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TK 맹주'…빈자리 누가 채울까?
입력 2016.11.06 10:08
수정 2016.11.06 10:09
들끓는 TK민심 속 비주류 유승민·'지역주의 타파' 김부겸 부상?
전문가 "이반된 민심 부동층으로 표류…당분간은 맹주 없을 듯"
들끓는 TK민심 속 비주류 유승민·'지역주의 타파' 김부겸 부상?
전문가 "이반된 민심 부동층으로 표류…당분간은 맹주 없을 듯"
TK(대구·경북) 지역의 '정치적 맹주'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80%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안겨준 TK에서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최근 10%대를 맴돌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의 안방인 TK 지역조차 분노케한 것이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린 이들은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에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TK에서 무너진 민심을 회복시킬 차기 맹주가 누가 될지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진다.
정치권은 대선주자의 필요조건으로 지역 기반을 꼽는다. 우리나라는 지역구도에 기반한 지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난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확고한 텃밭인 TK를 기반으로 충북, 강원에서 압도적인 표차를 기록해 당선될 수 있었다. 14대 대선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남권에, 15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호남권에, 16대 대선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PK와 호남에, 17대 이명박 전 대통령이 TK에 텃밭을 두고 당선됐다.
반면 지역기반이 약해 경선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한때 여당의 대권후보 반열에 올랐던 고건 전 국무총리는 서울 출신이었다. 그는 12대 총선에서 전북 군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당선됐으나 호남의 지지 기반이 약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분오열돼 있었다. 그를 총리로 지명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히려 "실패한 인사"라는 발언으로 고 전 총리의 의욕을 꺾었다. 고 전 총리에겐 험난한 대선 정국에서 자신을 밀어줄 수 있는 실질적인 정치 세력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당선된 이후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불리는 확고한 지지기반을 다져왔다. 취임 직후 42%로 출발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한 해 3분기엔 60%까지 치솟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30% 이하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으며 굳건하게 지켜왔다. 특히 TK에서는 40%대 이하의 지지율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이렇듯 대구경북의 맹주는 박 대통령이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과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대권 잠룡들도 일정한 지분을 주장할 수 있지만 아직은 과거 박 대통령의 아성(牙城)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1년여 남은 19대 대선에서도 어설픈 구호보다 탄탄한 지역기반이 표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 특히 정치권은 보수의 텃밭 TK 지역을 주목하고 있다. 여당으로서는 '안방 사수', 야당으로서는 '보수표 공략'이란 시나리오에 따라 TK가 갖는 정치적 함의가 크기 때문이다.
유승민? 김부겸? 부동층? TK의 표심은 어디로…
유 의원이 여권의 대선주자로 자리를 공고히 하려면 전통적 새누리당 지지층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대권 후보 유승민'은 TK라는 지역 기반과 '합리적 보수'라는 철학적 기반이 이상적으로 결합해야 성공할 수 있다. 최근까지 여권의 최대주주 격이었던 박 대통령과의 관계개선이 급선무라는 여론이 거셌지만 지금으로선 오히려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간 당내 친박 주류 측과 거리를 뒀던 그의 행보는 이제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엔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원내대표 찍어내기 파동' 당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도 의회주의를 추구하는 모습은 중도보수층뿐만 아니라 야권 지지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또한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당을 떠나야 했던 유 의원을 지탱한 것은 TK였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민들은 유 의원에게 75%가 넘는 지지를 몰아주면서 정치적 생명력을 북돋워줬다.
이에 비해 김 의원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여권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던 지역주의 아성을 세 번의 도전 끝에 무너뜨린 것이다. 이 승리로 단숨에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선 그는 일찌감치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호남과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출마해 보수의 상징인 TK에서 야권의 대권 주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다른 후보가 갖지 못한 김 의원만의 플러스 요인이다.
더군다나 TK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최저치를 경신하며 민주당과의 격차가 불과 7.9%p로 좁혀진 점도 김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데일리안이 의뢰해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506명을 대상으로 무선 100% 방식으로 실시한 11월 첫째주 정례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5%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 참조)에 따르면 지역별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TK로부터 32.6%(전 주 대비 7.3%p 하락)를 얻었고 민주당은 24.7%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TK 민심이 빠르게 다른 정치인으로 옮아갈 것이란 전망은 섣부르다. '최순실 게이트'와 국정농단에 크게 실망한 지역정서는 '정치 혐오 또는 염증'으로 이어져 당분간 표류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TK 표심은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찾아 닻을 내릴 것이란 지적이다.
김용철 부산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경상도 지역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이반된 민심은 당분간 부동층으로 표류할 것"이라면서 "지금으로선 지지할 후보가 없고 정국이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박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 지지층이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어떤 인물을 지지하지 않고 부동층으로 표류하면서 정국의 흐름과 박 대통령의 수습 과정을 예의주시한 뒤 어느 정도 국정 혼란이 수습되고 나면 다시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표심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TK지역에서는 당분간 맹주 자리가 비어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표를 보수정당 대권주자라는 이유만으로 유 의원이 흡수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며 "TK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작으로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거목의 정치인들이 많이 배출됐다. 유 의원은 그에 비해 대중들을 끌어올 유인책이나 인지도가 약하다. 박 대통령의 표심이 단순이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TK 표심이 야권 대선주자인 김 의원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김 교수는 "김 의원이 갖고 있는 '지역주의 타파'라는 상징성은 지역구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