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성분으로" 국산 비만약, '제형'으로 승부수[진격의 K-비만약⑤]
입력 2026.08.31 05:00
수정 2026.08.31 05:00
대웅·유한·삼성에피스 '위고비 성분' 개량 신약에 눈독
제형 특허 리스크 피하려면 '장기지속형 제형' 개발 필수
올해부터 비만약이 항암제를 밀어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의 자리를 차지했다. 높은 범용성과 안전성을 바탕으로 시장성이 입증되면서 전세계 제약 바이오 업계가 미래 먹거리로 비만약을 낙점하고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넓은 시장 만큼이나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비만약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텍 간 오픈 이노베이션이 '국산 비만약'까지 지평을 넓히고 있다. 올해부터 위고비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의 국가별 특허가 순차적으로 만료되면서다. 이미 검증된 성분에 약효 지속 기간을 늘리는 '제형 플랫폼' 기술을 더해 개량 신약을 내놓으려는 움직임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배경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전통 제약사들이 ‘장기지속형’ 주사제 비만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마이크로스피어(미립구) 약물전달시스템(DDS) 기술을 갖춘 바이오텍들과 협업하고 있다. 글로벌 비만약 시장의 흐름이 ‘투약 편의성’으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국내 바이오텍들은 약물 성분을 미세한 생분해성 알갱이(미립구)에 가둬 처음 설계한 시간 동안 천천히 방출되도록 하는 DDS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관건은 약물이 미립구 바깥으로 나오지 않도록 잘 가둬 주사를 맞은 직후 약효가 지나치게 돌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건 유한양행이다. 유한양행은 2024년 국내 바이오텍 인벤티지랩과 협업해 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를 미립구 플랫폼에 가둬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만드는 연구개발(R&D)을 공식화 했다. 유한양행도 연내 식약처에 임상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 곳은 대웅제약이다. 대웅제약은 자체 개발한 ‘큐어’에 티온랩테라퓨틱스의 ‘큐젝트스피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월 1회 투약 비만약을 개발하고 있다. 대웅제약 컨소시엄은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위고비 성분 세마글루타이드 기반 장기지속형 주사 플랫폼에 대한 임상 1상 시험계획 승인신청(IND)을 제출한 상황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연초 지투지바이오와 공동 연구계약을 체결했다. 지투지바이오의 플랫폼 기술 이노파마의 경쟁력은 미립구 안에 일반적인 기준보다 더 많은 약물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약의 경우 4주 동안 유지되기 위해서는 많은 성분이 필요하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지주사인 삼성에피스홀딩스까지 2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로 지원에 나섰다.
이처럼 제약사가 바이오텍과 협업에 나서는 배경에는 속도 등 비용 절감이 있다. 통상 새로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데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체 성분을 만들어 시장에 진입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크다. 게다가 규제 기관에서는 기존 치료제와 성분이 동일해도 다른 제형 등으로 환자 편의만 담보된다면 이를 ‘개량 신약’으로 인정해 준다.
올해부터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대표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의 물질 특허도 만료되고 있다. 연말까지 특허 만료가 예정된 국가는 인도, 중국 등 10개국에 달한다. 국내 특허 만료는 오는 2028년으로 예상된다. 노보 노디스크가 제형 특허로 겹겹이 추가 장벽을 쌓아둔 만큼 차별화된 제형을 통한 시장 진입이 불가피하기도 하다.
바이오텍 입장에서 갖는 이점도 뚜렷하다. 규모가 작은 바이오텍의 경우 통상 규제 기관과 소통한 이력이 전무하다. 전임상, 임상 등 기술 사업화에 있어 인프라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빈칸을 메워주는 것이 전통 제약사다. 이미 경험이 풍부한 제약사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플랫폼 기술력을 입증해 효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센터장은 "장기지속형을 비롯한 국내 바이오텍의 제형 기술 역시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명확하게 개선하고 경쟁력을 입증한다면, 언젠가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수출(L/O)이나 공동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관건은 미립구 플랫폼 기술이 개념입증(PoC) 등을 통해 실제 차별성과 사업성을 얼마나 입증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