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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발의 법안, '셧다운제' '아동용변기' 등 실제 입법 반영

하윤아 기자
입력 2016.09.15 04:29
수정 2016.09.15 04:30

올해로 12회째 '어린이국회'…발의 180여건 중 입법·제도 적용 사례 다수

9일 오후 국회에서 제12회 대한민국 어린이 국회가 진행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우리나라 헌법 제34조 6항에 따르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위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교실 내 콘센트 감전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다면 '소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속담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안전을 위해 학교 내 콘센트 안전덮개 설치 의무화 법률안이 반드시 채택됐으면 합니다." (최희연 어린이의원)

지난 9일 국회는 전국에서 모인 초등학생들로 북적였다. 제12회 '어린이국회'에 참가한 이들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어린이의원' 신분으로 실제 국회의원처럼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펼쳤다.

먼저 이날 오전 열린 '어린이 상임위원회'에서 우수법률안으로 선정된 법안을 제안한 어린이의원들은 차례로 발언대에 서서 법안을 제안한 이유와 목적 그리고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채택을 호소했다.

이후 어린이의원들은 해당 우수법률안 대해 찬반 의견을 제시하며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이들은 장난기 없이 진지한 자세로 토론에 임하며 본회의에 상정할 법률안 표결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린이상임위'에서 채택된 '어린이 법률안' 7개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주재하는 '어린이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부쳐졌다. 그 결과 경기 귀인초 소속 최희연 어린이의원이 발의한 '학교 내 감전사고 예방을 위한 전기 콘센트 안전덮개 설치의무화에 대한 법률안'이 가장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어 국회의장상 대상에 선정됐다.

최희연 양은 학교 내 전기 콘센트에 안전덮개를 설치함으로써 학생들이 안전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해당 법률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 교실에 방치돼있던 전기콘센트에 감전돼 양손에 화상을 입은 대구의 한 초등학생 사례로 주의를 집중시키는가 하면, 교육부 통계에 미뤄 안전덮개 설치비용을 추계하는 등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법안의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호소했다.

최 양은 '데일리안'과 인터뷰에서 "처음 주제를 정할 때 초등학생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어려운 점이 있었고, 준비에만 대략 2~3달 정도가 걸렸다"면서도 "실제 나라에서 하는 활동에 저 같은 초등학생도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밖에도 이날 △AED(자동제세동기)작동 시 119로 작동위치 정보전송 법률안(경기 푸른초) △스쿨존에서 학원차량 탑승 장소 지정 법률안(경북 해마루초) △어린이용 소화기 제작 및 설치에 관한 법률안(부산 보수초) △지역교육청 내 아동의 미취학 및 무단결석 전담기구 설치에 대한 법률안(서울 압구정초)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법률안이 소개돼 많은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12회 대한민국 어린이 국회에서 어린이 국회의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역대 어린이의원 발의 법안들, 실제 입법·제도로 이어지기도

지난 2005년 제1회 어린이국회를 시작으로 매년 진행된 어린이국회는 올해로 12회째를 맞았다. 지난 10여년간 어린이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가운데 180여건이 '우수법률안'에 선정됐으며, 이 중에는 실제 입법이나 제도에 반영된 사례도 있다.

2005년 열린 제1회 어린이국회에서 서울 신선초 김명선 어린이의원이 발의한 '아동용 변기, 세면대 설치법 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그해 12월 심재덕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에 반영됐다.

당시 김명선 양은 공공화장실에 어린이용 세면대와 변기를 설치해 어린이들의 편리한 화장실 이용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공공화장실의 변기가 5개 이상이거나 세면대가 3개 이상일 경우 아동용 변기와 세면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안했다.

이후 심재덕 의원은 어린이를 위한 공중화장실 대·소변기 및 세면대 설치 조항을 신설해 개정안을 제출했고, 이듬해 해당 내용이 반영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 실생활에 적용되고 있다.

아울러 2005년 전북 전주 지곡초 김예린 어린이의원이 발의한 '인터넷 온라인게임 시간제 운영에 관한 법률안' 역시 실제 법안에 반영됐다. 김예린 양은 청소년 게임 중독의 심각성과 관련, 새벽시간 온라인 게임 공급을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안했다. 이후 법안의 내용이 보다 구체화돼 2011년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신설 조항으로 명시됐다.

일명 '셧다운제'라고 불리는 이 법은 '인터넷게임의 제공자가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제26조)고 규정하고 있다.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이유로 일각에서 위헌 주장이 일기도 했지만, 2014년 4월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2007년 제3회 어린이국회에서도 의미 있는 법률안이 여럿 제출됐다. 당시 부산 성동초 오세린 어린이의원이 발의한 '유괴죄 공소시효 폐지에 관한 법률안'은 큰 호응과 관심을 끌었다. 오세린 양은 "유괴·살인 등의 범죄가 들끓는 시대에 공소시효는 없어져야 할 제도"라며 유괴사건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비록 아직까지 국회에서 '유괴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와 관련해 제대로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로부터 발전해 '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이른바 '태완이법'이 지난 2015년 7월 국회를 통과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밖에도 2007년 서울 사대부설초 이준엽 어린이의원이 발의한 '남의 핸드폰 번호로 문자 보내기 금지법 법률안'은 국가 정책으로 발전해 제도에 반영되기도 했다.

이준엽 군은 당시 휴대폰 번호를 도용해 문자메시지를 보냄으로써 발생하는 피해를 방지하고자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 군은 휴대폰 제조사가 다른 사람의 번호를 도용해 문자를 보낼 수 없도록 기술을 개발해 휴대폰을 판매하도록 하고, 이동통신사가 단속에 협조하는 내용도 조문에 포함했다.

실제 이 같은 내용은 국가 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2012년 미래창조과학부는 국내 휴대폰 제조사의 협조를 얻어 문자메시지 발신번호 변경기능을 없애 휴대폰을 출시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2014년에는 휴대폰에서 발신번호를 변경해 문자를 보낼 경우 이통사가 해당 문자메시지를 차단하고 발송자에게 문자로 고지하는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로써 스미싱·스팸·문자폭력 등에 따른 피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어린이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실제 법률에 적용되거나 제도에 반영되기도 하는 등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에 일부 국회의원들은 어린이의원들의 활약에 큰 관심을 보이며 직접 어린이들을 찾아 격려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의원실에서 지역구 소속 초등학생이 어린이국회에 참석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도 하고, 의원이 직접 어린이국회 행사장을 찾아와 학생을 격려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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