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 박 대통령, 한 발 물러선 듯 입장은 고수
입력 2013.08.13 09:32
수정 2013.08.13 09:44
발표 직후부터 ‘중산층 때리기’ 논란에 휩싸였던 세제개편안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발표한지 4일만에 논란에 대한 답을 내놓은 셈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일 소득공제 방식을 세율공제 방식으로 바꾸고, 부가가치세 감면 대상을 축소하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개편안 시행으로 연소득 3450만원 이상 봉급생활자의 조세 부담액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봉급생활자 털기’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여기에 개편안 자체가 봉급생활자에게 초점이 맞춰지고, 세 부담액 증가 기준이 지나치게 낮단 이유로 새누리당 내에서도 수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연소득 3450만원 이상 봉급자의 추가 부담액인 16만원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이 알려진 뒤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은 극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박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에서도 개편안 원안을 고수하기에는 부담이 따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론적으론 박 대통령이 여론에 밀려 양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다른 측면에선 박 대통령이 순수한 의도로 미흡한 정책의 보완을 지시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세제개편안에 대한 국민 여론이 어느 수준에서 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개편안이 정책적으로 미흡하단 판단에서 보완을 지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개편안을 통해 그동안 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았던 우리 세제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정상화하려고 했다”며 개편안의 취지에 대한 입장은 물리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어 “고소득층에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해 과세의 형평성을 높였다”며 “이번 개편안은 저소득층은 세금이 줄고, 고소득층은 세부담이 상당히 늘어나는 등 과세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결국 저소득층에 대한 세제혜택은 늘리되 비과세 감면 완화(부가가치세 과세 범위 확대)라는 개편안의 기본 방향은 유지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 세 부담액 증가 하한선 상향조정과 신용카드 세액공제율 확대, 저소득층 세액공제율 확대 등의 조치가 수반될 수 있다.
새누리당 역시 정부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의 뜻을 내비치고 있어 저소득 봉급생활자의 세 부담을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개편안이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대통령 사과, 부자감세 철회 선행돼야"…수정안 나와도 처리까지 첩첩산중
한편, 박 대통령이 세제개편안과 관련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함에 따라 정부와 야당 간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당초 ‘세금폭탄 저지 서명운동’까지 계획하며 강경대응을 예고했던 민주당의 입장에서 더 이상 개편안을 반대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서명운동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개편안이 발표된 직후부터 민주당이 요구했던 사항은 박 대통령의 사과와 부자감세 철회였던 만큼, 이 두 가지 사항이 선행돼야만 투쟁을 멈추겠다는 입장이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해 놓고 이제 국민들의 분노한 목소리에 답을 한 것이다. 그나마 천만 다행”이라면서도 “박 대통령은 심각한 국정혼란을 야기한 이번 사태에 대해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또 “앞으로 세제개편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으니 앞으로의 방향은 부자감세 철회가 선행돼야 한다”며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를 방지하는 노력이 먼저 돼야 한다. 또 대기업과 부유층으로부터 감세됐던 세금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민주당은 처음부터 부자감세 철회에 초점을 두고 세제개편안에 반대했다는 말이 된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세율 조정과 세목 확대 등 명목적 증세는 국회에서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정부가 수정안을 제시해도 국회 협상 과정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새누리당은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우선 개편안이 국회에 넘어오면 검토할 것”이라며 “하지만 명목적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박 대통령과 당의 대선 공약이었다. 민주당의 요구는 국회 논의사항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악의 수는 민주당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안건조정위원회를 설치해 개편안 처리를 막는 것이다. 여야가 개편안 자체만 좋고 협의에 들어간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민주당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 할 경우 개편안 처리는 정부조직법 때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안건조정위는 조정이 필요한 안건에 대한 별도의 논의기구로, 설치와 비교해 해산 요건이 까다롭다. 또 최장 90일까지 활동이 보장되며. 활동기간 중 관련 법안의 상정이 불가능하다.
다만 정부와 여당 모두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조세 부담을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이 같은 무리수를 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정부가 명목적 증세는 없다고 못 박은 만큼, 개편안이 일부 수정되는 수준에서 협상이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