을 공식적으로 보존하도록 하지 않은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수원, 장관 지시에 경제성 검토 없이 폐쇄결정
새울원전본부장이 즉시 가동중단 시나리오 마련
원자력 회사가 원자력을 죽이는 우스꽝스런 사태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송희경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송희경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산업부의 은밀한 구두 지시가 원자력 회사인 한수원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한수원 정재훈 사장과 새울원자력본부장이 이에 적극 동조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각 한수원과 월성원전 총괄자로서 국가 손익이 달린 중대한 사안에 대해 객관적 검토와 연구를 이행해야 했다. 그럼에도 산업부 장관 말을 전해듣고 직원들에게 월성1호기 즉시 가동중단 및 폐쇄 명령을 내렸다.


감사보고서에 의하면 정재훈 사장은 2018년 3월 한수원 사장으로 내정된 후 월성1호기 폐쇄 시기에 대해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정 사장은 한수원 부사장과 산업부로부터 "한수원은 월성1호기 계속가동에 대한 경제성을 평가해 폐쇄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조기폐쇄 시기는 즉시 가동중단하는 방안과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 시까지 가동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달받았다.


그러나 정 사장은 그해 4월경 산업부 과장으로부터 "백운규 장관에게 월성1호기를 원안위의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 시까지 가동하는 방안으로 보고했지만 장관이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지시했다. 이를 대통령비서실에도 보고할 것"이라고 전달받은 뒤 처신을 달리했다.


당시 한수원은 내부적으로 월성1호기 폐쇄 관련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왔으나, 산업부와 접촉한 한상길 새울원전본부장이 즉시 가동중단 이행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 사장은 한 본부장으로부터 즉시 가동중단을 담은 '월성1호기 정부정책 이행방안 검토'를 보고받고도 가동중단 시기에 대한 여러 방안을 이사회가 심의하도록 보완할 것을 지시하지 않았다.


나아가 정 사장은 삼덕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용역 진행 과정에서도 한수원 실무자에게 가동중단시기에 대한 다른 대안을 경제성 평가용역에 포함하도록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수원 직원들은 조기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중단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추진하게 됐다.


감사원은 "한수원은 삼덕회계법인과 경제성 평가용역을 실시하면서 즉시 가동중단 외 다른 방안은 검토하지 않았다"며 "그 결과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1호기 폐쇄시기를 즉시 가동중단 외에 다른 대안은 검토하지 못하고 심의·의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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