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계열사 경영 ‘손 뗀’ 조원태, 실리·명분 모두 챙겼다

대한항공 외 5곳 계열사 대표이사직 사임...‘지주사’ 한진칼 등기이사 직함 유지

최소한 그룹 지배권 유지...기업규제 리스크 선제적 조치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지난 2월 27일 대한항공 인천국제공항 격납고(Hangar)에서 열린 기내 간담회에서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대한항공

대한항공 외 5곳 계열사 대표이사직 사임...‘지주사’ 한진칼 등기이사 직함 유지
최소한 그룹 지배권 유지...기업규제 리스크 선제적 조치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한진그룹 계열사 5곳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계에서는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취임에 따라 한진그룹이 일감몰아주기 및 내부거래 조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제 조치를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주사인 한진칼 등기이사 직함은 유지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분석이다.

한진그룹은 15일 조 사장이 대한항공을 제외한 한진칼, 진에어, 한국공항, 유니컨버스, 한진정보통신 등 5개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조양호 회장, 조 사장,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보유 중인 그룹 IT 계열사 유니컨버스 개인 지분 전량도 대한항공에 무상으로 증여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당시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대한항공과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에 총 14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대기업의 대표적인 잘못된 관행으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를 지속 지적한 만큼 이 부분을 강화할 경우 한진그룹이 더 큰 과징금을 물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한진그룹은 공정위가 휘두르는 재벌개혁의 칼날에서 일부 비켜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공정위 고발 이후 검찰 수사 대상이던 대한항공 법인과 조 사장이 ‘정상 참작’을 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아울러 한진그룹 5개 계열사는 향후 이사회 승인을 거쳐 조 사장을 대신할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출해야한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은 조 사장의 대표이사직 사임 이후 계열사들이 그동안 구축해 온 오너경영 체제를 전문경영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각사의 새 대표는 과거 지창훈 전 대한항공 사장의 경우처럼 기존 임원 등 실무 능력이 검증된 전문경영인(CEO)이 맡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 사장의 계열사 대표이사 사임 및 대표이사 선출 등은 향후 이사회를 통해 절차에 따라 이뤄질 방침”이라며 “모든 과정을 공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려되는 지배권 약화 문제는 조 사장이 최소한의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는 선에서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서는 지난 1월 조 사장이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승계구도를 확립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조 사장이 지주사인 한진칼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는 대신 등기이사 직함은 지킨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현종 전경련 기업연구실장은 “조 사장이 한진칼 경영에 직접 손을 대지 못하더라도 최대주주인 등기이사로 남아 각 계열사의 경영을 감시하겠다는 의중일 것”이라며 “지주사는 각 계열사의 경영 과정 및 성과를 보고받는 위치에 있어 조 사장이 한진칼 등기이사직만 유지해도 계열사별 경영자의 사익 편취 우려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오너가 등기이사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실상의 그룹 지배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요그룹 오너가의 등기이사직 유지는 책임경영을 위해 당연한 조치”라며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회사의 주요 경영사안을 결정하는 권한도 있어 권한 부여와 동시에 책임도 무거워 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