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위기, 전기차 캐즘 넘어 '미국 ESS'에서 새 활로 찾아야
전기차 캐즘은 표면적 현상…미국·유럽서 주력 시장·제품 동반 부진
글로벌 에너지 전환·AI 데이터센터 확산…ESS 신성장동력 '부상'
소재 경쟁력 강화·국내생산세액공제 등 범정부 지원 절실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전망.ⓒ산업연구원
국내 배터리 업계가 직면한 극심한 실적 부진의 본질은 단순한 전기차 일시적 수요 둔화(캐즘)를 넘어 그동안 성장을 견인해 온 주력 시장과 주력 제품의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국책연구원의 진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탈탄소화와 인공지능(AI) 전환(AX)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특히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재편 정책과 맞물린 미국 ESS 시장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아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제언이다.
27일 산업연구원(KIET)이 발표한 'K-배터리, 위기인가 전환기인가: ESS를 중심으로 본 새로운 성장축의 모색' 보고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포스코퓨처엠(배터리 소재 부문)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관련 기업들은 2025년 매출 감소에 이어 2026년 1분기에도 각각 영업 손실을 기록하는 등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2025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전년 대비 30% 증가한 1.2TWh를 기록했음에도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입은 핵심 원인은 주력 시장인 미국의 전기차 판매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5년 9월 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 발효로 전기차 구매세액공제가 폐지되면서, 2025년 4분기와 2026년 1분기 미국 전기차(BEV) 시장 판매 증가율이 각각 -31%, -23%로 곤두박질쳤다.
유럽 시장 역시 전기차 보조금 재도입 등으로 2025년 시장이 30% 성장했지만 그 수요 확대의 과실은 한국이 아닌 중국 배터리 기업이 독식했다.
유럽 내 한·중 배터리 합산 점유율은 2023년 한국 55%, 중국 42%였지만 수요 회복기인 2025년에는 한국 35%, 중국 61%로 2년 만에 무려 20%포인트(p)나 급감했다.
중저가형 전기차 선호 확산 속에서 가격경쟁력이 우수한 중국산 LFP 배터리가 시장을 장악하고 성능은 우수하나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한국의 주력 제품 삼원계(NCM) 배터리는 밀려난 결과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배터리산업의 구조적 전환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ESS다. 탈탄소화와 AX라는 거대한 산업 패러다임 속에서 ESS는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ESS 시장은 2023년 185GWh에서 연평균 19% 성장해 2035년 1449GWh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발전량 간헐성을 보완할 전력망(Grid)용 ESS 수요가 커지고 있으며 생성형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 급증으로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배터리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UPS용 배터리 시장은 2023년부터 2035년까지 연평균 40%의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재편, K-배터리에 새로운 기회글로벌 ESS 시장의 LFP 배터리 분야는 중국이 압도적인 원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미국 시장은 한국 기업에 차별화된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연방 조달 규제 등을 결합해 중국산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중국산 ESS에 부과된 미국의 합산 관세율은 40.9%인 반면 한국산은 12.5%에 불과해 양국 간 관세율 격차가 28.4%p에 달한다.
또한 OBBBA 제정으로 도입된 AMPC의 금지외국기관(PFE) 규제에 따라, 직접 재료비 중 PFE(중국 등 우려국가 기관)의 실질적 지원 비율이 법정 기준(2026년 60%, 2030년 85%) 이하인 경우에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대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중국 기업들은 사실상 수혜가 어렵다. 이미 미국 내 대규모 생산 거점을 확보한 한국 기업에게 상대적 원가경쟁력 우위를 다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아울러 국토안보부 등의 중국산 배터리 조달을 제한하는 H.R.1166 등 공공 조달 규제 강화 움직임도 한국 기업의 시장 접근 여건을 개선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보고서는 미국 ESS 시장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의 전략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배터리 소재산업에 대한 국내생산세액공제를 신설하되 적자 상태인 기업도 실질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직접 환급이나 제3자 양도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확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주요국의 통상·산업 정책 변화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및 민관 공동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LFP와 차세대 ESS 배터리 기술뿐만 아니라 PCS, BMS, EMS 등 시스템 통합(SI) 기술력 강화를 위한 R&D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