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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현금 마련에 강제집행 우려까지…최태원, 재상고 택한 배경은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입력 2026.08.16 14:21
수정 2026.08.16 15:03

주식 섞고 하락분 보전하는 지급안 제시했지만 협상 불발

하이닉스 성장·SK실트론 지분에 노소영 기여했는지도 쟁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2차 변론에 출석하기 위해 각각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상고 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 1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은 서울고법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파기환송심 판결을 다시 대법원에서 다투기로 한 것이다.


최 회장 측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고심 끝에 상고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 '여러 사정' 가운데 핵심 요인으로는 1조원에 육박하는 단기 현금 조달 부담이 꼽힌다. 지급 방식을 둘러싼 양측 협의가 결렬된 상태에서 판결이 확정될 경우, 지주사 지분 강제집행(압류)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적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16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은 파기환송심 선고 직후 재상고 없이 판결을 수용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했다. 그러나 선고 후 판결 확정까지 주어진 약 3주의 시간 안에 9440억원이라는 막대한 현금을 마련할 방법을 확정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게 법조계의 전언이다.


◇ SK㈜ 지분 팔자니 주가 폭락·경영권 위협


가장 직접적인 자금 조달 수단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방안이었다. 문제는 SK㈜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라는 점이다. 최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대규모로 시장에 내놓을 경우 지주사 주가가 급락해 일반 주주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돌아가는 것은 물론, 그룹 전체의 경영권 안정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최 회장 측 법률대리인단이 재상고 직후 "주주들과 그룹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자세로 향후 절차에 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시장 충격을 의식한 행보다.


이에 최 회장 측은 SK㈜ 지분의 대량 매각을 피하고자 노 관장 측에 현금과 주식을 섞어 재산분할금을 분할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특히 "주식으로 지급한 몫의 주가가 하락하면 최 회장 측이 떨어진 차액을 전액 보전하고, 주가가 오르면 그에 따른 상승분은 모두 노 관장의 몫으로 귀속한다"는 파격적인 안전장치 조건도 제시했다.


노 관장이 수령할 실질 재산 가치를 보장하면서도 주식시장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노 관장 측이 '9440억원 전액 현금 일시 지급'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양측의 절충안 마련은 최종 무산됐다.


◇ 판결 확정 시 '강제집행'(주식 압류) 현실적 리스크


판결 확정 후 발생할 수 있는 강제집행 가능성도 최 회장 측의 재상고 결정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가사소송의 재산분할 판결은 확정 전 가집행이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최 회장이 재상고를 제기한 현재 상태에서는 판결이 확정되지 않아 노 관장 측의 강제집행도 불가능하다.


반면 재상고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될 경우, 지급 방식이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 관장 측이 최 회장의 SK㈜ 보유 주식이나 주요 자산에 대해 즉각적인 압류 및 강제집행 절차에 돌입할 수 있었다. 최 회장 측으로서는 주식 담보 대출이나 금융권 차입 등 자금 조달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핵심 지분이 압류되는 최악의 경영 리스크를 방어해야 했던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판결을 받아들이려 해도 1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마련할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이 필요했다"며 "지급 방식에 관한 협의가 무산되고 강제집행 위험까지 직면한 상황에서 최 회장 측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재상고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 쟁점은 반도체 기여도와 SK실트론 지분


최 회장 측은 자금 마련 문제와 별개로,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대법원의 환송 취지를 재산분할 비율과 기여도 산정에 충실히 반영했는지에 대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다시 받아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SK그룹은 지난 2012년 메모리 반도체 업황 부진과 누적 적자로 그룹 안팎의 회의론이 컸음에도 최 회장의 결단으로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이후 SK하이닉스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성장했고, 이에 따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가치도 크게 상승했다. 반면 당시 그룹 내 공식 직책이 없던 노 관장은 "하이닉스를 인수하면 다 같이 죽는다"는 취지로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에 대한 노 관장 측의 구체적인 입장은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최 회장이 개인 명의로 보유하고 있는 SK실트론 지분 29.4%의 분할 대상 포함 여부 역시 치열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 회장 측은 해당 지분이 이미 두 사람의 혼인 관계가 실질적으로 완전히 파탄 난 이후에 취득·형성된 재산이며, 지분 취득 과정에서 노 관장의 실질적인 기여나 조력이 전혀 없었던 만큼 분할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대법원의 2차 상고심에서는 거액의 현금 분할 규모뿐만 아니라, 오늘날 SK그룹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은 '반도체 사업'에 대한 노 관장의 실질적 기여도 유무와 기업가치 상승분의 분할 타당성을 가리는 것이 최종 판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봉철 기자 (Janu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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