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은 없어도 공은 찬다"…'소속 없이 함께' 하는 청년들 [Now 2.30]
입력 2026.09.09 07:00
수정 2026.09.09 07:00
장기 회원 대신 '그날의 참가자'…원하는 시간·활동만 선택
회비·출석·뒤풀이 없는 소셜매치…플랫폼이 운영 부담 대체
20대 60% "외로움 느껴"…관계 단절 아닌 '조절 가능한 만남'
전문가 "관계 피로 줄이고 함께할 때 얻는 촉진 효과는 누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고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즐긴 30대 직장인 박 모씨는 몇 년 전 활동하던 조기축구팀 두 곳을 모두 탈퇴했다. 교회에서 만든 팀에서는 경기 참석과 별개로 예배에도 나오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웠다. 지인들이 모인 팀에서는 여러 사람이 미드필더 포지션만 맡으려 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운동 밖의 관계와 팀 안의 역할 조정이 모두 피로로 돌아온 것이다.
박씨는 축구를 그만두는 대신 참여 방식을 바꿨다.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팀을 나와 애플리케이션에서 그날 뛸 경기만 고르는 '소셜매치'로 옮겼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의 경기에 참가비를 내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팀을 꾸려 운동한 뒤 헤어지는 방식이다.
박씨는 "현재 뛰는 경기의 99% 이상이 소셜매치"라며 "가끔 인터넷 카페에서 구한 일회성 '용병'으로도 뛰지만 정식 팀에 다시 가입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조기축구회 회원 대신 '그날의 참가자'
박씨의 선택은 단순히 조기축구회 팀을 옮긴 것이 아니다. 축구에 참여하는 단위를 장기적인 '회원'에서 '그날의 참가자'로 바꾼 것이다.
기존 조기축구회에서는 대체로 정해진 날짜마다 출석하고 회비를 낸다. 구장 예약과 상대 팀 섭외, 결원 보충 등 운영 업무도 회원들이 나눠 맡았다. 팀에 따라 경기 전후 식사와 뒤풀이, 단체대화방이나 경조사까지 더해지면 축구와 친목, 조직 운영이 하나의 묶음이 된다.
하지만 박씨가 택한 소셜매치는 이를 경기 단위로 나눈다. 이용자는 원하는 지역과 시간, 수준에 맞는 경기를 신청한다. 플랫폼은 참가자 모집과 구장 대관, 장비 준비를 맡고 현장 매니저가 팀 편성과 경기 진행을 담당한다. 함께 공을 차는 동안에는 팀원이지만 경기가 끝난 뒤까지 관계를 이어가거나 운영 역할을 맡을 필요는 없다.
서울의 한 풋살장에서 소셜매치가 진행되는 모습.ⓒ데일리안 DB
정기 소속 없이도 온라인으로 일회성 만남
이같은 모습은 풋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독서와 산책, 전시 관람, 보드게임 등에서도 온라인으로 참가자를 모집해 특정 활동을 함께한 뒤 헤어지는 모임을 찾아볼 수 있다. 관계를 먼저 만들고 취미를 공유하는 대신 공통의 목적을 앞세워 만나는 방식이다.
전자신문이 올해 4월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성인 1006명을 조사한 결과, 2030세대의 46%는 현재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이 없다고 답했다. 같은 응답을 한 4050세대는 27%였다. 반면 전체 응답자의 45.1%는 취미·자기계발 모임에 가입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경험이 있었고, 연령대별 이용 비율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주로 찾는 플랫폼은 세대별로 달랐다. 2030세대는 카카오톡 오픈채팅(44.5%), 당근과 소모임(각 27.7%) 등을 모임에 가장 자주 이용한다고 답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은 접근 편의성이, 당근은 지역 기반이라는 점이 주된 선택 이유로 꼽혔다.
서울의 한 풋살장에서 소셜매치가 진행되는 모습.ⓒ데일리안 DB
고립 아닌 '조절 가능한 연결'
2030의 이러한 선택을 사람 자체를 피하려는 개인주의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올해 전국 만 19~59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은 20대가 60.0%, 30대가 49.2%였다. 전체 응답자 기준 55.6%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보고 대화하고 싶다고 답했지만, 51.4%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만남의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드는 시간과 감정적 비용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목적형 모임은 완전한 고립과 장기적인 소속 사이에서 관계의 깊이와 지속 기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동호회에 가입하면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등 여러 부담이 생긴다"며 "모르는 사람끼리 단발적으로 만나면 오로지 목적을 위해 모였다가 헤어지기 때문에 훨씬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정해진 날짜에 자신을 맞추는 것보다 본인이 가능한 시간에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모임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며 "관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고 관계에서 따르는 피로감과 부담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활동을 혼자 하려는 것은 아니다. 곽 교수는 "혼자 하면 의지가 약해져 어려울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면 수행이 촉진되는 '사회적 촉진' 효과가 나타난다"며 "꼭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수행을 촉진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목적형 모임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담은 줄이면서 함께할 때 얻는 효과는 취하는 방식이다. 경기 중에는 낯선 사람과 패스를 주고받지만 종료 휘슬 뒤까지 같은 팀으로 남을 필요는 없다.
곽 교수는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되 깊이 신상을 공유하지 않고 부담 없이 헤어지는 만남을 추구하는 성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