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아스팔트 투사에서 제1야당 당권주자로
입력 2018.12.30 00:39
수정 2018.12.30 07:31
의정보고회 형식 빌린 전당대회 출정식 개최
"대한민국의 힘으로…우파 지도자 뽑아달라"
'복당파 프레임'과 함께 영남 당심 지지 호소
지난 탄핵 정국 때 앞장서 나섰던 아스팔트 집회의 투사는 제1야당의 당지도부로 연착륙할 수 있을까.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29일 오후 지역구인 강원 춘천에서 의정보고회를 열었다. 의정보고회의 이름을 빌린 사실상의 전당대회 출정식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지지자 1000여 명이 한림대 일송아트홀을 가득 메웠다. 이들이 토해내는 열기로 행사장은 이날 아침 최저기온 -15℃였던 춘천의 한파가 무색할 정도로 끓어올랐다.
'춘천의 힘에서 대한민국의 힘으로' 당권출정식
김진태 'JT' 이니셜 딴 'Join Tomorrow' 공개
'춘천의 힘에서 대한민국의 힘으로!'라는 구호가 적힌 장내 펼침막에서부터 단순 의정보고보다는 당권 도전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의정보고 순서에서는 김진태 의원이 춘천의 국비 2966억 원 확보와 △제2경춘고속도로 △동서고속철 △캠프페이지 시민공원화 △삼성SDS 춘천공장 △강원디자인센터 유치 등 주요 현안 사업의 현황을 설명했다.
다만 김 의원 본인조차도 "우리 춘천 말씀은 여기까지 드리고, 이제부터가 중요한 이야기"라며, 스스로 의정보고보다 당권 도전에 방점을 찍었다.
동영상에서는 "촛불에 흔들림 없이 맞선 사람이 누구인가", "법사위에서 수많은 악법을 막아낸 사람이 누구인가", "대한민국을 위해 물러섬 없이 싸울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으며 "김진태"라는 답을 띄웠다.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정당', '기업에게 자유를 주는 정당', '안보관이 굳건한 정당'이라는 세 가지 정당상을 내세우며, 김진태 의원의 영문 이니셜인 'JT'를 부각한 'Join Tomorrow'라는 캐치프레이즈까지 공개됐다.
"탈당파·배신파 절대 안돼" 프레임 싸움 돌입
"전당대회 마지막 기회…우파 지도자 뽑아달라"
이날 김 의원은 당권 도전 행보에서의 구도를 원내대표 경선 압승 요인으로 분석되는 '잔류파 대 복당파' 프레임으로 가져갈 뜻을 뚜렷이 내비쳤다. 아울러 원내대표·정책위의장·원내수석을 모두 수도권·충청권이 차지함에 따라 공백이 된 영남 당심에 구애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는 반성할 때가 아니라 싸울 때'라며, 6·13 지방선거 참패 직후 국회 로텐다홀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모습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이른바 '복당파'를 타겟 삼겠다는 전략을 드러냈다.
김 의원은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87회 전국을 다니면서 당원 동지들과 애국시민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전부 들어봤다"며 "탈당파·배신파 절대 안 된다고 하는데, 여러분 맞는가"라고 외쳤다.
이어 "통합이 어떻고 화합이 어떻고 포용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는 하더라도 우리 (잔류파)가 하는 것이지, 배신하고 탈당했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된다"며 "원내대표 했던 김모 씨 이런 사람들은 싸우는 척 흉내만 냈던 것"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이제 마지막 기회가 딱 한 번 남았다. 다음 번 전당대회"라며 "뼛속부터 제대로 된 우파를 지도자로 뽑아 원없이 제대로 한 번 싸워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로부터 경상도 피…남이 아니라고 생각"
'안동역에서' 부산·동대구로 개사해부르기도
전당대회 전략의 한 기둥이 '복당파 프레임'이라면, 다른 하나의 기둥은 영남 당심 구애였다.
이날 김 의원은 5년전 타계한 부친을 가리켜 "남겨주신 게 참 많더라. 아버지 아니었다면 어디 가서 '아버지가 6·25 참전자였다, 특수부대였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느냐"며 "경상도 피가 있어, (경상도에) 가면 남이 아니라고 생각해주시더라"고 회상했다. 부친의 연고가 경북 성주라는 점을 은연 중에 강조한 것이다.
또, 이날 청중의 요청에 따라 대중가요 '안동역에서'를 한 곡 뽑으면서는, 2절 가사 중의 '안동역'을 각각 '춘천역', '부산역', '동대구역'으로 바꿔불렀다. 춘천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굳이 나머지 두 대목을 부산역과 동대구역으로 바꿔부른 것은 영남 표심을 기대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전당대회 대비 조직 상당한 수준으로 구축된 듯
황교안 '페이드-아웃'…원내 일부 지지 움직임
김진태 의원의 당권 도전은 어느 정도나 현실성이 있을까.
사실상 아무런 조직적 준비 없이 나섰던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때와는 달리, 상당한 수준으로 전국 조직이 구축된 것으로 보였다. 한국당 관계자는 "김 의원이 6·13 지방선거 패배 이후 비상대책위원회가 수립되는 무렵부터 당권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는데, 약 반 년에 걸친 준비의 결실로 관측된다.
행사장 앞에는 전국 각지의 번호판이 달린 관광버스들이 모였다. 사회자는 서울·분당, 대구·경북, 부산·해운대, 대전·세종, 서산·태안 등 각지의 이름을 부르며, 대표며 회장 등의 호칭으로 참가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한민국의 힘! 김진태', '혁신을 이루는! 김진태'라는 깔끔한 피켓도 사전 배포됐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때 두서없이 태극기를 휘두르거나, 심지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수제 피켓까지 난무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질서정연했다.
아래로부터 지지 조직이 결집하면서 원내(院內)에도 본격적으로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전당대회에 등판시키려는 방향으로 움직이던 옛 친박계 의원 수 명은 최근 회동을 갖고 '플랜 B'로 김 의원을 지지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은 "올해가 저물어가는데 황(교안 전) 총리가 입당조차 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전당대회에서는 '페이드-아웃' 됐다고 봐야 한다"며 "김진태 의원을 밀어주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시인했다.
나이 젊고 선수 재선이라 당권 가도 '걸림돌'
"며칠이면 쉰여섯, 얼라라서 안된다니" 일축
다만 주요 당권주자 중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고, 선수(選數)가 재선에 불과하다는 점이 원내 지지세 확산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중진의원은 이와 관련해 "(김)진태 (의원)가 3선만 됐더라도"라고 탄식했다.
이러한 심리를 김 의원 본인도 당권 도전 가도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는 듯, 이날 행사에서 청중과의 질의·응답 형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선수가 낮다? 나이가 젊다? 아니, 그러면 내가 일부러 허옇게 흰머리라도 그려갖고 다녀야 하겠느냐"며 "벌써 50대 중반이고 며칠 있으면 쉰 여섯이 되는데, 젊게 봐주는 것은 고맙지만 '얼라'라서 안 된다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일축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이웃사촌' 강원 원주갑의 김기선 의원과, 한기호 전 의원이 내빈으로 참석해 축사를 했다.
김기선 의원은 "오늘 날씨가 장난이 아닌데도, 이 추운 날에 오직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인 여러분들을 보니 한편으로는 좀 샘도 난다"며 "나는 이렇게 못한다"고 해 좌중의 폭소를 이끌어냈다.
그러면서 "김진태 의원이야말로 춘천 뿐만 아니라 이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정말 위대한 정치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분들이 우리 한국당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로 김진태 의원을 세워가기를 바란다"고 덕담했다.
한기호 전 의원은 "국회가 새로 구성되면 언론사에서 의원 300명의 성향을 가장 좌측부터 우측까지 분석한다"며 "19대 국회의원 됐을 때 내가 2등을 했기에 '어떤 놈이 1등을 한 거야' 하고보니 김진태 의원이더라"고 회상했다.
아울러 "군 생활 하면서 별을 세 개 단 중장이 공군대위에게 졌다"며 "졌기 때문에 진 놈은 승복해야 한다. 김진태 의원을 위해서 내 모든 힘을 다해서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