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제약업계…FTA발 위기론에 '리베이트 약가인하'까지
입력 2018.03.29 06:00
수정 2018.03.29 06:04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 손질 불가피…업계 "신약개발 지원 줄어들까" 불안
칼 빼든 복지부, 불법 리베이트 의약품에 약가인하…"과도한 조치" 반응 이어져
제약부문을 둘러싼 국내외 이슈로 업계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테이블에 국내 신약 약가 우대 정책이 오르면서 세제 지원 제도가 개편될 가능성이 높아진 데다, 앞서 불법 리베이트에 연루됐던 의약품에 대해 정부가 약가인하라는 강력한 제재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를 한·미 FTA에 합치되도록 제도를 개선·보완하는 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측 요구에 따라 국내 제약사와 차별주의적인 면을 삭제하고, 모든 해외 제약사에 내국민 대우를 보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제약협회(PhRMA)와 다국적 제약사 등이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를 두고 다국적사에 대한 차별이라며 불만을 표해온 데 따른 것이다.
2016년 마련된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는 신약 가운데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됐거나 임상 시험을 국내에서 하고, 개발 과정에서 국내 인력을 고용하는 등 사회적 기여도가 높으면 제약사가 건강보험과 소비자로부터 약값을 10% 높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다국적사들은 신약 연구개발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약가를 통해 더 보전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시장에서 신약을 판매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약가 협상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심평원이 건보 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약가를 최대한 낮추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약가가 낮게 책정되는 것 또한 다국적사들의 불만을 부채질했다.
업계에서는 FTA 개정협상에 따른 여파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형평성을 높인다면, 세제 지원 정책이 축소되면서 다국적사와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입장이다.
주요 제약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제약 수출에서 미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수준으로 미미하지만,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 중 다수는 국내에 진출해 있다"며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신약을 만드는 다국적사와 인센티브도 없이 경쟁해야 한다면 국내 산업계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악재는 또 있다. 불법 리베이트가 오간 의약품에 대해 보건당국이 약가인하라는 칼을 빼든 점이다. 이는 징역형과 같은 법적 처분을 받는 것과 별도로, 장기적으로 매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제재 방안이다. 일부 제약사들은 이번 조치가 과도하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26일 보건복지부는 "불법 리베이트 행위로 적발된 11개 제약사의 340개 약제에 대한 가격을 평균 8.38% 인하하는 안건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했다"고 밝혔다.
약가인하 대상 제약사 및 품목은 2009년 8월부터 2014년 6월까지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검찰에 적발돼 법원 판결이 확정났거나, 수사 세부 자료 등이 추가 전달된 사례에 따라 정해졌다.
CJ헬스케어(120개), 한올바이오파마(75개), 일양약품(46개), 파마킹(34개), 일동제약(27개), 한국PMG제약(14개), 한미약품(9개), 영진약품(7개) 등이다. 품목 수는 CJ헬스케어가 가장 많지만, 재정 절감액은 일동제약이 50억원으로 가장 높다. 복지부는 약가인하로 총 17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는 리베이트 위반 약제가 건보 약제급여 목록에서 삭제된 후 동일 성분으로 재등재됐거나 또는 양도·양수로 타 제약사에서 재등재한 8개 제약사 11개 약제에 대해서도 약가인하 처분을 내렸다.
이는 약가인하 대상 약제를 급여 목록에서 삭제하고 일정시간이 지난 뒤 동일 성분의 약제를 재등재해 약가인하 처분을 피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다.
업계에 따르면 CJ헬스케어와 한올바이오파마, 일양약품 등은 내달 예정된 약가인하에 대해 집행정지와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낼 예정이다. 소송 판결이 나기까지 약가인하 조치는 중지된다.
법적 대응에 나선 업체들은 일부 개인의 일탈로 벌어진 리베이트로 인해 해당 의약품 품목 전체에 약가인하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호소할 계획이다.
CJ헬스케어 관계자는 "120개 품목 전체에 약가인하가 행해지는 것은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번 처분이 합리적 검토에 따른 결정인 만큼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