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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하면 해결” 신뢰 못 주면 스포츠 윤리센터도 명멸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입력 2020.07.10 14:12 수정 2020.07.10 14:18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으로 8월 출범하는 스포츠 윤리센터 책무 커져

신고와 함께 즉각 수사할 수 있게 특별사법경찰제 등 조속히 도입해야

피해 선수들 신고해서 해결된다는 인식 가지면 지도자들도 인식 전환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과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 선수가 회의를 참관하다 퇴장하고 있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과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 선수가 회의를 참관하다 퇴장하고 있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이 일으킨 파장으로 8월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의 책무는 더욱 무거워졌다.


폭행·폭언·가혹행위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윤정 선수는 지난 6일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영구제명’ 중징계를 받았지만, 선수들을 보호 관리해야 할 체육 기관들에 수차례 SOS를 보내며 홀로 싸웠던 최숙현 선수는 세상에 없다.


체육계 전반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질타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스포츠 윤리센터가 8월 출범한다. 스포츠 윤리센터는 대한체육회의 스포츠인권센터 등 선수들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세웠던 기구를 통합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 독립기구로 2019년 1월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피해 폭로로 신설에 속도가 붙었다. 2월에는 관련법도 통과됐다.


문체부는 지난 4월 체육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에 착수했는데 출범을 앞두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요성과 역할은 더욱 커졌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철인3종경기 선수 인권침해 관련 조치 및 향후 계획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스포츠윤리센터가 확실한 체육계 내의 인권침해 근절을 위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위상과 권한을 강화하겠다"며 "스포츠윤리센터가 단순히 조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법률 지원 등의 기능도 갖게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체육계 폭력 악습을 끊는데 기여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는 스포츠 윤리센터의 출범을 앞두고 체육계 관계자들은 성패를 가를 결정적 요소로 하나 같이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인식 전환 유도’를 꼽는다.


‘이것이 나를 보호해줄 수 있을까’라는 선수들의 의심과 회의적인 생각을 덜어내야 한다. 가해한 지도자들 사이에 깔려있는 ‘신고해봐야 뻔하다’라는 인식을 뿌리 뽑아야 한다. 선수들이 신고하지 않고, 설령 신고해도 지도자가 덮을 수 있는 분위기라면 스포츠 윤리센터도 이전의 스포츠 인권센터 등과 같이 명멸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체육 현장에 있는 피해 선수 내지는 잠재적 피해 선수에게 ‘스포츠 윤리센터에 신고하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공식처럼 자리 잡아야 한다. 이 정도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폐쇄적 구조의 체육계에서는 또 고귀한 목숨을 스스로 끊는 비극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린 평창올림픽 봅슬레이스켈레톤 총감독 출신의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은 9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야구나 축구와 같은 프로 스포츠는 국민적 관심이 높고 언론 노출 횟수도 잦기 때문에 폭력·성폭력 사고가 상대적으로 쉽게 세상에 알려지지만, 비인기 종목의 경우 묻히거나 뒤늦게 수면 위로 올라온다”며 “최숙현 선수 사망 소식을 듣고 뉴스를 찾아봤는데 관련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폭력·성폭력 사건을 신고했을 때 소수 관계자들의 회유나 협박으로 묻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선수들에게 있는 만큼, 선수들이 피해를 당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이를 신고하고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신고가 들어오면 신속한 조사로 이어지고 조사 중에는 보호받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체계 속에서 강력한 처벌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기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모바일 메시지. ⓒ 이용 의원실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기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모바일 메시지. ⓒ 이용 의원실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정책연구원인 김대희 법학박사도 “사실 제도나 시스템은 다 마련되어 있다. 강력한 규정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뒤 불거져 나오고 처벌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아쉽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선수들이나 지도자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체감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4년의 예를 들었다.


김대희 박사는 “2014년 스포츠공정성이 화두가 됐을 때,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 검찰과 경찰이 파견됐다. 체육입시비리와 관련해 대대적으로 단속했고, 비리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강력하고 신속하게 조치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고 진단하면서 “피해자 선수들이 신고만 해도 즉시 착수할 수 있어야 한다. 증거 수집도 피해 선수들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착수한 조사 과정에서 수집해야 한다.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대로 작동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선수들도 신뢰가 생겨 적극적 신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체벌도 그렇지 않나. 신고가 어렵지 않고, 신고 후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학교체벌은 많이 줄었다. 스포츠 윤리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스포츠 윤리센터에 신고하면 즉각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훌륭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 해도 피해자가 신뢰하지 못해 신고를 꺼리면 소용이 없다. 신고하면 즉각 나가고, 또 신고가 들어와도 다시 나가고. 신고를 하면 빠르게 움직이면서 결국 진상을 밝혀내 반드시 해결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매뉴얼, 조례나 지침도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사법경찰관제도와 스포츠인권 암행감찰제도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대희 박사도 “스포츠 윤리센터에 증거 수집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현재는 구인권도 수사권도 없다. 사실 훈련장에 증거 수집을 위해 찾아가도 문 닫고 안 나오면 그만이다. 자취 감춰버리면 그만인 것이 현실이다. 이미 문체부와 식약처 등에는 특별사법경찰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국민체육진흥법 등을 개정해서라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인기종목일수록 더 폐쇄적이다. 폐쇄적이라는 의미는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프로리그가 아닌 일반 체육계는 구조적으로 폐쇄적이다보니 스포츠인권 암행감찰제도 필요하다. 스포츠 폭력이 이제는 라커룸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주 발생한다. 신고 없이는 발견하기 어렵다. 따라서 스포츠인권암행감찰제도와 옴부즈맨 제도가 필요하다. 어디선가 누가 보고 있다는 인식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리고 능력 위주의 공채를 늘려야 한다. 그들만의 왕국이 되지 않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감독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주다보니 제왕적으로 변해간다. 최숙현 선수 피해 구조도 그렇지 않나.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감독은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고, 다른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다. 명확하게 롤을 정해줘야 한다. 벗어난 업무행위를 할 수 없게 계약해지 조항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체육계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모여서 체육계는 정말 왜 이런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놓고 각고의 노력 속에 대화를 통해 혁신적인 대책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모든 체육계 인사들을 매도해서도 안 된다. 이용 의원은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을 처음 알리고자 마음먹었을 때, 국민들이 모든 엘리트 스포츠가 폭력·성폭력 사건이 만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체육 분야에서 폭력·성폭력이 근절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제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밝혔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훈련 방식이 좋은 성적을 낸다는 소수의 잘못된 지도자와 선수의 잘못이지, 엘리트 스포츠 전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이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체육계를 싸잡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체육계가 폭력 문제와 관련해 신뢰를 잃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태어나는 것이 스포츠 윤리센터다.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으로 커진 국민적 공분과 관심은 이제 스포츠 윤리센터의 출범 과정과 이후 역할-기능에 대한 감시로 이어져야 한다.


심석희 선수 피해 폭로로 커졌던 관심이 줄어든 사이 스포츠 윤리센터에 책정됐던 예산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국민적이 관심이 지속될 때야 비로소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스포츠 윤리센터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고, 선수들은 ‘신고하면 해결된다’는 믿음이 생길 수 있고, 지도자들의 인식 전환 유도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마지막 솔루션인 스포츠 윤리센터의 성패가 달려있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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