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실업자 넘쳐날 것"…역성장에도 최저임금 인상하라고?
입력 2020.06.15 05:00
수정 2020.06.14 20:52
올해 한국경제 -2.5% 전망에도 노동계 "최저임금 5.3% 올려야"
재계 "실적악화 와중에 최저임금 오르면 대량 실업사태 불가피"
문 대통령 '경제 전시상황' 위기의식, 최저임금 결정에도 반영돼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가 경제와 개별 기업 실적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노동계가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우려를 낳고 있다.
재계에서는 올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고용대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동계가 솔선수범해 최저임금 삭감이나 최소 동결에 합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가 최소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부담까지 더해질 경우 대량 실업사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0일(현지시간) 경제전망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마이너스 1.2%~2.5%로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19 2차 확산이 있을 경우 역성장 폭이 2.5%에 달하고, 2차 확산이 없더라도 1.2%의 역성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유로존이나 미국, 일본, 중국 등 다른 지역은 우리보다 마이너스폭이 더 크지만,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도가 커 해외 주요 시장에서의 경제성장률이 악화될 경우 주력 산업 업황이 연동된다는 점에서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다.
◆노동계 "5.3% 올려라, 재계 "최저임금 인상시 경제충격 심각"
경제성장률 하락은 주요 기업들의 실적 악화, 나아가 고용능력 상실로 이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693만명으로, 1년 전보다 39만2000명 감소했다. 앞서 3월 19만5000명을 시작으로 4월 47만6000명에 이어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 감소세다.
5월 실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3만3000명 늘어난 127만8000명이었으며, 실업률은 0.5%포인트 오른 4.5%로 같은 달 기준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최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을 5% 이상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첫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 간사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올해 평균임금 인상이 5.3%인데 일반임금 인상보다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취약계층 임금 격차와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히 인상된 상태다. 2017년 6470원이었던 최저시급이 2018년 7530으로 16.4% 수직상승했고, 2019년에도 10.9%나 올라 8350원을 기록했다. 올해 최저시급은 2.87% 오른 8590원이었다. 노동계 요구대로 내년 추가로 5.3% 인상이 이뤄진다면 9000원대(9045원)로 접어든다. 4년새 무려 2500원 이상 오르는 것이다.
특히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일 때의 충격은 더 크다. 정부 인사가 포함된 공익위원들도 2018년과 2019년 연속으로 이뤄진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에 따른 경제 충격이 컸던 점을 인정하고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0%에 그친 것을 감안해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2.87% 수준으로 완화하자는 사용자 측의 손을 들어줬었다.
재계에서는 올해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불가피한 만큼 상응하는 수준의 최저임금 삭감이나 최소 동결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성장률이 2% 내외의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5%대의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진다면 우리 경제는 지난 2018년과 2019년의 두 자릿수 인상 이상의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질 경우 고정비 압박이 심해진 기업들은 채용 축소, 나아가 구조조정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저임금 인상시 중소기업 44% "채용 축소", 15%는 "감원"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60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 기업의 88.1%는 내년 최저임금 수준이 올해와 같거나 낮아야 한다고 답했으며,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인상될 경우 44.0%는 신규채용을 축소하고 14.8% 감원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보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영세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은 고용에 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이 오른다면 이미 코로나19 사태로 대폭 줄어버린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내년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매출과 수익이 줄어 고정비를 낮춰야 하는데 인당 임금 부담이 늘어난다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건 단순 계산으로도 알 수 있는 상식”이라며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늘리라는 건 일자리를 지켜야 할 노동계가 오히려 고용대란을 부추기는 꼴 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 간 논의와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사용자측과 근로자측의 최종 안을 놓고 위원 27명의 투표를 통해 다수결로 결정된다. 사용자위원 9명과 근로자위원 9명은 각각 자신들이 내놓은 안에 표를 던지니 사실상 고정표고, 공익위원 9명의 판단에 따라 최종 결정이 이뤄진다.
공익위원들은 교수와 연구원 등 주로 학계 인사들로 구성돼 있으나, 그동안 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여 왔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이행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2018년과 2019년에는 근로자측의 손을 들어줘 두 자릿수 인상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 반면, 문 대통령이 공약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부에서도 더 이상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이뤄진 2020년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는 사용자측 안을 선택했다.
이런 전례로 볼 때 내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도 결국 정부와 청와대의 입장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는 27명의 위원 외에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소속 국장들이 특별위원으로 참석한다. 특별위원들은 투표권은 없지만 회의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결국 공익위원들의 판단에 정부 관련 부처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구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2020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현 경제 상황을 ‘전시상황’이라고 표현하며 위기의식을 강조한 바 있다. 재계는 내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도 전시상황에 걸맞은 결정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