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 추락뒤엔 무조건 대표 흔들고 보는…
입력 2014.09.07 14:40
수정 2014.09.07 14:44
국정원 댓글 의혹 국정조사 요구 장외투쟁 주도 강경파, 세월호도 똑같이

'박영선 체제' 한달을 넘긴 새정치민주연합에 또 다시 '도로 민주당'의 그림자가 드리운 모습이다. 김한길 대표 체제에서 보여줬던 과정을 1년 후인 지금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서다.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앞서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를 대신해 비상대책위원장 직에 올랐다.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채 무조건적인 심판론만 외치다가 참패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만큼, 직함까지 '국민공감혁신위원장'으로 바꿨다.
당초 박 위원장은 특유의 강경 이미지가 워낙 강해 원내대표 선출 당시부터 기자들 사이에서는 "협상은커녕 매일 싸움 중계만 하다 끝나는 것 아니냐"라는 진심 섞인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비대위원 협상 당사자이자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 당 전면에 나선 그는 이례적으로 원내대표 주례회동을 성사시키는 등 합리적·중도적 노선을 보인다는 호평을 받았다.
새 비대위원장에게 주어진 첫 과제는 세월호특별법. 하지만 “특별법 제정을 위해 130명이 한 마음으로 싸워달라”고 했던 박 위원장의 부탁은 초반부터 묻혀버렸다.
당내 강경파는 여야 원내대표 간 1·2차 합의안을 연거푸 걷어차고 일부 유가족이 주장하는 ‘수사권-기소권 부여’만을 요구했다. 당 차원에서 ‘민간 기구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의 테두리를 넘는 결정’이라며 특별검사제를 내밀었지만, 유가족보다 강경파가 먼저 나서 “무조건 재합의하라”며 박 위원장의 등을 떠밀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내 온건파에서는 “이러면 우리 당이 뭐가 되느냐. 협상하라고 세워놨으면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지만, 돌아온 것은 “원내대표에게 전권을 준 적이 없다”는 반박이었다. 여당 앞에 설 면목도, 권위도 사라진 자당 대표를 도울 대안을 내놓는 강경파는 아무도 없었다.
비대위원장 직을 내려놔야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권을 얻기 위해서는 다가올 전당대회의 결과를 좌지우지할 지역위원장 구성권을 가진 조직강화특위, 비대위를 선점해야하기 때문이다. 당장 최대 계파인 친노계 중진들이 중심이 돼 박 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들고 나왔고, 재야 운동권 출신인 486계도 노골적으로 비대위원장 직을 흔들었다.
여기에 야권 대선주자인 문재인 의원이 ‘유민아빠를 살리자’며 단식에 동참한 데 이어 ‘(당이 아닌)유민아빠의 뜻을 이어받자’는 단식 동참자도 생겨났다. 하루에 수십 명의 의원들이 계파 수장인 문 의원의 단식 장소를 방문해 얼굴을 비추며 광화문 광장을 들락거렸다.
내부적으로는 강경파에, 외부적으로는 새누리당과 유가족에 떠밀려 사면초가에 빠진 박 위원장은 결국 ‘거리행’을 택했다. 사실상 강경파에 떠밀린 선택이었다.
새정치연합이 국회 밖으로 나가 장외투쟁을 벌이면서, 당초 여야가 합의했던 분리국감도 무산됐다. 지난 1일 정기국회가 개회했지만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에만 뜻을 모았을 뿐, 향후 국회 일정도 표류한 상태다. 세월호특별법과 민생법안을 분리 처리하자는 당내 의견도 있었지만, ‘특별법 처리 없이는 민생법안 처리도 없다’는 강경론에 묻혔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 당내 강경파에 휘둘려 대표 리더십에 타격을 입고, 결국 투쟁 노선을 택해 국민 여론과 멀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당시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파행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에 반발하며 서울광장에서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1년 전 이맘때다.
비주류로 당 대표에 당선돼 중도·온건 노선을 견지해왔던 김한길 전 대표는 결국 강경파에 밀려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노숙투쟁과 원내 병행 투쟁을 불사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54일 만에 국회에 복귀, 지지율 급락을 경험하면서 리더십에도 큰 상처를 받았다.
특히 야당의 계속적인 장외 투쟁으로 당시 정기국회는 파행을 거듭하다가 9월 하순에 접어들어서야 정상화된 바 있다.
이처럼 대표를 흔드는 습관은 새정치연합 내 뿌리 깊은 계파주의 탓이다. 특히 최대 계파인 친노의 경우,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주류가 된 이후로 당을 쥐락펴락 해왔다. 여기에 시민단체 출신인 486계도 합세하면서 ‘친노강경파’라는 말로 불리기 시작, 수 차례의 대여 강경 투쟁과 장외 농성을 주도했다.
이에 대해 앞서 “강경파가 득세하면 나라 망한다”고 경고했던 조경태 의원은 “자기계파 말만 옳고 남의 말은 무조건 틀리다며 공격하는 계파주의가 당을 망치고 있다”면서 “이러니 계속 국민 정서와 멀어지는 것 아니냐. 입법권을 부여받은 130명 국회의원이 지금 일반 시민단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이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조 의원과 함께 장외 투쟁 반대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황주홍 의원도 “지난 의총에서도 협상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원들도 있었지만 무조건 재협상을 외치는 강경파가 강해서 다른 목소리가 묻혔다”면서 “당이 대표를 세워놓고 협상에 나서라고 했으면 어떻게든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게 우리 당의 큰 문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