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생일에 24개 역 '들썩'… 팬덤이 바꾼 지하철 지도 [광고가 바꾼 지하철②]
입력 2026.09.25 13:29
수정 2026.09.25 13:29
역사 벽면 스타 생일 광고에 팬들 '북적'
트로트 가수·배우 팬덤, 투표 대상 확대
지하철 광고, 일상적인 팬덤 문화로 정착
내릴 역을 확인하려고 올려다본 화면에 광고가 흐르고 역사 벽면의 스타 생일 광고 앞에는 팬들이 모인다. 역 이름 옆에는 기업과 기관의 이름이 붙는 것도 익숙해졌다. 지하철의 광고는 시민이 정보를 얻는 방식부터 공간을 이용하고 장소를 기억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객실 화면과 팬덤 광고, 유상 역명병기를 통해 달라진 지하철의 풍경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시민의 이용 편의와 공공성을 어떻게 지킬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의 생일 전날인 8월 31일에 찾아간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일본인 관광객 A씨는 벽면 디지털 화면에 정국의 축하 영상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뒤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었다. A씨는 "광고 송출 일정을 사전에 확인하고 동선에 맞춰 방문했다"며 "용산 사옥 인근의 생일카페뿐만 아니라 지하철 광고 촬영도 한국 방문의 중요한 일정"이라고 전했다.
올해 정국의 생일을 앞두고 펼쳐진 팬 계정 '모꾸모꾸'의 프로젝트는 8월 26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 지하철 24개 역, 총 54개 디지털 광고면을 채웠다. 홍대입구, 강남, 잠실, 고속터미널 등 시민들의 일상적인 이동 거점이 팬들의 축하와 연대의 장소로 탈바꿈한 순간이다.
홍대입구역에서 재생되는 방탄소년단 정국 생일 광고.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도시의 이동 경로에 팬들이 직접 건 광고가 등장한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다. 당초 팬들이 스타에게 마음을 전하고 대중에게 아티스트를 알리는 수단으로 시작된 이 광고는 광고비 집행의 주체를 상품을 파는 '기업'에서 응원하는 '팬'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교통공사는 팬덤 광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결정적 계기로 엠넷(Mnet)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꼽는다. 시청자의 투표가 연습생의 데뷔를 결정짓는 구조 속에서 팬들이 지하철 광고를 통해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일상적인 팬덤 문화로 정착했다. 실제로 지난해 심의를 거쳐 서울 지하철에 송출된 아이돌 광고만 1만 2433건, 올해 1~8월에는 8012건에 달한다.
광고의 주인공도, 종류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생일 외에도 데뷔 기념일, 음악방송 MC 발탁 기념 광고 등을 축하하는 광고도 눈에 띈다. 팬덤 투표 플랫폼 '유픽' 관계자는 "초기에는 케이팝 아이돌 중심이었으나 트로트 가수와 배우 팬덤의 수요가 늘어 투표 대상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8월 20~26일 건대입구역에 송출된 트로트 가수 김용빈의 광고나 팬 투표 서비스 '기프트리'를 통해 4월 광화문역에 걸린 피겨스케이팅 차준환 선수의 광고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프로게이머, 버추얼 유튜버(버튜버)도 축하를 받고 있다.
프로게이머 쵸비 생일광고(왼쪽), 알파드라이브원 상원 음악방송 MC 데뷔 기념 광고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그 중 버튜버 그룹 '홀로라이브' 토키노 소라의 9주년 응원 광고가 강남역에, 리글로스의 3주년 기념 광고가 양재역에 내걸렸다. 온라인 방송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오프라인 상징 공간에서 축하하는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팬덤 광고의 무대는 지하철 역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해 4월 에스파(aespa) 카리나의 생일에는 전국을 운행하는 KTX 객실 모니터 약 5000대에 축하 영상이 송출됐다.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열차 내부로까지 매체가 확장된 사례다.
지하철 역사와 열차는 이제 이동의 통로에 머물지 않는다. 팬들이 직접 기획하고 찾아가는 팬덤 광고는 무심하게 지나치던 공공의 이동 동선을 팬과 아티스트가 만나는 능동적인 이벤트 공간으로 재구성한다. 자발적인 모금과 참여로 만들어진 이 광고들은 도심의 일상적인 풍경 속에 새로운 문화적 의미와 장소성을 부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