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총선, 국운 가른다] 공천이 만사…승패 가르는 핵심 요소
입력 2019.12.30 06:00
수정 2019.12.30 09:20
공천, 총선의 핵심이지만 '자멸' 사례 산적
민주 "전략공천, 도저히 안될 때만 하겠다"
한국 "현역 3분의 1 컷오프, 50% 이상 교체"
공천, 총선의 핵심이지만 '자멸' 사례 산적
민주 "전략공천, 도저히 안될 때만 하겠다"
한국 "현역 3분의 1 컷오프, 50% 이상 교체"
총선의 해가 다가왔다. 정당의 입장에서는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큰 장(場)이 서는 해다. 보다 많은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정성껏 고른 '상품'을 진열해 내보낸다. 공천(公薦)이다.
공천은 총선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과정이지만 "잘해서 이겼다"라는 말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 못해서 자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가장 최근의 20대 총선이 이런 식으로 상대방에 승리를 안겨준 대표적 사례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분당(分黨)으로 야권이 분열되면서 새누리당의 압승이 예상됐으나, '진박' 공천 논란과 '이한구 공관위'의 전횡 등으로 되레 최악의 패배를 당하며 제1당 지위조차 내주고 국회의장을 빼앗겼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그 때를 회상하며 "지금(선거제·공수처법 의결강행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라고 개탄했다.
정치권 관계자도 "공천은 실점을 막는 게임"이라며 "개혁공천이라며 칭송받았던 사례도, 잘 들여다보면 상대 정당이 제대로 못해서 승리를 거저 주운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대표적 사례로 2000년 총선을 지목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권유해 중진의원을 '물갈이' 하는 등 '개혁공천'을 해서 이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립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 사이에서 공천 분란이 불거지면서 '선거 연대'가 무산된 탓이 컸다. 양당은 '선거 연대' 불발로 26석을 한나라당에 헌납했다.
이 때문에 총선 승패를 가늠할 쟁점으로 각 정당의 공천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 거대 양당이 보이는 움직임은 대조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략공천 최소화'와 경선 기회 보장을 거듭 강조하는 반면, 자유한국당은 현역 의원 3분의 1 컷오프, 50% 이상 교체를 공언하고 있다.
이해찬 본인이 '컷오프' 희생 겪은 경험자
컷오프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생환 경력
"당규에 20% 전략공천되지만 그렇게 안해"
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전략공천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입장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경선 원칙을 어기고 송철호 울산시장을 단수공천한 일이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으로 번지자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27일 전략공천관리위원회의에서 "그동안 전략지구를 잘못 선정해 부작용이 생긴 경우가 너무 많았다"며 "현재 지역위원장으로는 도저히 선거가 안되며, 좋은 사람이 대안으로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전략지구로 선정해 총선을 치르려고 한다"고 한정지었다.
이 대표는 이어 "당대표를 맡으며 전략지구를 최소화하겠다고 공약했다"며 "당규에는 20%까지 (전략공천을) 할 수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전략공천위원장을 맡은 도종환 의원도 "전략 지역 및 후보자 선정이 민주당의 정체성·개혁성·확장성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도 "위원회 차원에서 대상이 되는 선거구를 하나하나씩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 후보가 단수공천된 일이 최근 선거개입 의혹으로 번지면서, 민주당 내에서 '무리한 단수공천으로 후폭풍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전략공천 최소화 분위기를 강화하고 있다.
당시 민주당 '추미애 체제'는 울산 지역에서 당내 기반을 다져온 후보들을 배제하고 송 시장을 단수공천했다. 단수공천에 앞서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이 송 시장의 당내 경쟁자였던 임동호 민주당 전 최고위원에게 경선 포기를 조건으로 고베 총영사·공기업 사장 등을 제안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야권에서는 당시 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추미애 법무장관 후보자의 책임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추 후보자는 (민주당 대표 당시) 송철호 울산시장의 전략공천장에 대표 직인을 찍었다. 공천 최종 책임자가 다섯 번 민주당을 탈당한 전력이 있는 송 시장을 당내 경쟁상대를 무시하고 전략공천한 것"이라고 정조준했다.
민주당으로서는 곤혹스러운 공격이다. 이 대표의 전략공천 최소화 방침은 이러한 여러 여건과 본인의 경험이 반영된 '결단'이라는 평가다.
전략공천은 통상 지도부의 '인위적 물갈이'나 '자기사람 심기' 일환으로 진행돼왔다. 전략공천 최소화 방침을 밝힌 이 대표 역시 지난 20대 총선에서 '전략공천의 아픔'을 몸소 겪었다. 당시 물갈이 대상으로 분류된 그는 김종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저격공천'에 맞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7선 고지에 올랐다.
전략공천 또는 단수공천은 그간 사천(私薦) 논란을 야기하며 공천불복과 분열을 촉발해왔기 때문에, 이같은 방침을 잘 지켜나간다면 청와대 선거개입의혹이 되레 민주당에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태호·홍준표, 방침 아랑곳 않고 마이웨이
통합도 직결…유승민 "공천 시작하면 어려워"
"야당 공천에 훨씬 수준높은 정치력 필요해"
한편 한국당은 대거 컷오프(경선 기회 없는 공천배제)와 현역 의원 교체를 공언하고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달 20일 단식 농성에 돌입하며 "당을 쇄신하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들기 위해 내게 부여된 칼을 들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튿날 총선기획단에서는 현역 의원 3분의 1 컷오프와 50% 이상 교체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당내의 불만 기류는 크다. 황 대표는 단식 종료 직후 사무총장과 부총장까지 초선 의원으로 교체했으나, 불만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터져나왔다. 5선 심재철 원내대표·3선 김재원 정책위의장 조가 압승하면서 황심(黃心)이 차단된 것이다. 경선 전날 한국당 3선 의원은 "내일 황(교안 대표)이 박살나는 것 한 번 보라"고 공언하고 다닐 정도였다.
경선 당시 김재원 의장은 "쇄신한다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회초리만 든다"며 "우리 의원들 한 분 한 분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량을 갖추고 있다. 한국당 위기라고 하지만 의원 모두가 역량을 발휘하면 헤쳐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의 연설이 현장 표를 상당히 당겨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잠룡'들의 반발도 변수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당의 대표를 지냈거나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분들은 당과 협의해서 전략 지역에 출마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태호 전 최고위원은 고향 경남 거창·합천·산청·함양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채 반응없이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도 최근 고향 밀양·창녕·함안·의령 출마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의 공천은 보수통합과도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고차방정식'에 해당한다는 분석이다.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인재영입위원장은 28일 대구시당 창당대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총선의 과정을 보면 2월초까지는 보수통합 논의의 불씨가 살아있을 수 있다"면서도 "공관위가 공천을 시작하면 (통합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보수통합의 국민적 명분이 될 큰 원칙은 유 위원장이 제시한 '탄핵의 강을 건너자' 등 이른바 '3대 원칙'이겠지만, 실무적으로는 역시 공천 문제가 통합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각 보수 정당들이 전국 253개 지역구에 대한 공천을 시작하면 '후보자 교통정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국당 중진의원은 "원래 공천은 야당이 훨씬 어렵다"며 "여당은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을 입각시킬 수도 있고, 청와대 수석으로 불러들일 수도 있으며, 정 안 되면 공기업 사장·이사·감사 자리를 배려할 수도 있는데 야당에게는 이러한 '카드'가 한 장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여당의 약점은 심판의 대상인 청와대가 교만에 빠져 자기 사람을 내리꽂으려고 하는 게 가장 큰데, 이해찬 대표가 총대를 메고 '전략공천은 안된다'고 버티고 서면 이 약점조차 없어진다"며 "'실점하지 않는 공천'을 하려면 우리 (한국)당에는 훨씬 더 수준 높은 정치력이 요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