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수사권 폐지, 저지르고 보니 안 되겠나…대통령의 뒷북 경찰개혁 [박영국의 디스]
보완수사권 폐지로 수사권 독점하는 경찰, 부실수사·사건 덮기 논란 잇따라
검찰 향한 복수심에 보완수사권 폐지 밀어붙인 여당, 방관한 대통령 '나 몰라라'
지지율 떨어지자 뒤늦게 "경찰개혁" 외친 대통령의 '유체이탈'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7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어떤 정책이든 만들고 실행하기 전 부작용에 대한 검토와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 마련은 필수적입니다. 검토 과정에서 부작용이 너무 심해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보완이 불가능하다 싶으면 접는 게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무시한 채 일단 저질러 놓고 문제가 생기면 뒤늦게 수습에 나서는 뒷북 사례도 있습니다. 그 사이 국민은 고스란히 부작용에 따른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총리실에 ‘경찰개혁기구’ 설립을 지시한 게 대표적입니다.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뒷북이나마 치도록 한 트리거는 제주도 고(故) 장미란씨 사건입니다. 국민이 실종돼 실종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뭉개고 덮어버린 초유의 사태입니다. 실종되고 신고가 이뤄진 게 5월인데, 경찰관이 장씨와 연락이 닿았다고 거짓말 한 뒤 사건을 종결하며 결국 그는 104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이 경찰관이 실종 사건을 허위 종결한 60대 남성도 가족의 재신고 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번 주에만 제주에서 실종자 4명이 잇따라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제멋대로 사건을 허위 종결한 자는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경장인 부(夫)모 씨였습니다. 경장은 경찰 계급 중 밑에서 두 번째입니다. 사실상 말단입니다.
말단 계급의 경찰관이 임의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귀찮아서였든,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든 그런 일을 벌인 개인의 일탈도 문제지만, 그걸 가능케 한 시스템은 더욱 심각합니다.
장미란(37)씨 등 실종자 허위 종결 사건으로 직무유기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제주 서부경찰서 소속 A경장이 25일 오후 제주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후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경찰 가족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경찰 수사팀이 은폐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난 5월 광주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입니다. 사건의 주범 장윤기의 부친과 사건을 수사하던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은 장씨가 형량이 무거운 강간 살인죄 대신 상대적으로 가벼운 일반 살인죄를 적용받도록 관련 증거를 은폐한 혐의를 받습니다. 실제 수사팀은 장윤기에게 일반 살인죄를 적용해 송치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향찰(지역 토호 세력과 유착한 경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경찰이 한 지역에서 오래 근무하며 혈연과 지연을 매개로 봐주기 수사를 하는 일이 장윤기 사건 외에도 수없이 많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그 외에도 경찰의 직무 유기와 부패와 일탈과 무능을 보여주는 여러 사건들이 공개되며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동시에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이런 경찰이 수사권을 독점하게 되는데 큰일 아닌가’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은 오는 10월 2일부터 사라집니다. 최근 불거진 경찰의 부실수사, 사건 덮기 논란은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드러난 경우도 있지만 장미란 사건과 같이 보완수사와 무관하게 밝혀진 사례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보완수사권이 유지된다 한들 이런 일이 안 벌어지겠느냐”는 주장도 나옵니다.
하지만 검찰의 보완수사가 완벽하지 않은들 그마저도 없다면 경찰이 임의로 사건을 덮더라도 대책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보완수사권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경찰이 있어도 범죄를 전부 막진 못하니 경찰이 필요 없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사태가 보완수사권 폐지 문제로 번지자 정부와 여당은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보완수사권 폐지를 밀어붙인 여당은 경찰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을 돌이킬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당장은 눈앞에 선거가 없으니 여당 의원들은 급할 게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여권에서는 ‘하필 이런 때 경찰이 사고를 쳐서 보완수사권 폐지가 검찰에 대한 복수심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졸속 입법인 게 들통나게 됐다’는 짜증 섞인 기류도 읽힙니다.
7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7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곤란해진 건 정부를 이끄는 이재명 대통령입니다. 가뜩이나 주식 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부동산 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으면서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데 경찰의 일탈이 악재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지난 22~24일 무선 100% ARS 방식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38.9%로 40%선이 깨졌습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통령이 경찰의 기강 해이와 치안 현장의 무책임 문제를 비판하며 ‘경찰개혁기구’ 설립을 지시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대통령은 표면적으로나마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면 될 것 같다’며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5일에는 법무부·행안부·법제처·경찰청 업무보고에서 “개정된 형소법을 안 읽어봤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분이 법무부와 경찰청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이들 부처의 최대 현안인 형소법 개정안도 들여다보지 않을 정도로 무성의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보완수사권 폐지를 전후해 벌어지는 일련의 논란, 이미 벌어진 장미란씨 사건과 앞으로 벌어질 유사한 부작용들을 예견하고 미리 발을 빼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하면 보완수사권 폐지의 부작용으로 국민이 분노하더라도 비난의 화살이 ‘형소법 개정안도 안 읽어 본’ 대통령이 아닌 ‘형소법 개정을 밀어붙인’ 여당을 향할 것이라는 판단이었을까요.
하지만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입니다. 국민에게 해가 되는 일인 줄 알았으면 적극적으로 막아서던가, 최소한 보완책이라도 미리 만들어놨어야 합니다. 개정안이 통과되고, 부작용을 예고하는 사태가 터지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뒤늦게 경찰의 기강이 이토록 해이하고 치안에서의 무책임이 이토록 심각할 줄 몰랐다는 듯 경찰 개혁을 외친다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일이 터질 때마다 ‘개선하겠다’, ‘보완하겠다’ 부랴부랴 둘러대지만 누구도 ‘책임’을 언급하는 이는 없습니다. 앞으로 또 그런 일이 벌어질 게 뻔하고, 10월 2일 이후에는 더 심할 걸 모두가 아는데, 누가 책임을 지겠다 하겠습니까.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지고, 책임질 수 없는 일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건 어릴 때부터 배우는 기본 윤리입니다. 대통령, 국회의원쯤 되는 분들이면 최소한 그 정도 기본은 지키고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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