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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대해부2] 연고와 연대에 의존하는 '그들만의 리그'

박진여 기자
입력 2017.03.31 06:30
수정 2017.05.05 01:14

[시민단체 대해부2]패거리 지배구조…"시민 없는 시민단체"

"정권 공격 적합한 사건에만 관심…시민의식 성숙돼야"

시민단체는 사회적 주장이나 요구를 개진하기 위해 모인 시민의 자발적 결사체로 정의되지만, 국내 대규모 시민단체 대부분은 학연·지연 등 연고적 폐쇄주의로 발전된 환경 속 특정 이념과 이익을 좇는 적폐가 지적돼왔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패거리 카르텔·엘리트 위주 지배구조…"시민 없는 시민단체"
"순혈주의보다 나쁜 내란선동…성숙한 시민의식 우선돼야"

“시민단체에 ‘시민’이 없다”

최근 대통령 탄핵 문제를 두고 찬반 집회가 연이어 개최되며 이를 주도하는 시민단체의 세가 어느 때보다 확대된 모양새다. 하지만 대규모 시위 때마다 ‘사드배치 반대’와 ‘이석기 석방’ 등 집회 성격과 맞지 않는 엉뚱한 요구사항이 등장하며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사회 전체의 이익 추구를 표방하는 시민단체가 특정 이익을 주장하면서 '시민단체에 정작 시민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시민단체는 사회적 주장이나 요구를 개진하기 위해 모인 시민의 자발적 결사체로 정의된다. 하지만 국내 대규모 시민단체 대부분은 학연·지연 등 연고적 폐쇄주의로 발전된 환경 속 특정 이념과 이익을 좇는 적폐가 지적돼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특정 사안이 생기면 이를 기준으로 연대 단체를 결성해 수십 개의 단체가 결집하는 현상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는 지적하고 있다. 연대를 통해 힘을 보탤 수 있으나 ‘우리는 항상 열려 있다’는 민주적 정당성을 표방하는 모습과는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끼리끼리 패거리’ 연대체가 시민사회 여론 주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결정을 이끌어낸 촛불집회를 주도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등 1500여 개 진보진영 시민단체로 구성돼 있다. 이들 단체는 앞서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노동개혁 철폐 등을 요구하며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를 결성,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연대활동을 전개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관련 집회도 마찬가지다. 당시 과거 광우병 시위를 주도했던 진보 진영 단체와 인사들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진보 진영 시민단체는 사안별로 한시적인 연대투쟁 기구를 조직해 일종의 ‘정치투쟁’을 벌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최순실 사건과 별 관련이 없는 ‘한상균 석방’ 등 이념 구호가 일부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정 사안에 이념 성향이 비슷한 단체들이 ‘총출동’ 하는 형식으로 여론을 주도하다보니 정작 시민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고, 사회적 문제가 이념논쟁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는 사회적 주장이나 요구를 개진하기 위해 모인 시민의 자발적 결사체로 정의되지만, 국내 대규모 시민단체 대부분은 학연·지연 등 연고적 폐쇄주의로 발전된 환경 속 특정 이념과 이익을 좇는 적폐가 지적돼왔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진여 기자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활동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단체가 학연·지연과 같은 연고와 인맥으로 구성돼 그 폐해는 더 크다는 지적이다.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정치 자문 연구소 경림R&C 대표를 맡고 있는 이달원 씨는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학연·지연과 같은 연고와 인맥에 의존하고 있는데도, 큰 사회적 이슈마다 세를 불려 전체 시민을 대표하는 것처럼 과장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옛 ‘동지’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이들 단체의 지배구조가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해 독과점화 되는 등 연고주의가 주요 작동원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어느 집단에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중추세력이 존재할 수 있으나, 스스로 시민의 자발적·민주적 참여를 표방해온 모습과는 반대된다는 것이다.

엘리트 위주 지배구조…“‘시민 없는 시민단체’ 증명”

실제 학연·지연 등 연고주의를 경계하고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자는 취지로 발족한 국내 진보 진영 시민단체의 지배구조가 소수의 특정 인물 위주로 구성·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소수 임원들이 창립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임원직을 점유하면서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국내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임원 중 상당수가 사회 고위층으로, 일반시민에 비해 현저히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유석춘 연세대 교수 등이 펴낸 ‘참여연대 보고서’(2006)에 따르면 참여연대 임원 출신 531명 중 309명의 출신 대학을 확인한 결과 서울대가 152명, 고려대 31명, 연세대 25명, 성균관대 11명, 이화여대 10명 등 5개 명문대 출신이 74.1%를 차지했다. 임원들 직업은 교수, 연구원 등 학계와 법조계가 전체 416명 중 54.4%(226명)를 차지했고 회사원, 주부, 학생 등 일반 시민은 10.6%인 44명에 그쳤다.

시민단체는 사회적 주장이나 요구를 개진하기 위해 모인 시민의 자발적 결사체로 정의되지만, 국내 대규모 시민단체 대부분은 학연·지연 등 연고적 폐쇄주의로 발전된 환경 속 특정 이념과 이익을 좇는 적폐가 지적돼왔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특히 이들 중 다수가 공직에 진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체 결성 이래 전·현직 임원 531명 중 직업이 확인된 416명의 현황을 보면 150명(36.1%)이 청와대와 정부 고위직, 산하 각종 위원회 등 313개 자리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권 별로는 김영삼 정부시기에 22개, 김대중 정부시기에 113개, 노무현 정부시기에 158개 공직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해당 조사를 진행한 유석춘 교수는 “인적 네트워크의 폐쇄적 연결망에 기초한 시민운동은 자발적 결사와 민주적 참여라는 정치학 교과서의 시민사회 모델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라며 “이들 단체가 그동안 비판해 온 ‘연고주의’, ‘지배구조의 폐쇄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권력과 유착을 통해 더 이상 시민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패거리 문화’ 폐단 근절해야”

이 같은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의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고주의, 패거리 연대와 같은 관행은 한국사회 전반의 전 계층에 걸쳐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부조리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시민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수 있는 의식 개선이 필요하고, 실제 이번 광화문 촛불집회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유석춘 교수는 본보에 “연고주의나 패거리 카르텔은 어느 조직에나 존재하는 뿌리 깊은 관행으로, 하루아침에 없앨 수도 없고, 다른 측면에서는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문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정권을 공격하기에 적합한 사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정치적 목적의 시위에 학생 등을 동원해 세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포퓰리즘이나 분노를 자극하는 말들에 대한 옳고 그름을 시민 스스로 판가름하고,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이 같은 폐단을 막을 수 있다”며 “이번 광화문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된 건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뒷받침 됐기 때문으로, 일반 시민들이 평화 시위를 주도함에 따라, 지난해 폭력사태로 변질된 민중총궐기 등 과거 시위 양상에 비해 선진적인 시위로 기록됐다”고 말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도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해서는 한 이념을 두고 양측이 옳고 그르다 싸우는 게 아닌 본인이 직접 사유를 함으로써 사안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하는데, 지금의 시민단체는 좌우가 한쪽으로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며 “시민단체는 시민들에게 여러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역할로, 순혈주의에 바탕한 감성적 공동체를 벗어나 합리적 사고에 토대한 이성적 공동체가 사회 중심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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