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교육 앞으로 4년이 정말 무서운 이유
입력 2014.07.02 09:44
수정 2014.07.02 09:50
<굿소사이어티 칼럼>늘어나는 혁신학교 '폭탄'
‘국정원 해체 위한 전국중학생연대’ 등장할 수도
일단 이 점부터 분명히 하자. 보수는 단일화를 못해서, 분열해서 진 게 아니다. 무능해서 진 거다. 그게 아니라면 지난 2010년 6ㆍ2 교육감 선거에서 사분오열로 그렇게 쪼개지고도 보수가 10명의 당선자를 낸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진보(실은 이 단어 정말 싫다. 그냥 좌파나 좌익이다) 교육감 후보들은 경쟁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과도한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 고통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보수는 이걸 뛰어넘을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왜 못했나. 일차적으로는 후보들 대부분이 진짜 보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수가 아니니 보수의 이념을 알 턱이 없고 당연히 내세울 것도 없었다. 그들은 잘 봐 줘야 교육 명망가이거나 최악의 경우 교육 양아치였을 뿐이다.
좌파 교육감들에게 보수가 패배한 진짜 이유
둘째로는 말 그대로 비전의 빈곤이나 비전의 실종이다. 연구가 부족했고 없어서 못 내놓았다. 사실 진보 교육감들이 내 놓은 입시 경쟁 완화는 학교 안에서 종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학벌 사회와 뗄 수 없는 관계이고 별도로 분리해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잘해봐야 일시적인 처방이다. 사교육도 그렇다. 내 아이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을 어떻게 꺾겠다는 말인가.
고려시대부터 유구히 내려온 이 ‘욕망의 전통’을 정책 몇 개로 고사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다. 해서 진보 교육감들이 내놓은,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은 실현 불가능한 진정한 공약空約이다. 보수는 이 부분을 정확히 했어야 한다. 잘하는 애들은 더 잘하고 못하는 애들도 최소한 자기 밥벌이는 할 수 있는 교육을 만들어 가겠다는 목표를 정치공학적인 용어가 아닌 감성적인 언어로 설명했어야 한다. 못했다. 그래서 진 거다.
어쨌거나 진보 교육감들은 승리했다. 앞으로 4년 동안 전국 700만 명의 학생들 중 84%가 이들 치하治下에서 살아야 한다. 치하라는 표현이 거슬릴지 모르겠다. 엄밀하게 말해 교육감은 지원하는 자리다. 그런데 진보 교육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도할 것이며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민중 사관, 운동 사관으로 채워진 역사 교과서를 교실에 들이고 싶어 할 것이고 좀 더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자는 시각을 학교에서 몰아낼 것이다.
앞으로 4년 전국 학생의 84%가 좌파교육 받을 텐데…
그들은 교사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교육 현장이 아니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상관없이 학생과 교사가 학교를 말아먹는 이른바 혁신학교를 전국에 깔 것이다. 그래서 치하다. 혁신 학교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보자. 이들이 공식적으로 밝힌 혁신학교의 상象은 입시와 경쟁보다 함께 배우는 교육, 교사와 학생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학교 그리고 교사와 학생이 소통하고 협력하는 학교 문화 세 가지다.
대체로 아름다운 발상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슬쩍 빼놓는다. 혁신학교의 진짜 특징은 학교장이 아닌 교사 중심의 운영 시스템이다. 교사들이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학교라는 이야기다. 지난 해 서울의 전체 초중고교 교사 중 전교조 가입자는 10% 내외였다. 반면 혁신학교 교사 중 전교조는 20%를 넘었다. 20%라고 하니까 적어 보인다. 마치 80 대 20처럼 미약하게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의 목소리도 그 비율대로 작을까. 아니다. 침묵하는 다수와 행동하는 소수의 대결은 대체로 후자의 승리로 끝난다. 전자는 결사적으로 의견을 내 놓지 않고 후자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한다. 학교는 이 소수의 목소리에 끌려간다. 문제는 이 목소리다. 직접 한번 들어보자.
세 배 가까이 늘어날 혁신학교야말로 ‘폭탄’의 수준
‘어쩌면 너희들은 머리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수장되었다가 처참한 시신으로 마산 중앙 부두에 떠오른 열일곱 김주열인지도 몰라. 어쩌며 너희들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죽어간 박종철인지도 몰라.’
세월호 추모 영상이랍시고 전교조가 자기네들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단지 물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4ㆍ19의 김주열과 6ㆍ10의 박종철을 끌어내고 있으니 이걸 창의적이라고 해석해야 할지 사악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주열은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켰고 박종철은 군부의 항복을 받아냈으니 우리는 세월호를 도화선으로 삼아 현 정권을 박살내자는.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다고? 전교조가 나간 거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의 혈이다. 이래서 이들의 목소리가 문제라는 얘기다. 교실에서 실제로 이런 담화(여기서는 담임 훈화의 준말이다)가 나갔을지도 모른다. 전교조 교사들은 이런 것을 가리켜 계기수업이라고 부른다. 이런 계기수업이 숱하게 진행되는 곳이 이른바 혁신학교다. 현재 이런 학교가 전국적으로 579개가 있다. 이걸 임기 내에 1,500군데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것이 진보 교육감들의 당찬 포부다.
좌파 교육에서 국가란 타도해야 할 대상
혁신학교 확대 외에 진보 교육감들이 내놓은 주요 정책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ㆍ대안 역사 교과서 개발, 학생인권조례 강화다. 교과서 얘기부터 하자. 한마디로 교육을 국가의 영역에서 가져오고 싶은 것이다. 교육은 그 나라가 서 있는 초석을 긍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야 그 공동체가 유지된다. 그런데 그 국가를 부정하는 교육을 받은 구성원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공동체는 분열되고 결국은 붕괴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작년에 탈(脫)좌익 한국사 교과서(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보수 성향이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시각이다)가 정부 검정을 통과하자 전교조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들은 개별학교들의 채택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자기들이 가진 역사관과 다른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방치할 수 없다는 대단히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시퍼렇게 날선, 무서운 독선이다.
학교에서 대한민국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나라가 아니다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전혀 이승만의 나라, 박정희의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김구의 나라, 전태일의 나라다. 우려 끝에 국정 교과서 이야기가 나왔고 이를 결사 항전의 자세로 막아내겠다는 것이 진보 교육감들의 주장인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어떨까. 일반인들은 두발, 복장 자유화 정도로 이 학생인권조례를 이해하고 있다. 이 인권조례의 목록을 한번이라도 보신 적이 있는가.
대략 이렇다. 체벌, 따돌림, 성폭력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6조), 임신ㆍ출산ㆍ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5조), 복장ㆍ두발 등 용모에 있어 개성을 실현할 권리(12조),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 허용(13조), 특정 종교 강요 금지(16조) 등이다. 혁신학교의 외피처럼 역시 대체로 아름답다.
문제는 17조다.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학생들이 학교 밖뿐 아니라 교실이나 운동장 등 학내에서도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해주자는 조항이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게 학생인권조례의 진짜 노림수다. 이 집회와 시위가 어떤 것일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전교조 세월호 추모 영상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고 각종 촛불과 각종 대자보와 각종 정치 선동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집회는 어떻게 발전하는가.
당신이 잠든 사이 붉은 진흙탕에 빠져드는 학교들
일단 리더가 나온다. 그리고 연대와 조직으로 이어진다. 사울 알린스키라는 인물을 아시는가. 미국의 급진적인 사회운동가다. 그의 이론 중에 ‘지역사회이론’이라는 게 있다. 잠자는 민중을 깨워 리더를 발굴, 양성하여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예전에는 각성한 인텔리 분자가 현장에 침투하여 지역을 조직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것을 완전히 뒤바꾼 것이다. 그 사례가 1970년 전태일 분신이다.
지역을 학교로 바꾸면 이야기가 명료해진다. 학생인권조례의 집회 및 시위의 자유 보장은 한 마디로 고교생 운동가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소설 쓰십니까?”하실 분이 있겠다. 1988년에 출간된 책 <민중교육 2>에는 ‘고교학생운동 시론’이라는 게 실려 있다. ‘민중교육’은 전교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조심스럽게 교육 운동(당연히 교육이 아니라 운동에 방점이 찍힌다)의 가능성과 방향을 타진한 잡지다. 문제의 ‘고교학생운동 시론’에서 두 문장만 발췌한다.
“고교생과 교사는 교육민주화투쟁의 두 핵심 세력이며 나아가 고교생은 전체 변혁운동의 대열에 앞장설 수 있는 존재이다.”
“의식 있는 교사나 선배와의 만남을 통해 각 단위학교나 지역 속에서 소모임의 형태로 자기 외화(外化)를 실현”
‘국정원 해체를 위한 전국 중학생 연대’ 등장할 수도
아직도 소생의 이야기가 소설로 들리는가. ‘국정원 해체를 위한 전국 중학생 연대’같은 게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우려로 끝나기를 빈다. 그러나 참 나쁘게도 우려는 자주 현실로 나타난다. 당장만 해도 진보 교육감들은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교조 관련인사 참석 하에 회합을 가졌고 전교조가 법적 지위를 상실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전교조가 법적 지위를 상실한다면 교육 현장의 다양성이 손상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는, 몇 번을 반복해 읽어도 도무지 판독이 되지 않는 초현실주의적인 이유와 함께. 진보 교육감 13명 중 8명이 전교조 지부장, 조합원 출신이다. 그래서 진보 교육감 시대의 개막은 전교조의 화려한 부활과 같은 말이다. 선거 끝나고 좌파 교육감 시대 개막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어떻게 바라보긴. 그냥 담담하게 바라보면 된다. 보수의 무능을 곱씹으면서 아주 가끔은 보수의 분발을 기대하면서.
글/남정욱 소설가·'굿바이 전교조'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