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왜 ‘왕돌초’에 세웠을까?…동해 첫 ‘해양과학기지’를 가다
입력 2026.08.31 12:02
수정 2026.08.31 12:02
KIOST, 바다 위 30m 과학기지 건설
37종 장비로 바다 변화 실시간 관측
AI로 플랑크톤·어종 변화까지 추적
기후·해양생태계 변화 읽는 전초기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경북 울진군 먼바다 '왕돌초'에 건설한 해양과학기지 모습. ⓒ공동취재단
아침 7시 경북 울진군 후포항에 모였다. 비몽사몽. 대충 먹은 아침이 소화도 되기 전이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약부터 챙겨 먹였다. 멀미약이다. 인원을 점검하고 간단하게 주의 사항을 설명했다. “배 위에서 구명조끼는 벗으면 안 된다”, “갑판이 미끄러우니 꼭 난간을 잡고 이동하라”, “파도가 높으니 선수에 서지 마라” 등이다.
경찰 입회 아래 KIOST 직원들 포함 50명 가까운 인원이 낚싯배 3척에 나눠 몸을 실었다. 그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사실 더 큰 배를 기대했다. 먹구름이 가득했고, 파도도 평소보다 높아 멀미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걱정을 뒤로하고 7시 40분쯤 낚싯배 3척은 후포항을 떠났다. 우리가 탄 2호선 이름은 ‘이프로 1호’였다. 중량 9.77t에 승선 정원 22명 규모다.
배는 방파제를 벗어나자 속도를 높였다. 내부 휴게공간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들어가자마자 멀미가 났다. 차라리 밖이 나았다.
난간을 잡고 앉고 서기를 반복하며 멀어지는 후포항을 바라봤다. 출항 20분 만에 배 안으로 들이치는 물보라에 온몸이 흠뻑 젖었다. 파도를 타고 넘을 때마다 비명이 나왔다. 출항 30분쯤 지나자 멀미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왔다. 10분을 더 달리자 멀리 희끗한 모습의 목적지가 보였다.
목적지 확인 후에도 대략 30분을 더 달렸다. 그런 뒤에야 왕돌초 해양과학기지가 또렷해졌다.
기지에 도착하자 먼저 1호선이 접안했다. 왕돌초 접안 경험이 많은 1호선은 비교적 쉽게 사람들을 하선시켰다.
다음이 우리 배 차례였다. 첫 시도는 실패했다. 1호선과 뱃머리 높이가 달라 너울이 심한 상태에서 접안이 어려웠다.
배가 달릴 때는 괜찮았는데, 접안을 위해 멈추니 너울이 그대로 느껴졌다. 급격하게 멀미가 몰려왔다. 토하기 직전이었다. 실제 토한 사람, 넘어진 사람도 나왔다.
그사이 선장은 계속 접안을 시도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1호선으로 옮겨타는 방법을 시도했다. 이 역시 심한 너울로 실패했다. 그사이 3호선 승선자들은 모두 기지에 무사히 내렸다.
멀리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모습이 보인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2호선은 이후 열 번 가까이 접안을 시도했다. 어찌저찌 뱃머리가 접안시설에 붙었다. 선장이 다급히 외쳤다.
“빨리 내려요. 지금이요. 어서~.”
배 후미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허겁지겁 달렸다. 잡아주고 밀어주며 한 명씩 내리는 순간에도 너울은 멈추지 않았다.
배는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 결국 기자 4명과 KIOST 직원 1명은 못 내렸다. 선장은 재접안을 포기했다. 2호선은 그대로 후포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우리는 끝내 기지에 발을 디디지 못한 5명의 일행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사다리를 올랐다.
기후변화 전초병 ‘동해의 눈’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후포항에서 약 25㎞ 떨어진 ‘왕돌초 해양과학기지’는 뱃길로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육지와 연결된 도로도, 주변에 다른 건물도 없다. 발아래에는 수심 23m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 아래로는 왕돌초의 거대한 수중 암반 지대가 이어진다.
기지는 올해 1월 12일 준공했다. 동해 첫 해양과학기지다. 총면적 570㎡ 규모, 중량 928t의 철골 구조물이다. 수심 약 23m에 세웠다. 기지 높이는 57m다. 파고 19.24m, 풍속은 초속 60m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어도, 가거초, 소청초에 이은 4번째 기지다.
왕돌초 기지는 5개 층이다. 선박 접안시설부터 수중 관측장비가 설치된 ‘중간 갑판’, 발전기·담수화시설 등 핵심 설비가 모인 ‘설비 갑판’, 제어실, 숙소, 회의실을 갖춘 ‘주갑판’, 기상장비, 위성 안테나, 무인 드론 운용 설비가 있는 ‘상부 갑판’으로 나뉜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기지 아래쪽에 설치된 관측장비였다. 정진용 KIOST 해양데이터·인프라본부장은 해당 장비가 “수중으로 내려가 수온과 염분 등을 측정한다”고 설명했다. 장비는 약 20m 깊이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서 바닷속 수온과 염분값을 측정한다.
계단을 한층 더 오르자 작은 연구시설 모습이 드러났다. 디젤 발전기실과 담수화 설비실, 실험실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소 전력은 태양광 발전을 활용하고 부족할 경우 디젤 발전기를 가동한다. 태양광 발전 전력은 배터리에 저장해 사용한다. 현장에서는 리튬이온 배터리 대신 화재 위험 등을 고려해 납축전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정진용 KIOST 해양데이터·인프라본부장이 왕돌초 해양과학기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실험실이었다. 왕돌초 바닷물이 배관을 통해 실험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해수는 1차 챔버와 2차 챔버를 차례로 거친다. 1차 챔버는 수온과 염분, 형광, 생지화학적 변수 등을 측정하고 2차 챔버는 200㎛ 메시를 이용해 이물질이나 큰 입자를 걸러낸다.
이후 해수 샘플러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채취해 생물·화학 연구자들의 분석에 활용한다. 분석을 마친 물은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이곳에서는 눈으로 보기 어려운 바닷속 생명체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본다. 플랑크톤 스코프를 이용해 순환되는 해수 속 플랑크톤을 촬영하고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어떤 종인지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에는 채취한 물을 실험실로 가져와 현미경으로 확인해야 했다. 왕돌초에서는 물이 흐르는 현장에서 생물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정보를 쌓는 방식이다.
정 본부장은 “실시간으로 순환되는 물 안에 있는 플랑크톤을 촬영하고 AI 알고리즘을 통해 어떤 종인지 분석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축적한 정보, 어민 조업에도 제공
기지 중심 시설인 관측제어실에 들어서자, 왕돌초에서 벌어지는 일이 화면에 집약돼 있었다. 파고와 바람 등 현재 기지에서 생산되는 관측 자료와 장비운영 상태가 한눈에 보였다.
수중에는 카메라 2대가 설치돼 있었다. 촬영된 영상은 물고기의 종류와 새로운 어종의 유입 여부를 확인하는 데 활용한다고 했다. 아직은 어종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지만, 자료가 쌓이면 기존 서식 어종과 새롭게 들어오는 어종을 구분하는 게 목표다.
이곳에서는 동해의 실제 변화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정 본부장은 최근 어민들이 예전에는 잘 보지 못했던 물고기를 발견해 연구진에게 가져오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해역에서 흔하게 보이지 않던 붉은색 계열 물고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쿼터(총허용 어획량)가 모자랄 정도로 갑자기 늘어난 참치는 과거보다 몸집도 커지고 있다는 게 정 본부장 설명이다. 다만 아직 이런 변화를 유의미하다고 판단할 단계는 아니라고 했다.
바닷속 염분과 온도 등을 확인하는 관측장비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기지를 ‘왕돌초’에 세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동해에서 기지를 세울 수 있는 적당한 깊이의 암반층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연구진들이 수년간 찾아 헤맨 끝에 만난 게 왕돌초다.
지형적 이점뿐만 아니라 왕돌초는 지리적으로도 해역 자체가 동해의 변화를 읽기에 적합한 곳이다. 왕돌초는 북한한류와 동한난류가 교차한다. 덕분에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동해 최대 규모 천연 수중 암반 지대다.
왕돌초는 동서 약 21㎞, 남북 약 54㎞에 이르는 거대한 해저 암반으로 120종이 넘는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한류와 난류의 경계에 자리 잡은 만큼 동해 해양생태계 변화를 장기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관측 거점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은 보통 일주일 단위로 기지에 머물며 관측장비를 유지·보수하고 연구 활동을 한다. 기상이 갑자기 나빠지면 고립되는 일도 잦다.
최근에는 기지 주변에서 상어가 종종 목격된다. 물속에 들어간 잠수부 주변을 상어가 돌아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달라진 동해 환경을 ‘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다.
KIOST가 왕돌초 기지에서 얻으려는 것은 결국 ‘정보’다. 한순간 관측값이 아닌 같은 장소에서 오랜 기간 축적되는 정보로 동해의 변화를 설명 그려내기 위해서다. 무인 드론을 비롯해 왕돌초 기지에 설치한 37종 86점의 장비도 그런 목적이다.
정 본부장은 기지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알게 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왕돌초에서 만들어지는 수온과 해수면, 바람, 생태계 등의 자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오늘 바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를 읽기 위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축적된 관측 자료는 해양생태계 위험 탐지, 어장 변동 예측, 기후변화 대응 연구 등에 쓰이는 것은 물론 후포·죽변 등 지역 어민들에게 실질적인 조업 정보로도 제공될 예정이다.
이처럼 육지에서 25㎞ 떨어진 바다 위, 파도와 바람을 견디며 쌓아 올린 정보는 앞으로 동해 기후와 생태계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희승 KIOST 원장은 “왕돌초 기지 준공으로 동해를 포함한 우리 바다 전역을 빈틈없이 관측하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며 “기지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데이터가 기후위기 대응과 국민 안전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측제어시스템 모습. ⓒ공동취재단
해수담수화 설비.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