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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개혁이 기업 잡는다-(중) 근로시간 단축 "저녁 있으나 돈 없는 삶"

이호연 기자
입력 2018.11.30 06:00 수정 2018.11.29 21:07

특성 고려 않는 일괄적 단축...“근로자 사기 저하, 경쟁력 악화”

탄력근로제 3개월서 확대 필요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지 한달이 지난 지난 7월 오후6시가 넘는 시간 종각역 인근 버스정류장에 퇴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지 한달이 지난 지난 7월 오후6시가 넘는 시간 종각역 인근 버스정류장에 퇴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기획] 기업이 병든다-기업재도약 위한 4가지 개혁
1. '100년 기업의 꿈' 발목잡는 상속세
2. 어설픈 개혁이 기업 잡는다
3. 규제공화국-혁신만이 살길이다
4. 고비용-저효율 대립적 노사문화 개선해야

특성 고려 않는 일괄적 단축...“근로자 사기 저하, 경쟁력 악화”
탄력근로제 3개월서 확대 필요


#.주부 A씨는 중견기업 생산직에 종사하고 있는 남편의 주 52시간 근무 도입으로 둘째 아이의 학원을 끊었다. 근로 시간 감소로 특근, 야근 등을 챙길 수 없어 남편 월급 앞자리 숫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A씨는 가계비를 보태고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A씨는 “저녁이 있는 삶은 얻었지만, 삶은 되려 팍팍해졌다”고 푸념했다.

지난 7월 본격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의 계도 기간이 연말 종료되는 가운데, 그 효과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연장근로 단축 등으로 수당이 줄어 실질임금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특성상 장시간 근무가 불가피한 업종의 경우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 도입이 불가피하지만, 그 기간을 놓고도 노동계와 경영계가 대립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후 “저녁이 생겼다”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행복하다”는 등의 긍정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지만, 모든 직장인이 환영만 한 것은 아니다. 중견 기업 근로자나 생산직 종사자들은 얇아진 월급 봉투로 불만도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IT서비스와 SW업계는 자칫 범법자로 낙인 찍힐 위기에 몰렸다. 해당 업계는 특정 시기에 사업이 몰리는 경우가 많아 주52시간 초과 근무가 불가피하다. 통상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4~6개월 이상은 초과근무를 피하기가 어렵고, 한 달 단위로 근무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발주 기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추가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프로젝트에 반영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주한 업체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근로자들도 난색이다. 포괄임금제를 반영하는 곳은 시간외수당을 신청할 수 있는 부분도 줄어들기 때문에 예전보다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내년에는 금융권에서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예정돼있다. 6개월 이상 근무 단위 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업체들은 주52시간 근로 시간 제한을 위반한 사업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근로자가 1주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1개월 정산기간 내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있지만 이 역시 단위 기간이 한달로 비교적 짧아 제약이 있다.

한국SW산업협회는 “주52시간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수주형 사업 중심이며 지속적인 유지관리 및 운영이 필요한 SW산업 특성이 고려되지 않았다”며 “제도 시행 이후 SW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정부에 보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게임업계의 경우 주52시간 근무제가 실적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올해 3분기 넷마블, 엔씨소프트, 게임빌, 컴투스 등은 매출이 소폭 줄었으며, 영업이익은 대폭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실적 악화의 원인을 신작 출시 규모가 감소한 탓으로 보고 있다. 실제 대형 게임사들의 신작 출시 수는 작년다 줄어들었다. 넷마블은 지난해 신작 11종을 공개했으나 현재 7종을 출시했으며, 넥슨도 지난해 17개에서 올해 14개의 게임만 내놓는데 그쳤다.

물론 직원을 혹사시키는 과도한 근로 문화는 없어지는 것이 맞지만, 게임사들의 근무시간과 근로시간이 저마다 다른 만큼 이러한 특성도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직 주52시간이 완전하게 정착되지 않은데 따른 꼼수도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그나마 수당을 받고 하던 일도 법 때문에 자원봉사하듯 한다는 볼멘소리도 들려온다. 초과 근로수당이나 야근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원치도 않는 휴가를 받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대형 게임사의 고위 관계자는 “주52시간 근무 도입 이후 정해진 인력과 시간으로 게임을 개발하다 보니 신작 수가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게임사의 수익성 악화와 근무 환경의 변화가 무관한다고만 볼 수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유연근로제가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대표 방안으로 꼽히는 탄력근로제는 연내 입법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탄력근로제는 주52시간 근무를 시행하되 업종 특성과 계절적 요인 등에 따라 근무시간을 최장 3개월 단위기간 기준 52시간을 맞추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다. 주 최대 64시간 초과 금지이다.

이를 두고 경영계는 3개월을 6개월 이상으로 늘려달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탄력근로제의 기간을 무리하게 확대하면 노동시간 52시간의 단축 의미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탄력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면 약 7%의 실질임금 감소까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치권 역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 측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입법을 연내가 아닌 내년 2월 임시국회 때 입법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 합의가 무산됐다. 계도기간이 한달 가량 남은 상황에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조선, 제조업, 정비, 방송 등은 근로시간 단축을 일률적으로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곳”이라며 “당장 내년 1월 법이 시행된다고 하니 탄력근로제라도 최소 6개월 늘려달라는 것인데, 이마저 막히니 현장에서도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노동계에서는 실질임금 감소를 얘기하지만, 사업장 존폐가 먼저 아니겠냐”며 “현장 분위기는 절박하다”고 덧붙였다.

이호연 기자 (mico91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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