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가 갑질하는 세상 [박영국의 디스]
교사를 향한 학생의 갑질
회사를 향한 근로자의 갑질
시민을 향한 장애인의 갑질
보호장치가 갑질 도구로 악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소속 회원들이 18일 서울역 4호선 사당, 오이도행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들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갑질. 위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자가 열위에 있는 자에게 행하는 부당한 행위를 뜻합니다. 서류상의 갑을(甲乙)관계에서 주도권을 쥔 ‘갑’이 ‘을’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것에서 비롯됐지만, 요즘은 직장뿐 아니라, 학교, 사회 등 인간관계 전반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루 일컫습니다.
21세기로 넘어오기 전만 해도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손찌검은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일정한 격식을 갖춘 체벌 외에 감정이 섞인 폭력도 간혹 있었습니다. 유교적 사회 분위기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격언은 그런 폭력을 무조건적으로 감내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직장에선 근로자가 사측으로부터 갑질을 당했고, 말단 직원은 직장 상사의 갑질을 견뎌야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무시했고, 몸이 불편한 이는 그렇지 않은 이들로부터 무시를 당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사회적 약자가 갑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수많은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학생을, 근로자를, 부하직원을, 장애인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쯤에서 마무리됐다면 좋았겠지만, 세상살이가 반드시 해피엔딩만을 향하진 않습니다. 오랜 기간 갑에게 쌓였던 분노는 을을 ‘절대 불가침’의 위치로 만들어야겠다는 집착으로 이어졌고, 이는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어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갑질을 합니다. 학부모는 학생의 편을 들어 더 큰 갑질을 합니다.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며 촘촘하게 짜놓은 법·제도로 인해 교사는 학생의 일탈을 막을 방법이 없고 폭언과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합니다.
기업들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인 노동조합의 갑질에 몸살을 앓습니다. 파업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지 않으려면 노조의 무리한 요구도 들어줘야 하고, 노란봉투법이 생겨난 이후론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응할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심지어 고용관계가 불명확한 근로자와도 교섭을 해야 합니다.
사상 최대 호황을 맞은 반도체 기업들은 영업이익의 일부를 떼서 수억원의 성과급을 달라는 노조의 불법적인 요구에 굴복해야 했고, 그런 전례가 만들어지며 실적이 그리 좋지 않은 기업들도 영업이익에 비례한 성과급 지급 요구에 시달립니다.
시민들은 출근길에 수시로 장애인 단체의 갑질에 시달려야 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서민의 발’인 지하철과 버스 운행을 막고 시위를 하는 통에 무더위에 다른 교통수단을 찾느라 진땀을 흘립니다. 대체 뭘 원하는지 알 수도 없는 전장연 시위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지각에 따른 업무 차질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걸 ‘절박한 외침’이라고 하겠지만 출근길에 고통받는 시민들은 ‘갑질’로 받아들입니다.
지난 24일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부활 등을 골자로 하는 조례 제정을 약속한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과의 합의로 지하철 탑승 시위는 멈췄지만, 버스 탑승 시위는 앞으로도 계속하겠다고 합니다.
이번에 전장연이 ‘쟁취해 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캠페인 활동’을 명분 삼아 집회·시위에 참여한 장애인들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데 악용된다는 논란으로 폐지됐었습니다. 결국 전장연은 시민 세금으로 ‘시위 일당’을 받기 위해 시민을 괴롭히는 시위를 벌여온 셈입니다.
박위 '위라클' 유튜브 영상 캡처.
최근에는 한 장애인 유튜버가 KTX에서 내리는 자신을 돕다 실수를 일으킨 사회복무요원을 비난하는 영상을 올려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하차용 경사로를 내려오던 그를 돕던 사회복무요원의 발에 휠체어 바퀴가 걸리면서 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양상이 좀 달랐습니다. 비난의 화살은 실수한 사회복무요원이 아닌 장애인 유튜버를 향했습니다.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현장에서 사과까지 했는데 그 장면이 담긴 CCTV 영상까지 공개하며 공론화시키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난이었습니다.
결국 장애인 유튜버는 해당 영상을 내리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각계의 비난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100만을 넘었던 그의 유튜브 구독자수는 일부나마 줄어 90만대로 떨어졌고, 그를 초청해 진행하려던 강연도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약자의 갑질’에 대한 반발 심리일까요, 전장연 출근길 시위에 시달리다 분노가 쌓여 ‘장애는 죄가 아니지만 벼슬도 아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물리학뿐 아니라 인간사에도 적용됩니다. 약자를 향한 갑질이 그걸 막기 위한 과도한 보호장치를 생겨나게 했듯, 과도한 보호장치를 악용한 약자의 갑질은 또 다른 반작용을 만듭니다. 학생도, 노조도, 장애인도, 반작용의 역풍을 맞지 않으려면 ‘보호장치는 보호의 용도로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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