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가족들 피눈물 나게 만드는 '이념다툼' 작태
입력 2014.04.21 15:20
수정 2014.04.24 11:48
'무조건 정부탓' '뜬금없는 종북의혹' 비난 자초
아무리 정치적 이념 달라도 재난 앞에 자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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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갇혀있는데 이념문제도 정치적 손익계산할 문제도 아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전 국민이 비통함에 빠진 가운데 이념세력과 정치권이 좌우로 겨눈 총구를 내려놓고 사고수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고 발생 후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슬픔을 뒤로한 채 이번 기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는 튀는 언행으로 빈축을 샀다. 한쪽에서 '정부탓'여론에 불씨를 당기자, 다른 쪽에서는 '종북논란'까지 거론하는 등 정파적 유불리에 따른 경거망동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당장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다. 선내 진입 등이 이렇게 더뎌도 될까. 이 정도면 범죄 아닐까"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구조소식을 기다리는 국민들과 실종자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대변했을 것이라고 득의양양했을 그의 발언에 "목숨을 걸고 구조작업 중인 구조대원들을 어떻게 범죄자에 비유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자질이 의심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내현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위원장은 20일 광주 상무시민공원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석했다가 비난을 자초했다. 세월호 참사로 선거운동 및 외부행사 참석을 자제한 다른 정치인과 달리 '국회의원 임내현'이라고 적힌 조끼와 반바지, 운동화 등을 착용하고 직접 마라톤 코스를 뛰어 "이런 상황에 마라톤 뛰는 정치인은 제 정신인가"라는 비난을 받았다.
정치인 구설에 "아무리 정치적 이념이 달라도 이럴 수는 없는 것"
유한식 새누리당 세종시장 후보는 지난 18일 밤 세종시당 청년당원들이 모인 '폭탄주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당 윤리위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경대수 당 윤리위원장은 "유한식 후보가 당의 위신을 훼손했다고 판단해 징계를 결정했다"며 "다만 유 후보는 음주 사실이 없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기호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이른바 '좌파색출'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한 최고위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드디어 북한에서 선동의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가 안보 조직은 근원부터 발본 색출해 제거하고, 안보 그룹은 단호히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에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한기호 의원, 이게 인간으로서 할 말인가. 인간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기로 했는가"라며 "다 같이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아무리 정치적 이념이 달라도 이럴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6.4 지방선거에 출마한 일부 후보들은 희생자를 추도하며 당분간 선거운동을 중단하겠다면서도 "세월호 애도합니다. 000후보"라는 식의 선거유세 문자메시지를 무차별적으로 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현재 여야와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은 선거일정을 무기한 중단했고,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구조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로 전환했다.
"좌우문제를 넘어 세대 간 갈등 우려…아이들이 어른말 듣겠는가"
국가적 재난사태 속에서도 좌우 이념전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일부 이념세력과 정파에서는 국민적 재난과 고통에도 좌우와 정파의 유불리를 따져 계산기를 돌리는 모습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20일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직위해제된 송영철 안전행정부 감사관에 대해 "그 앞에서 인증샷 찍을 기분이 나냐. 이 정도면 일베(보수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저장소'의 줄임말) 수준"이라고 했다. 평소 자신의 '이념전쟁 대상'에 논란이 된 인사를 빗댄 것. 한기호 최고위원의 '좌파색출'발언에 특정 세력에서 기다렸다는 듯 집중포화를 쏟아내는 것도 비슷한 양상이다.
구조작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에 한쪽에서는 '정부탓'을 하고, 사고수습이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경쟁적으로 '책임론'과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사고가 6.4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여론을 키운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권 한 원로인사는 "지금은 사고수습만 생각할 때"라며 "정부여당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사고 수습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일침을 놨다.
보수-진보 시민단체에서도 '자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쪽 진영 모두 이념공방으로 확산될 사안 등에 말을 아끼고 있다. 평소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종북 발언' 등에 목청을 높이던 단체들도 침묵을 유지하면서 "지금은 사고수습에 몰두할 때"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 이영우 국민통합시민운동 운영위원장은 "이번 사태는 좌우 문제는 물론, '국민 간의 불신'과 '국민과 정부의 불신'이 우려된다"며 쓴소리를 했다.
"세월호 침몰 사태로 국민 간의 혼란이 우려된다. 이는 전쟁 보다 더 큰 혼란이다. 전쟁은 적이라는 개념이라도 있는데, 지금은 우리끼리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정부의 말을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여야를 떠나서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이 위원장은 '세대 간의 갈등'도 치유해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고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놔두고 자기만 살겠다고 해서 벌어진 참사다. 말 잘 듣는 학생들만 희생됐는데, 앞으로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겠는가"라며 "이런 혼란과 갈등을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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