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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등골 뽑겠다는 엘리엇, 멍석 깔아주려는 정부·여당

박영국 기자
입력 2019.02.27 11:19
수정 2019.02.27 15:46

실적악화, 車산업 위기, 미래 투자여력 고려하지 않은 고액배당 요구

상법 개정시 엘리엇 등 투기자본에 무방비…재계 "기업 경영권 방어 어렵게 만들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전경.ⓒ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실적악화, 車산업 위기, 미래 투자여력 고려하지 않은 고액배당 요구
상법 개정시 엘리엇 등 투기자본에 무방비…재계 "기업 경영권 방어 어렵게 만들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에 7조원의 배당금과 자신들이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을 요구하며 노골적인 ‘등골 빼먹기’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에 대해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현대차그룹 무장해제에 돌입했다.

외국 투기자본과 진보성향 여당의 조합은 결코 어울리지 않지만 마치 짜고치기라도 하듯 묘하게 타이밍이 맞는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내달 열릴 주주총회에서 각각 4조5000억원, 2조5000억원씩 총 7조원을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실적이 악화됐고,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빠진 데다, 미래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시급한 상황이라는 점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엘리엇은 나아가 현대차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존 Y. 리우 베이징사범대 교육기금이사회 구성원 및 투자위원회 의장과 로버트 랜달 맥이언 발라드 파워 시스템 회장, 마거릿 S 빌슨 CAE 이사 등 3명을, 현대모비스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로버트 앨런 크루제와 루돌프 윌리엄 폰 마이스터 등 2명을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거액 배당 요구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서는 ‘후보자들의 경력 전문성이 특정 산업에 치우쳐 있고 이해 상충 등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거부했으나, 앞으로도 엘리엇의 공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 투기자본이 기업에 일부 지분을 투자한 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단기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압력을 넣어 막대한 이익을 빼먹고 철수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2003년 소버린이 SK(주) 지분을 매입하고 최태원 SK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주가를 끌어올린 뒤 2년 뒤 되팔고 철수하는 과정에서 투자액의 6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거둔 사례나, 2006년 칼 아이칸이 KT&G 주식을 매입한 뒤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한 뒤 1년도 안되는 기간에 1500억원의 수익을 빼먹고 떠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재계에서는 지배구조개편 작업을 앞두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투기자본에게 군침 도는 먹잇감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지배구조개편 시도에 나섰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투기자본의 공세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엘리엇이 ‘칼춤’을 추기 좋은 멍석을 깔아주려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에 대해 패스트 트랙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금이 경제민주화 법안을 처리할 적기라는 판단 아래 기업규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복안이다. 청와대가 신속한 법안 처리를 압박한 이후 여당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개정안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무력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며 그동안 재계가 반대해 왔던 사안이다.

앞서 투기자본의 ‘먹튀’에 희생당한 사례로 언급한 KT&G는 당시 집중투표제가 의무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 정관에 이를 포함시킨 대가로 칼 아이칸의 먹잇감이 됐다.

칼 아이칸은 2006년 KT&G 주식 5.69%를 매입한 뒤 집중투표제를 이용해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진출시켰고, 경영진에 보유 부동산 매각을 통해 배당을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집중투표제는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라 칼 아이칸의 공세가 가능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현대모비스의 현 상황과 미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엘리엇의 요구는 전형적인 투기자본의 잇속 차리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상법이 정부안대로 개정되면 엘리엇의 공세는 더 심해질 것이고, 다른 기업들도 단기수익을 노린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에 노출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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