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에 배석안한 대변인이 브리핑을 반박하는 '새정치'
입력 2014.10.29 18:05
수정 2014.10.29 18:19
<기자수첩>여당과 합의해놓고 반발 우려해 이미 발표한 내용 엎어버리기
당 지도부 차원에서 이뤄진 공식 브리핑을 같은 당 원외 당직자가 별도의 브리핑을 갖고 반박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자신들이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들이 브리핑 내용에서 누락됐다는 이유였다.
사건의 주인공은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이다. 김 대변인은 2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간 회동과 관련해 비공식 브리핑을 가졌다. 그는 브리핑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앞서 진행된 백재현 정책위의장의 브리핑에서 강조하려는 것이 빠지고, 설명하려는 것이 주가 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직전까지 상황은 이렇다.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이 끝난 뒤, 곧바로 귀빈식당에서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간 회동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 7명과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배석했다.
회동이 끝난 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백재현 새정치연합 정책위의장,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화 내용 중 공개할 부분들을 추렸다. 이어 주 의장과 백 의장은 12시 20분 회동이 진행됐던 귀빈식당에서 브리핑을 갖고, 대화 분위기와 의제로 다뤄졌던 내용들 중 15개 항목으로 나눠 공개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김 대변인은 2시 15분 당 대변인실에 기자들을 불러 여야 정책위의장 브리핑에서 4번(예산안 처리), 8번(전시작전통제권), 9번(사이버사찰), 15번(공무원연금 개혁) 등 4개 항목의 내용이 잘못됐다며 회동 배석자로부터 확인한 실제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문 위원장이 예산안의 시한 내 처리를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 부분은 예산안을 시한 내에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못 박은 것처럼 표현됐고, 전작권 환수 연기에 따른 용산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해 법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한 부분은 용산 주민들을 배려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왜곡됐다.
또 문 위원장은 메신저 사찰 논란과 관련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강조했으나 이 발언은 브리핑에서 생략됐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시한에 쫓겨 졸속으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으나 브리핑엔 ‘공공기관 개혁과 공무원 연금개혁은 둘 중에 하나만 성공해도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발언만 소개됐다.
이밖에 문 위원장은 “개헌이 경제 블랙홀이라는 대통령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개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며 “집권 3년차에 들어서면 여야 모두 유력한 대권 후보들이 떠오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개헌 논의는 사실상 힘들어진다”고 말했으나, 브리핑에선 개헌 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전달됐다.
여야 공동 브리핑 내용이 실제와 다른 데 대해 김 대변인과 함께 있던 한 당직자는 “내가 아까 발표문 정리하는 데 들어가니까 주 의장이 (혼자) 주로 말하고 있었고, 조 수석과 백 의장은 (받아)적기 바쁘더라”면서 “주 의장이 ‘이렇게 합시다’ 이러면서 말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받아 적기만 했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와 김 대변인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대략 이렇다. 회동 후 브리핑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주 의장이 문 위원장의 발언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편집했음에도, 백 의장은 당의 어떤 입장도 대변하지 못 하고 주 의장의 뜻에 따랐다는 것. 이에 김 대변인이 나서서 틀린 내용들을 바로잡았다.
이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는지 김 대변인은 3시 30분 정론관에서 추가 브리핑을 갖고, 백 의장의 브리핑에서 생략된 문 위원장의 발언들을 다시 소개했다.
이와 관련, 백 의장은 ‘데일리안’과 전화통화에서 “김 대변인의 설명이 맞다. 브리핑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의 브리핑이 사전에 조율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했다. 백 의장 스스로도 브리핑 내용 조율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백 의장이 동의했다고 해도 김 대변인의 추가 브리핑이 정상적인 행태는 아니다. 김 대변인의 설명이 모두 옳다고 가정해도 마찬가지이다.
결정적으로 김 대변인은 회동에 배석하지 않았다. 얼마나 자세히 전해 듣든 당시 상황과 분위기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여야 정책위의장의 공동 브리핑은 배석자들간 합의에 따라 이뤄졌다. 브리핑 내용을 정정하려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당사자가 나서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이다.
특히 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개헌 관련 내용을 뺀 이유에 대해 새누리당 측의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백 의장도 동의했다.
하지만 문 위원장이 회동에서 개헌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내 반발이 일었고,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이 합의했던 브리핑 내용을 부랴부랴 정정했다. 그것도 백 의장이 아닌 김 대변인을 통해서 말이다.
모든 대화에는 상대가 있다. 자신들의 발언이라면 몰라도 상대방이 비공개를 요청했던 발언, 해당 발언에 대해 비공개를 요청했던 이유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상황이 또 벌어진다면 다음엔 누가 새정치연합과 대화를 하려고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