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쿠팡 ‘불시조사’ 충돌…기업 방어권 논쟁으로 번지나
입력 2026.08.26 18:20
수정 2026.08.26 18:22
공정위 “대유법 조사는 사전통지 대상 아냐”…쿠팡은 행정소송 제기
쟁점은 ‘7일 전 통지’ 적용 여부…증거인멸 예외 범위도 법정 판단
학계 “불시조사 일상화 경계해야”…행정조사권·기업 방어권 충돌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기사들이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쿠팡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전 통지 없는 현장조사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조사 절차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공정위가 “대규모유통업법(이하 대유법) 위반 현장조사는 사전통지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쿠팡은 현행법상 7일 전 사전통지가 필요하다며 맞서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행정기관의 조사권과 피조사업체의 방어권 사이에서 불시조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위 “사전통지 대상 아냐”…쿠팡 “7일 전 통지해야”
26일 공정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쿠팡의 ‘가격 맞춤형 쿠폰’ 비용이 납품업체에 부당하게 전가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쿠팡은 현장조사 7일 전 서면통지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조사에 반발했다.
쿠팡은 공정위의 직권조사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도 제기했다.
행정조사기본법은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조사 개시 7일 전까지 조사 목적과 기간, 내용 등을 조사 대상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사전통지로 증거인멸 등이 우려돼 조사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에는 예외를 인정한다.
쿠팡 측은 “행정기관이 현장조사 7일 전 사전 통지를 해야 하는 법상 의무는 조사 대상자의 권익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적법한 절차”라는 입장이다.
반면 공정위는 대유법 위반 조사에는 행정조사기본법상 7일 전 사전통지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공정위는 26일 “대유법 위반 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라 조사 7일 전에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는 조사가 아니다”고 밝혔다.
대유법이 조사와 관련해 공정거래법의 관련 규정을 준용하고 있고, 공정거래법 위반 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 적용 제외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행정조사기본법이 적용된다고 보더라도 이번 조사의 경우 사전통지로 증거인멸 등이 우려되는 경우에 적용되는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대유법 위반 현장조사에 행정조사기본법상 사전통지 의무가 적용되는지, 적용된다면 이번 조사가 사전통지를 생략할 수 있는 예외 사유에 해당하는지가 향후 법정에서 다뤄질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불시조사는 어디까지…기업 ‘방어권’ 논쟁으로
이번 사안은 쿠팡과 공정위 간 갈등을 넘어 행정기관의 조사권과 기업의 방어권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현장조사에 앞서 조사 대상자에게 조사 목적 등을 알리는 사전통지 제도는 행정조사 과정에서 조사 대상자의 예측 가능성과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반면 현장에서 자료를 확보해야 하는 조사에서는 조사 사실이 사전에 알려질 경우 증거인멸이나 자료 훼손 등으로 조사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행정조사기본법이 사전통지를 원칙으로 규정하면서도 일정한 경우 예외를 인정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 같은 예외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행정기관의 조사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불시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질 경우 조사 대상자의 방어권이 지나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올해 2월 한국규제법학회 신진학자 공동 학술대회에서도 피조사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사전 서면통지 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올해 초에는 다른 행정조사 영역에서 사전통지 절차를 둘러싼 판단도 나왔다.
지난 2월 조세심판원은 한 법인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해 과세당국이 사전통지를 생략할 만한 사유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관련 과세 처분을 취소했다.
국세기본법은 세무조사에 앞서 조사 대상 세목과 조사기간, 사유 등을 미리 통지하도록 하면서도 증거인멸 등으로 조사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이를 생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세심판원은 당시 과세당국이 사전통지 제외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세무조사에 적용되는 국세기본법과 공정위의 대유법 위반 조사에 적용되는 법률 체계가 다른 만큼 해당 결정을 이번 쿠팡 사건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행정기관이 법률상 사전통지 예외를 적용할 경우 그 필요성과 요건을 어디까지 입증해야 하는지는 이번 논란에서도 쟁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쿠팡 측도 올해 1월부터 진행된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 요구 등에 응해온 만큼 이번 현장조사에서 사전통지를 생략할 필요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행정기관의 조사권과 조사 대상자의 절차적 권리 사이의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증거인멸이라는 예외 조항을 관행적으로 넓게 적용해 불시조사를 일상화한다면 법이 명시한 원칙과 예외의 관계가 역전될 수 있다”며 “예외 사유는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