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안전모 껴입던 시대는 끝났다…재난 현장 파고든 4족 로봇
입력 2026.09.04 09:21
수정 2026.09.04 09:22
2026 안전산업박람회서 4족 구난·소방로봇 두각
드론·AI 결합해 감지부터 대응까지 일체화
개별 장구 판매에서 토털 솔루션으로 확장
기대했던 이족보행 로봇은 공개 안 돼
2026 대한민국 안전산업박람회에서 코레일이 선보인 4족보행 구난 로봇. 등에 산소통과 호흡장비를 싣고 화재 현장을 진입하거나 로봇팔을 이용해 산소마스크를 요구조자에게 씌워 호흡을 지원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지난 2일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 코레일 관계자의 조작에 따라 스마트 구난 4족 보행로봇이 전시장을 오갔다. 네 발로 몸을 지탱한 로봇이 방향을 바꾸고 움직일 때마다 관람객의 시선도 로봇을 따라 이동했다. 철도사고나 재난으로 사람이 곧바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먼저 들어갈 구난 장비다.
한쪽에서는 무한궤도를 장착한 다목적 소방로봇이 묵직한 모습을 드러냈다. 화재 현장의 열기와 연기 속으로 소방대원 대신 진입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장비다. 사람과 비슷한 외형보다 거친 바닥을 이동하고 현장 임무를 수행하는 기능을 앞세운 점이 눈길을 끌었다.
행정안전부와 부산시가 공동 개최한 2026 대한민국 안전산업박람회에는 국내외 340개 기업·기관이 920개 부스를 차렸다. 이 가운데 AI와 로봇, 드론을 모은 첨단재난안전산업관에만 131개사가 256개 부스를 마련했다. 올해 박람회에서 로봇은 일부 부스의 볼거리를 넘어 안전산업의 변화 방향을 보여주는 핵심 기술로 자리를 넓혔다.
현장의 관심은 로봇이 얼마나 사람처럼 움직이느냐보다 사람이 감당하던 위험을 어디까지 대신할 수 있느냐에 모였다. 재난 현장은 보호장비를 착용한 작업자를 위험 속으로 보내던 방식에서 로봇과 드론을 먼저 투입하는 시대로 빠르게 안전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었다.
코레일 4족보행 구난 로봇이 실제 재난구조 현장에서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시연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관측에서 사전 예측까지…인공지능과 무인 장비가 바꾼 초동 대응
4족 보행로봇은 바퀴형 장비가 넘기 어려운 계단과 단차, 잔해가 뒤섞인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코레일이 선보인 스마트 구난로봇 역시 철도시설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람의 접근에 앞서 현장을 확인하고 구조 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또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내놓은 산업·소방용 안전점검 로봇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산업시설과 화재 현장은 고온과 연기, 유해물질, 붕괴 위험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현장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작업자나 소방대원이 먼저 들어가는 순간 또 다른 인명피해 가능성이 생긴다. 로봇에 카메라와 감지장비를 싣고 먼저 투입하면 대응 인력이 현장 정보를 확보한 뒤 진입 여부와 경로를 판단이 가능하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개발 중인 기술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연구원은 4족 보행로봇을 활용한 인명탐지와 화재진압 솔루션, 협소공간에서 폭발물을 찾고 내부 지도를 만드는 탐색로봇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인명탐지와 진압, 정찰을 각각 분리된 장비가 맡던 단계에서 하나의 이동체에 여러 기능을 결합하는 방향이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무한궤도형 다목적 소방로봇 역시 화려한 외형보다 이동 안정성과 임무 수행에 무게를 둔 최근 흐름을 보여줬다.
재난을 앞서 읽는 기술도 로봇과 함께 전면에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AI 기반 실시간 도시 침수 예측 플랫폼은 3차원 공간정보를 토대로 침수 상황을 관측하고 예측 모의실험과 분석을 지원한다.
비가 내린 뒤 피해 지역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느 지역에 물이 차오를 가능성이 높은지 판단해 대응 결정을 돕는 방식이다. 안전기술의 역할이 현장 대응에서 사전 예측까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리베라웨어의 실내 점검용 초소형 드론 IBIS2는 크기를 줄여 접근 범위를 넓혔다. 배관과 굴뚝, 천장, 하수도처럼 좁고 어두워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을 비행하며 내부 영상을 확보한다. GPS 신호를 받기 어려운 실내 비행을 고려했고 분진과 이물질로 인한 고장을 줄이기 위해 밀폐형 모터를 적용했다.
국토안전관리원과 공항철도 시설, 저수지 용수관로, 국내 플랜트 등에서 점검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전시용 시제품과도 거리를 뒀다.
로봇과 드론, AI 침수예측 플랫폼은 사람이 위험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가는 횟수를 줄이는 것이다. 이동장비가 눈과 발을 대신하고 센서와 AI가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면서 안전산업도 개별 장비 판매에서 감지·판단·대응을 연결하는 체계로 확장되고 있다.
현대자그룹 로보틱스랩에서 개발한 4족보행 로봇 '스팟'은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현재 현대차그룹 양재사옥에서 보안·순찰 업무도 맡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착용형 보호구의 시대 끝…감지·판단·대응을 하나로 묶는 산업 생태계
안전산업의 중심에는 오랫동안 안전모와 보호복, 안전화, 소화설비가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거나 위험에 노출되더라도 작업자의 피해를 줄이는 장비들이다. 올해 박람회에서도 이들 제품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달라진 점은 보호장비에 더해 사람을 위험한 공간에 보내지 않기 위한 기술이 전시장 앞쪽으로 나왔다는 데 있다.
기존 방식은 사람이 현장에 들어간다는 전제 아래 보호 수준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로봇과 드론을 활용하면 현장 진입 자체를 늦추거나 줄일 수 있다. 화재나 붕괴, 침수 상황을 기계가 먼저 살핀 뒤 확보한 영상을 토대로 대응 인력이 움직이는 구조다.
대응 시점도 사고 이후에서 이전으로 당겨지고 있다. 도시 침수 예측 플랫폼과 각종 감지센서는 위험이 현실화하기 전에 징후를 포착하는 데 목적을 둔다.
또 산업시설을 순찰하는 로봇이 온도나 설비 이상을 찾아내고 관제시스템에 정보를 보내면 작업자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점검에 나설 수 있다. 로봇이 사람 대신 재난현장에 들어가는 기술과 AI가 재난 가능성을 먼저 계산하는 기술이 하나의 안전망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참가 업체들은 단순히 얼마나 빠르고 강한지보다 어느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지, 어떤 데이터를 확보하는지, 기존 관제체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했다. 이는 그동안 내구성이나 멀티기능에 집중하던 안전기술이 한 분야에 특화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구매자들 역시 새로운 기능을 구경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사고 상황에서 작동하는지, 기존 인력과 장비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박람회가 기업 전시와 함께 구매·수출 상담에 공을 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행안부는 해외 구매자 100여개사와 국내 구매자 83개사를 초청해 참가 기업과 일대일 상담을 진행했다.
지난해 행사에서는 사흘 동안 798건의 상담이 이뤄져 3514억원 규모의 계약이 추진됐다. 안전기술이 연구개발 성과에 머물지 않고 공공기관과 산업현장이 구매하는 제품으로 이어져야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기후변화로 집중호우와 폭염, 가뭄 등 재난의 양상이 날로 복잡화되는 지금, 안전은 국가가 지켜야 할 기본적 가치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할 산업”이라며 “이번 박람회를 통해 첨단 기술을 보유한 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고, 기업의 성장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선순환을 만들어 안전산업을 국가의 핵심 미래산업으로 육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안전복에 인공지능칩을 탑재해 작업 중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일 한전 부스에서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돌발변수 넘기엔 시기상조…이족보행 로봇의 현실적 한계
4족 보행로봇과 무한궤도형 소방로봇이 전시장을 누볐지만 기대했던 두 발로 걷는 로봇은 보이지 않았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아틀라스를 비롯해 휴머노이드 경쟁이 본격화한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눈에 띄는 공백이다. 특히 초기 아틀라스의 개발 의도가 ‘재난현장’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기대감은 더 컸었다.
실제로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은 지난 2013년 7월 재난 대응 로봇 아틀라스를 처음 공개했다. 당시 아틀라스는 전원과 컴퓨터에 케이블로 연결돼 사람의 명령을 받아 움직였다.
2015년에는 배터리와 무선통신을 탑재했다. 로봇이 넘어지면 사람의 도움 없이 다시 일어나야 했고 문을 열거나 밸브를 잠그고 계단을 오르는 재난 대응 과제가 주어졌다. 이족보행 로봇의 기술 경쟁은 애초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사고현장을 대신하기 위해 시작된 셈이다.
아틀라스의 개발 방향은 이후 재난 대응에서 산업현장으로 옮겨갔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4년 유압식 모델을 퇴역시키고 전동식 아틀라스를 공개했다. 2026년 선보인 제품형은 56개 자유도로 움직이며 한 번 충전하면 4시간 동안 작동한다. 작업 도중 배터리가 떨어지면 스스로 교체할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로봇 연간 3만대 생산체계를 갖추고 같은 해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에서 아틀라스에 부품 배열을 맡길 계획이다. 2030년에는 부품 조립까지 확대한다.
이밖에 미국 피겨AI의 피겨 02,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디짓, 중국 유비테크의 워커 S 계열 등 이족보행 로봇 개발사들도 산업용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은 산업현장이 재난현장보다 돌발변수가 적기 때문이다. 공장은 로봇이 일할 위치와 이동경로, 작업순서를 미리 정할 수 있다. 로봇이 작업에 실패해도 공정을 멈추고 프로그램이나 동작을 고칠 수 있다.
반면 재난현장에서는 무너진 구조물과 열기, 연기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으면서 문과 밸브, 장비까지 다뤄야 한다. 걷기와 물체 운반 능력이 각각 입증됐더라도 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현장에서 한꺼번에 수행하는 단계까지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한 행사 참여 업체는 “이족보행 방식이 안전산업에서 지닌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며 “계단과 출입문, 작업도구 등 사람이 사용하도록 만든 시설을 기존 형태 그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체는 “(이족로봇)한 대가 현장 수색과 장비 운반, 밸브 차단 같은 여러 임무를 맡을 수 있다는 점도 4족이나 무한궤도형 로봇과 구별된다”며 “아틀라스가 재난 대응 로봇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