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빅3 살리려 만든 ‘50% 룰’…현대차·기아에 반사이익?
입력 2026.08.18 06:00
수정 2026.08.18 06:00
美, 북미산 부품 82% 이상·미국산 50% 추진…USMCA 원산지 규정 강화
GM·포드·스텔란티스 “업체당 연 20억달러 추가 부담”…자국 규제에 반발
韓·日 수입차는 관세 15%…현대차·기아 상대적 가격 경쟁력 높아질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미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추진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원산지 규제가 오히려 미국 완성차 업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미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에 미국산 부품을 절반 이상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멕시코와 캐나다에 촘촘한 공급망을 구축한 미국 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어서다.
미국 업체들이 한국과 일본에서 차량을 수입해 15% 관세를 내는 경쟁사보다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다고 반발하면서 현대차·기아가 상대적인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1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 개편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자동차 원산지 규정 강화에 대한 우려를 미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핵심은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 가운데 최소 50%를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현재 USMCA에서는 자동차가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 북미산 부품 비중 75%를 충족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82% 이상으로 높이는 동시에 별도로 미국산 부품 비중을 최소 50%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른바 '50% 룰'을 꺼낸 것은 지난 5월이다. 미국 내 자동차와 부품 생산을 늘리고 멕시코·캐나다 등에 분산된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두 달여간 실제 비용을 계산한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오히려 자국 업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본격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뉴 포드 익스플로러 ⓒ에프엘오토코리아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새로운 원산지 규정이 적용될 경우 업체당 연간 최소 20억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 업체들은 현재도 철강·알루미늄 관세와 멕시코·캐나다산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 등으로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GM은 올해 관세 관련 비용으로 25억~35억달러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포드 역시 관세에 따른 연간 비용 부담을 약 10억달러로 추산한다. 여기에 USMCA 원산지 규정까지 강화될 경우 미국 업체들이 추가로 공급망을 재편하거나 관세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미국 업체들이 가장 문제 삼는 부분은 한국과 일본 등 경쟁국과의 형평성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에는 15% 관세가 적용되는 반면 북미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미국 업체들은 복잡한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업체 입장에서는 미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제가 역설적으로 수입차 업체보다 자국 업체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북미 자동차 산업은 수십년간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를 오가며 부품을 생산·조립하는 통합 공급망을 구축해왔다. 이를 단기간에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면 생산시설 이전과 신규 설비투자 등이 불가피하다.
현대차·기아에는 새로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미국 관세로 상당한 비용 부담을 안고 있지만 미국 업체들의 원가 부담이 추가로 커질 경우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어서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현대차는 앨라배마 공장과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가동하고 있으며 기아도 조지아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완성차뿐 아니라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 현대글로비스 등 주요 계열사와 협력업체들도 미국 남동부를 중심으로 공급망을 확대해왔다.
미국 업체들의 주장대로 USMCA 원산지 규정 준수 비용이 크게 올라갈 경우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 차량과 한국산 수입 차량을 적절하게 조합하면서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긴다.
다만 현대차·기아가 실제로 반사이익을 얻을지는 원산지 규정의 최종 설계에 달렸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현대차·기아 차량 역시 새로운 미국산 부품 비중 기준을 충족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렸지만 멕시코와 캐나다, 한국 등에서 조달하는 부품도 적지 않은 만큼 '미국산 50%' 기준이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관건이다.
특히 북미산 부품 비중 기준까지 현행 75%에서 82%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현대차·기아 역시 공급망 조정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새로운 규정이 미국 빅3에 얼마나 큰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는지, 현대차·기아 미국 생산 차량의 미국산 부품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업체별 유불리가 갈릴 전망이다.
멕시코와 캐나다도 미국의 원산지 규정 강화에 반발하고 있다. 멕시코는 최근 USMCA 협상에서 북미에서 생산된 자동차 가운데 협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차량에 적용하는 관세를 현행 25%에서 5~1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미국에 제안했다. 자동차 전체 가격 중 북미 이외 지역에서 생산된 부분에만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와 캐나다산 부품은 무관세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미국의 '미국산 50%' 요구와 정반대되는 방향이다. 미국이 자국산 부품 사용 확대를 요구하는 반면 멕시코는 기존 북미 통합 공급망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자동차 업체의 관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맞서고 있는 셈이다.
USMCA 자동차 원산지 규정은 이번 협상의 최대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행 USMCA에서도 자동차는 북미산 부품 비중 75%를 충족해야 하는 등 과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62.5%보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여기에 미국산 부품 비중 50%라는 별도 조건까지 추가되면 북미 자동차 공급망의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제조업 리쇼어링을 위해 규제를 지나치게 강화할 경우 오히려 북미 생산 차량의 원가를 높여 한국·일본 등 수입차의 상대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이번 협상에서 한국과 일본 업체에 적용되는 15% 관세를 직접 거론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위기감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부품 비중을 크게 높이려면 단순히 조달처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기존 북미 공급망 전체를 재편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업체에도 상당한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대차·기아 역시 미국 현지 생산 차량의 부품 조달 구조에 따라 영향을 받겠지만 경쟁사들의 비용이 더 크게 상승할 경우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